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 May 15. 2021

[서평] 다윈의 식탁 / 장대익

- 포켓몬의 진화를 현대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 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마다 떠오르는 키워드나 심상이 다양하겠지만, 나는 어렸을 때 봤던 애니메이션 ‘포켓몬’이 떠오른다. 포켓몬은 ‘지우’라는 주인공이 ‘피카츄’라는 포켓몬과 함께 포켓몬 마스터가 되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는 2000년대 초반, 수많은 아이들의 마음을 훔치며 흥행과 흥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었는데, 그 키워드는 바로 ‘진화’에 있었다.


   진화란 무엇인가? 생물학계에서는 진화를 ‘시간에 따른 종의 변화’라고 정의한다. 한 종은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유전적 변화를 통해 다른 종들로 변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이끄는 힘을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물론 진화를 추동하는 힘은 자연선택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다. 그러나 현대 진화론 학계에 자연선택만큼 진화의 동력을 정교하게 설명하는 이론은 없으며,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자연선택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포켓몬의 진화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일까? 포켓몬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포켓몬들을 보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경로의 진화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또 그렇지 않아 보인다. 현대 진화론은 이 물음에 어떠한 답을 줄 수 있을까? 이 책(다윈의 식탁)의 저자(장대익)는 진화론에 대해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학계의 두 거장 ‘리처드 도킨스’ ‘굴드’를 한 자리에 소환한다. 그는 이들이 펼치는 치열한 진화론 논쟁을 보여주며 진화론의 다양한 쟁점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선 적응 논쟁부터 살펴보자. 적응 논쟁은 자연선택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이다.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하여 자연선택의 힘을 강력하게 믿는 적응주의자들은  생물의 외형뿐만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 그리고 언어 능력까지 적응의 결과라고 믿는다. 반면에 굴드와 같은 반적응주의자들은 모든 적응을 자연선택의 힘으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며, 일부는 자연선택이 아닌 다른 경로의 결과 또는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자연선택의 힘의 기준과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포켓몬은 온전히 자연선택의 힘으로 진화하는 것일까?


   이타성에 관한 논쟁도 팽팽하게 갈린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답게 이타성은 유전자가 자기의 복사본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전략에 불과하며, 집단의 이득을 위한 행동이라고 알려진 것들도 사실은 개인(유전자)에게 더 큰 이득을 주었기 때문에 진화한 것이라는 ‘유전자 선택론’을 주장한다. 반면 굴드는 진화의 주체는 유전자, 세포, 기관, 유기체, 개체, 종 등으로 다양해졌으므로, 집단 내의 구성원에게 작용하는 자연선택의 힘과 집단들 사이에 작용하는 자연선택의 힘을 모두 고려하는 ‘다수준 선택론’을 주장한다. (p125)


   그렇다면, 유전자가 과연 유전체의 전체인가? 유전과 발생, 그리고 진화에서 유전자가 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유전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도킨스와 굴드는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도킨스는 DNA 서열을 유전자로 부르며 이것이 유전자에 대한 진화론적 규정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굴드는 유전자는 독립적인 기능을 하는 특정 DNA 서열이 아니며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표현형을 산출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p164) 만약, 포켓몬을 유전자 선택론으로만 정의한다면 진화도 하지 않은 채 지우와 함께 다니는 이타성 가득한 피카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의 속도와 양상에 관한 논쟁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화는 점진적인 방식을 따라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갑작스레 도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먼저 굴드는 단속평행론을 꺼내 들며 진화가 도약하듯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는 근대적 종합 이후 위상을 떨치지 못했던 이보디보(진화발생생물학)를 진화론에 통합시키고, 이소적 종분화 원리를 통해 단속평형론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반면, 도킨스는 단속평행론을 반박한다. 진화의 템포는 어떤 시간 척도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며, 다윈의 점진론은 폭이 매우 넓어서 느린 등속 템포부터 단속평형 템포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다는 것이다. (p185) 그건 그렇고, 포켓몬의 진화체를 가만 살펴보면 단속평행론에 가깝지 않을까?


   마지막 논쟁은 ‘진화를 과연 진보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도킨스는 진화는 분수령이 있기 때문에 진보한다고 주장한다. 분수령은 진화의 능력 자체가 진화하여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도약하는 과정을 말한다. 때문에 분수령을 통한 진화는 되돌아갈 수 없으므로 진화는 진보한다는 것이다. 반면 굴드는 진화란 진보가 아닌 다양성의 증가라고 주장한다. 생물의 종류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새롭고 복잡한 생물들이 나타난 것이며, 단순한 생물 역시 이전보다 많아졌으므로 진화가 진보를 향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포켓몬 역시 세대가 계속해서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보면 굴드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사진 출처 - 포켓몬 GO 가이드북 Facebook


   이처럼 현대 진화론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진화론의 주요 쟁점들인 적응, 협동, 발생, 진보 등에 대한 두 진영의 견해 차이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을 만큼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고, 서로가 진화를 바라보는 기준점과 정의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반박할 수 없는 통합적이고 확고부동한 명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느 견해가 진리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상반된 견해들이 변증 과정을 통해 서로의 빈칸을 노출시키고, 그 빈칸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을 진화시키고 있는 셈이니까 말이다.


   따라서, 제목에서 언급했던 ‘포켓몬의 진화를 현대 진화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답을 하기 어려운 불가지론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자연선택의 힘으로 진화하고, 때로는 다른 경로들을 통해 진화하는 포켓몬의 진화는 도킨스의 견해와 굴드의 견해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거나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진화에 대한 진정한 답을 찾아가는 논쟁만이 존재할 뿐, 답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포켓몬 세계관의 진화 개념을 리처드 도킨스와 굴드는 어떻게 바라봤을지가 개인적으로나마 궁금할 따름이다.




[서평] 다윈의 식탁 / 장대익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