- 빅토르 안의 귀화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대한민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다. 2011년, 빙상연맹과의 파벌 논란 이후 끝내 한국 국적을 버리고 러시아로 귀화한 그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무려 3관왕을 휩쓸며 화려한 부활을 신고했다. 그러자 이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국민 몇몇은 그를 향해 맹렬히 비난을 가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은 ‘빅토르 안’을 비난했는가?
가장 합리적인 이유는 그들이 비난했던 언어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빅토르 안’을 ‘조국을 버린 배신자’, ‘민족의 수치’ 등으로 일컬으며 비난했다. 그들에게 있어 타민족으로의 귀화란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단일 혈통이라는 하나 됨의 집단을 배신하는 행위이자 영속적인 숙명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즉,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단군 이래 하나의 뿌리와 혈통을 공유하고 있다'라는 단일 민족주의 통념에 근거한 비난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상상된 공동체』 의 저자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러한 통념에 반기를 들며, ‘민족이란 상상된 공동체이며, 근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생겨난 문화적·역사적 부산물’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는다. 앤더슨은 그의 책 『상상된 공동체』 에서 ‘민족은 상상된 정치적 공동체로서, 본성적으로 제한적이며, 주권을 지닌 것으로 상상된다’고 언급하며, 민족주의의 기원과 보급에 대해 고찰한다.
저자는 민족의 기원을 ‘종교 공동체’와 ‘왕조의 영지’라는 문화체계에서 찾는다. 이 문화체계들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발명된 18세기 이전부터 선행하여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기능을 하였다. 그 매개로 사용된 것이 신성한 언어(라틴어)와 계급서열제적 믿음이었다. 그러나, 이 문화체계들이 종교전쟁, 정치,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점점 파편화·다원화·영토화 되면서 종교 공동체의 붕괴와 왕권의 약화를 초래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실존적 고민과 함께 영속적 삶의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 빈칸을 민족이라는 새로운 발명품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사실 종교 공동체와 왕조의 영지의 쇠퇴에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은 것은 ‘시간을 파악하는 방식의 변화’였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동시성의 관념이 없었다. 그들은 시간을 순간적인 현재 안에서의 과거와 미래의 동시성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했다.(p51) 즉, 원형적(原型的)인 시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신문과 소설의 형식이 발터 벤야민이 언급한 ‘비어 있는 동질적 시간’ 관념을 증명 및 촉발시켰고, 사람들은 전혀 연결되지 않은 익명의 존재들이 동일한 시간, 동일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면서 민족에 대한 사고가 가능해졌고, 상상된 공동체(민족)는 점차 가시화되었다. 여기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인쇄자본주의’였다. 인쇄기술의 발달과 자본주의의 등장은 민족이라는 구분법을 만들어 민족주의가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예를 들어, 유럽의 언어는 오랫동안 라틴어가 지배해왔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로 상대적으로 접하기 쉬운 ‘일상어’로 만든 인쇄물들이 다수 제작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민족을 나누는 구분점이 되었다. 서로 교류한 적이 없었던 이들이 신문과 책 같은 인쇄물을 통해 서로 같은 언어권임을 확인하면서 이 언어 집단을 하나의 민족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등장은 일상어의 팽창을 도모했다. 라틴어 시장이 포화되면서 출판산업이 시들어지자 인쇄업자들은 일상어로 싸구려 판본을 유통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신교는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그 결과 대규모의 새로운 독자층이 유입되면서 출판산업의 번성과 함께 일상어를 광범위하게 확산시켰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와 인쇄 테크놀로지가 인간 언어의 숙명적 다양성에 수렴함으로써 상상된 공동체의 새로운 형태의 가능성을 창조했으며, 그 기본형이 근대 민족이 등장할 무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p82)
오늘날 우리가 민족이라고 일컫는 공동체의 원초적 기원이 단일 혈통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종교와 왕조로부터,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인쇄), 생산과 생산관계의 체계(자본주의), 인간의 언어적 다양성이라는 숙명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된 것이라면, 민족을 배신했다는 말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말이 아닐까? 민족에 애착을 가지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나, 사실 같은 영토에 존재하는 너와 나는 뿌리부터 다른 민족일 수도 있으며, 현재 공유하고 있는 민족의 개념 역시 근대의 산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경계선을 지으며 타자를 배제하고, 민족을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앤더슨이 말하는 ‘동등한 형제애(Fraternity)의 기획’을 차단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인류는 상상의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민족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차별을 받거나 소외된 자들이 뭉쳐 스스로를 하나의 민족으로 선언한다거나, 같은 목표와 이상을 추구하는 자들끼리 하나의 민족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단일민족이라는 울타리의 편협함을 깨는 다양한 관점들의 수용이야말로 건강한 민족을 세우는 기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빅토르 안’의 귀화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