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러피언 슈퍼리그가 창설되면 안 되는 이유
2021년 4월 19일. 전 세계의 축구팬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축구계의 모든 언론과 기자들은 대대적으로 이 사건을 헤드라인에 장식하며 보도했고,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찬반을 가르는 논쟁들이 넘쳐났다. ‘유러피언 슈퍼리그’의 창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거대한 팬덤을 가지고 있는 12개의 축구 클럽팀들이 코로나 19로 인한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 유럽축구대항전 시스템을 거부하고 새로운 리그를 창설하겠다는 공식적인 성명이 난데없이 발표된 것이다.
사건이 보도되자마자 유럽축구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사전 협의도 없이 관련 소식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감독과 선수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 만든 축구를 부자들이 훔쳤다’며, 유럽축구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클럽의 정체성과 역사를 권력으로 침식해버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이 소중한 가치들을 시장가치로 변질시켜버리는 행위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또한, 최상위 클럽팀들끼리 카르텔을 형성하여 계층 간의 차이를 부각하고, 상생과 공존의 가치를 배제하여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부도덕적인 행위에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오늘날 슈퍼리그 창설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왜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이슈에 대해 격정적으로 찬반 논쟁을 하는 걸까?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세계적인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그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시장논리에 근거하여 분석하고 진단한다. 그는 책에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 점점 돈으로 살 수 있는 재화로서 상품화되고 있다’라고 주장하며 안타까움을 내친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에 의거하는 시장논리가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비(非)시장의 영역으로 침투하여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첫 번째 근거로 ‘새치기’에 대해 언급한다. 놀이공원에 가면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전통적인 관행이자 미덕이었다. 그러나, 시장논리가 줄서기라는 영역에 침투하면서 약간의 돈만 지불할 수 있다면 먼저 탑승할 수 있는 ‘새치기 권리’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공항과 병원 대기실에서도 선착순이라는 줄서기 윤리가 돈을 낸 만큼 획득한다는 시장윤리로 대체되고 있다. 결국 이러한 변화는 줄서기라는 질서 미덕과 윤리의식을 돈을 주고 거래할 수 있는 거래 대상으로 변모시키고, 시장논리가 사람들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도록 길을 열어주게 되고 말 것이다.
시장논리를 우리 삶에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인센티브 제도다. 인센티브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비용과 이익에 따른 합리적 계산법으로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경제학적 접근법에 의거한 개념이다.(p79) 이러한 개념이 옳다면 무엇이든 가격을 매길 수 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재화와 서비스뿐만 아니라 교육, 정치, 환경, 문화, 도덕, 윤리, 건강, 결혼, 성, 육아, 규범 등의 다양한 영역들에 가격을 매겨서 경제적 효율성과 비용에 따른 이익을 창출하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합리적인 일이 된다.
(*여기서 인센티브는 비용(-)과 이익(+)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샌델은 시장논리를 모든 영역에 적용하면 재화와 서비스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그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령, 선물 대신 돈을 주는 행위는 시장논리의 관점에서 보면 합리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선물의 의미가 퇴색된다. 사회적 관행을 상품화하면 사려 깊은 태도와 배려 같은 규범의 자리에 시장의 가치가 들어서면서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 또한, 한 어린이집이 아이들을 늦게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게 요금을 부과했더니, 오히려 더 늦게 데리러 오는 경우가 발생했다. 늦게 데리러 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요금을 지불하고 누릴 수 있는 서비스로 변질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금전적 인센티브의 의도가 역풍을 맞은 셈인데, 과연 의미와 가치를 훼손하고, 규범과 도덕성을 밀어내는 시장논리를 삶에 모든 영역에 적용시키는 것이 합당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주제 중 하나인 생명과 죽음도 시장논리를 피해 갈 수 없다. 유가족에게 재정적 안전망을 제공하려고 생긴 생명보험은 투기를 목적으로 그 증서를 사고 파는 것이 허용되면서 타인의 죽음을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섬뜩한 보험상품으로 전락했다. (p181) 또한, 유명인의 죽음을 놓고 도박을 벌이는 데스풀 게임이 성행하면서 생명과 죽음의 상업화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생명과 죽음에 대해 경박한 태도를 불러일으키고, 윤리적 민감성을 떨어뜨려 생명과 죽음을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변질시킨다. 과연 우리 시대의 도덕·윤리의식은 이러한 시장 관행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마지막으로, 샌델은 시장논리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인 미국의 스포츠 산업을 근거로 든다. 슈퍼리그를 반대하는 유럽축구팬들의 심상을 엿볼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미국의 스포츠 산업에는 시장논리, 상업주의, 현대 사회를 이끄는 경제적 사고방식이 모두 담겨있다. 선수의 싸인이 담겨 있거나 위대한 기록을 세웠던 명예로운 물품들이 단순 거래의 대상이 되고, 도시의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경기장의 이름이 후원 기업에게 팔려 그 기업의 이름으로 바뀐다. 심지어 뉴욕생명보험은 선수가 안전하게 베이스로 슬라이딩할 때마다 아나운서에게 “세이프입니다. 뉴욕생명”이라고 말해야 하는 광고 조건을 제시했을 정도로 스포츠계의 모든 것들이 거래 대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장논리가 스포츠 산업에 불러일으키는 폐단은 비단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스포츠 경기장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한 좌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스카이박스라는 프리미엄 좌석제가 생겨나면서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좌석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구단은 스카이박스를 통해 계층을 분리시키려는 엘리트들의 열망과 욕구를 부추겼고, 비싼 입장료를 통해 더욱더 많은 수익을 창출해나갈 수 있었다.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어 연대와 유대의 가치를 보여주었던 스포츠에 계층을 나누고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스카이박스 제도는 과연 장려할 만한 제도인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전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는 자본주의의 시장논리는 모든 것들을 거래 대상으로 만들고 상품화 또는 상업화시킨다. 전통과 관행은 물론이며 도덕과 윤리, 더 나아가 생명과 죽음까지도 모두 시장논리로 접근하여 가치판단을 한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모두 긁어모아 가치를 부풀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라면 모두 돈이 되게끔 만든다. 이런 식으로 시장논리의 극대화를 보여주는 세태가 과연 인류를 위한 것이며 올바른 경제체제인 것인지 물음표가 생기는 실정이다.
서론에 언급했던 슈퍼리그 창설 논란과 유럽축구팬들의 반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이 자본주의로 바뀌었고, 재정적 위기라는 현실을 봐야 하며, 결코 낭만에 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이건 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인 나는 결코 알 수 없는 유럽축구만의 전통·문화와 관행 그리고 상업주의에 반응하는 도덕·윤리의 문제다. 당장 위기로 인해 수익 창출이 필요하다고 전통도 돈으로 사고, 문화도 돈으로 사고, 팬들도 돈으로 사고, 정체성도 돈으로 사고, 역사도 돈으로 산다면, 먼 미래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결론적으로, 슈퍼리그 창설에 대하여 유럽축구팬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들에 시장논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프로스포츠가 시민 정체성의 원천이지만, 이익창출의 근원 즉 사업이기도 한 점도 분명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상업화를 위해,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논리를 급진적으로 가져오는 것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자본주의로 덮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할 것이며, 그때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와 영역은 결코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거래 대상이 되는 사회를 만들지 않고 시장체제가 제공하는 최상의 이익까지 누릴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치판단과 시장 개입의 여부를 공정한 토론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시장 문제를 시장논리로 극복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토론과 같은 성숙한 방법을 통해 다른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본의 노예’라는 말이 하나의 밈처럼 유행할 정도로 시장논리가 삶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돈과 시장이 차지하는 적절한 역할은 무엇이고, 시장논리를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함께 숙고하고 토론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