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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y 04. 2021

[서평] 건강 불평등 / 리처드 윌킨슨

- 불평등이 건강을 악화시킨다


   오늘도 3km 조깅을 마쳤다. 서늘한 5월의 밤공기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상쾌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는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샐러디의 대표 메뉴 '칠리베이컨 웜볼'이다. 4가지 곡물과 다양한 샐러드 토핑이 오밀조밀하게 조합되어 있는 건강식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책을 읽는다. 워라밸이 가능한 노동 환경 덕택이다. 그리고 12시가 되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일 이렇게 살진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삶의 표본이다. 왜 이렇게 사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건강해지기 위해서다. 나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해지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들을 먹고, 과도한 노동 또는 음주를 피하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형성한다. 또는 높은 소득 수준의 사람들은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거나 편안하고 위생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개인의 부단한 노력들과 물질적 조건들이 건강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공공보건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개인의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전혀 뜻밖의 것을 주장한다. 바로 '불평등'이다. 저자는 그의 책 『건강 불평등』에서 개인의 건강이 악화되는 건 절대적 빈곤, 가난에 따른 나쁜 생활 조건, 낮은 의료 서비스, 운동 부족, 잘못된 생활 습관, 과도한 노동 시간 같은 요소뿐만 아니라 불평등으로부터 오는 사회경제적 및 심리사회적 요인의 복합적 작용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가 개인의 건강을 어떻게 악화시키는 지를 진화이론을 통해 설명하면서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평등한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회의 건강 불평등 지수를 판별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는 ‘사회 위계’다. 위계질서가 강한 사회일수록 건강 불평등의 지수가 높다. 왜 그럴까? 위계질서가 강한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가 약화된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에 믿음이 줄어들고, 지역사회 생활의 참여도가 떨어지고, 적대감과 폭력이 늘어난다. 달리 말하면, 위계적 지배가 강해질수록 평등주의적인 사회적 관계는 약해지고 사람들 간의 결합력은 낮아진다.


   예를 들어, 위계적 지배가 강하고 사회적 관계가 약화된 사회에서는 '폭력'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단순히 위계 질서 때문에 폭력 수준이 높은 것이 아니다. 폭력 수준이 높은 지역에서 폭력 사건을 유발하는 사회적 환경의 척도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를 향한 '멸시'와 연관이 있다. 즉, 낮은 소득 수준, 낮은 생활수준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의 위엄과 존중에 대한 모욕, 그리고 상대적 빈곤에 따르는 열등하다는 비난과 박탈감, 수치심, 굴욕감 등이 폭력을 낳는 것이다.




   불평등한 위계 관계는 자연스레 '사회적 비교'를 초래한다. 멈출 줄 모르는 비교의 정서가 사회에 만연해질수록 건강 불평등이 발생한다. 윌킨슨은 본래 인간이 사회적 비교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인간은 사회적 비교를 통해 발생하는 불안을 동력으로 삼아 배움과 성장을 갈망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개인이 불안의 원인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끝없는 사회적 비교를 통해 절망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만성적인 불안'에 휩싸이게 되고 이것이 건강을 악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만성적인 불안'은 어떻게 건강을 악화시키는가? 윌킨슨은 만성적인 불안이 '투쟁도피 반응'이라는 생물학적 경로를 통해 건강을 악화시킨다고 설명한다. '투쟁도피 반응'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만났을 때 몸이 긴장 상태에 놓이는 현상처럼, 위기를 느꼈을 때 몸에 스트레스가 높아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사람은 불안에 빠지게 되면 생존하기 위해 정상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던 것을 멈추고 생존에 필요한 근육 활동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 신체가 급격하게 노화되면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p37)


   윌킨슨은 이런 '투쟁도피 반응'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게 자주 나타난다고 보았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자들은 항상 걱정과 불안정이라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게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더 많이 불안하고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결국 생존을 위해 잠깐 동안만 써도 될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쏟게 되면서 건강 비용이 축적되고, 축적된 건강 비용이 신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건강이 악화되는 것이다.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환경에 적응하고 불시의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발달한 불안과 스트레스 반응이, 현대의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인간의 죽음을 앞당기고 있는 것이다. (p00)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02172123125 / 책 <평등이 답이다>



   리처드 윌킨슨은 "불평등 자체를 줄이지 않고 사회문제를 줄이려는 시도는 마치 사회/경제적 불이익과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를 단절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건강 불평등의 근원은 불평등 그 자체가 주는 효과로부터 비롯된다. 사회적 지위, 소득 수준, 인종, 계급, 언어, 종교의 차이 같은 것들도 불평등의 문제에서 볼 때 긴장의 근원이 된다. 즉, 단순히 위계를 형성하는 요인들을 나열하여 이해할 것이 아니라 그 요인들이 지니고 있는 불평등 자체의 효과를 이해해야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득 수준이 높다고 건강한 것이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부자들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계층 사회 자체가 주는 만성적인 불안과 스트레스는 부유해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 구성원의 건강을 증진하려면 불평등 감소를 핵심적인 정치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라고 결론을 맺는다. 실제로 사회적인 격차가 작고, 사회 구성원 간의 우정과 사회적 화합이 돈독한 평등주의적 사회일수록 구성원들도 건강하다. 사회적 결속이 단단하고 우정을 기반으로 한 평등한 사회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과 냉소주의적 태도가 낮고, 사회적으로 부진한 사람에 대한 환대가 잘 이루어지기 때문에 건강 불평등이 다른 불평등 사회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적 결속(coherence)과 우정(friendship)을 정치적 목표로 삼는 것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건강을 위해 돈을 더 많이 벌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사회적 결속력을 다지고 우정을 돈독히 하는 것이 개인과 사회 모두가 건강해질 수 있는 지름길일지도 모르겠다.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고 만들어가는 그 과정 속에는 인간을 차별하거나 거부하는 배제의 논리가 아닌 사회와 인간 사이의 역기능을 없애고 순기능을 회복하는 환대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으니 말이다. 가장 건강한 사회는 가장 평등한 사회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내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서.



[서평] 건강 불평등 / 리처드 윌킨슨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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