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주체적 성찰
나는 나를 얼마나 알까? 내가 아는 나의 모습이 과연 나의 전부일까? 나는 나답게 살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까? 가끔씩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나의 낯선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이러한 질문들이 뱀처럼 나의 삶을 감싼다.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낯선 모습이 놀라움과 소름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는 나의 낯선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은 극악하고, 혐오스럽고, 잔인하기까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를 돌아보는 자화상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런 적이 없었는지, 나에게는 이런 면이 없는지, 나에게도 이런 것이 찾아오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비추어 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이 책(사람에 대한 예의)의 저자(권석천)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들려주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나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주체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무수한 이야기들을 그냥 흐르는 대로 지나쳐버리지 말고 스스로를 바라보고, 검열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모르는 나의 낯선 모습을 결코 인지하고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찰이 필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썩지 않기 위해서다. 성찰에는 역동성이 있다. 내가 한 일을 깊이 되돌아보는 반성적 사고를 통해 내가 가진 어떤 관념이나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또는 굳지 않도록 돕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은 나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게 하여 나의 사고와 행동들을 반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을 넓혀준다.
하지만 나의 낯선 모습을 바라보고 검열하는 성찰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성찰은 불편하다. 지금까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끔 하는 반성적 사고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성찰을 통한 불편함을 많이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불편함이 사회를 건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부에서 나오는 '악의 낙수효과' 편은 우리가 손가락질하는 악인이 과연 진짜 악인인지에 대해 생각해볼거리를 던져준다. 우리가 악인이라고 말하는 악인이 사실 악의 피라미드 속 밑변의 돌은 아닌지, 꼭대기의 진짜 돌은 무사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밑변의 돌들만 사라지는 악의 피라미드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쩌면, 우리가 악을 아래로 내려 보내는 악의 낙수효과를 시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끔 한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편에서는 악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악의 평범성' 문제를 언급한다. 성별, 연령, 계급과 상관없이 나 자신도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늘 깨어 있지 않는다면, 내부의 악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와 손을 잡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난 내가 할 일을 했다고 말하며, 그래도 난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면서 말이다. (p127)
이렇듯, 저자는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성찰을 위한 여러 이슈들을 마구잡이로 던진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가지각색의 거울들을 통해 내 모습을 계속 비추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슈뿐만 아니라 영화와 소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서도 나의 낯선 모습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게 하는 점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책은 주로 사회 탓을 하기 때문에 해결방안이 '사회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처럼 조금 추상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 탓을 하면서도 개개인의 성찰을 요구하는 꽤나 균형 잡힌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개인의 주체적인 성찰이 뒷받침되어야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다만, 저자가 의도하고 썼다고 고백한 것처럼, 어떤 부분은 문제 제기만 하고 끝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책의 전반적인 느낌이 암울했고, 염세적·비관적·회의적인 면들도 종종 보였다. (어쩌면 이것이 당연한 것이라고도 생각되기에 크게 비판적이진 않다)
마지막으로, 단조로운 구성 때문인지 읽을수록 지루한 면이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카피라이터 같은 저자의 수려한 글 솜씨가 이를 상쇄하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문단과 문장 속에서 빛을 발하는 저자의 글 솜씨와 그러한 글 솜씨를 장착하게 간접적으로나마 도와준 기자 경력이 내심 부러웠다. 나도 기자 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언론고시를 검색해 볼 정도로..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p59)
직업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에 직업도 있는 것이다 직업은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방편일 뿐이다. 삶을 직업에 맞추는 게 아니라 직업을 삶에 맞춰야 한다. (p194)
각자도생의 이념은 개인주의라는 숙주에서 자라난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개인주의는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와의 균형을 잃으면 모든 책임을 개인화하는 신자유주의, 보수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된다. 각자도생은 거짓말이다. 각자도생해도 살길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서 살길을 도모하려고 해도 도모가 되지 않는다.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서면 죽는 순간까지 그 길을 벗어날 수 없다.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