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구대륙 사회와 신대륙 사회가 본격적으로 충돌한 것은 1492년 콜럼버스 때였다. 이때부터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관계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사이의 긴장감이 극적으로 폭발하게 된 사건은 1532년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최초로 마주친 사건이자 이후에 전개된 '아타우알파 생포 사건'이다.
아타우알파는 자그마치 8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는 신대륙에서 가장 크고 발전된 국가의 절대군주였다. 반면 피사로는 고작 168명의 군대를 데리고 아메리카라는 낯선 땅에 온 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 대신일 뿐이었다. 하지만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생포하여 8개월 동안이나 인질로 삼았고, 이 기간 동안 엄청난 량의 황금을 몸값으로 받은 후 처형하는 만행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근대사의 가장 큰 충격이자 결정적이었던 사건이라고 불리는 ‘아타우알파 생포 사건'이다. 아타우알파 생포 사건은 유럽이 잉카제국을 더 쉽고, 더 신속하게 정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기에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피사로의 군대는 어떻게 고작 168명의 군대를 가지고 잉카제국의 절대군주 아타우알파의 8만 군대를 참패시킬 수 있었을까? 수백 배에 달하는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는 ‘장비의 불균형’이다. 피사로 군대는 쇠칼을 비롯한 무기들, 갑옷, 총, 말 등을 가지고 아타우알파 군대를 상대하였다. 반면 아타우알파 군대는 돌, 청동기, 나무, 곤봉, 손도끼, 물매, 헝겊 갑옷 등으로 맞서 싸웠다. 당연히 게임이 되지 않았다. 특히, 한 발만 발사해도 엄청난 심리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총과 넓은 행동반경을 통해 신속하고 기습적인 공격이 가능한 말(기마병)은 전쟁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유럽인의 정복에 여러 세기 동안 저항할 수 있었던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은 말과 총을 구하여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군사적 불균형의 폭을 좁혔던 부족들뿐이었다)
두 번째 요인은 ‘전염병의 유행’이었다. 스페인 이주민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한 후부터 원주민들 사이에서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특히, 천연두 같은 유럽 고유의 전염병들은 타 대륙의 민족을 몰살시키는 무시무시한 요소였는데, 이미 면역성을 가진 유럽인들에 비해 원주민들은 면역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염병이 꼭 유럽인의 팽창을 도와주는 것만은 아니다. 열대 아프리카, 동남아, 뉴기니 등지의 말라리아와 황열병 같은 전염병은 유럽인들이 열대 지방으로 이주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하였다.)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은 기존 잉카제국의 황제와 신하들을 죽음으로 몰고 감으로써 제위 다툼과 내부 분열을 유발하였다. 이 과정에서 승리한 것이 아타우알파인데, 피사로는 이러한 내부 분열을 잘 활용하여 잉카제국을 정복할 수 있었다. 만약 제위 다툼으로 인한 내부 분열이 없었다면, 피사로는 단합된 제국과 싸웠어야 했으므로 정복 전쟁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세 번째의 원인은 ‘해양기술’이었다. 유럽인들은 뛰어난 해양기술 덕분에 아메리카로 넘어올 수 있었다. 피사로 역시 해양기술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잉카제국을 정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아타우알파는 해양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메리카를 벗어나 해외로 팽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네 번째 원인은 ‘중앙집권적 정치조직’이다. 이러한 조직이 중요한 이유는 자금을 마련하고, 배를 건조하고, 선원들을 고용하고,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피사로는 이러한 정치조직을 기술적으로 잘 활용하였다. 잉카제국 역시 중앙집권적 정치조직이었으나, 신과 같은 절대군주의 권위주의적 관료체제는 절대군주가 죽자 조직의 와해를 불러일으키는 등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고 말았다.
마지막 원인은 ‘문자의 영향’이다. 문자의 존재는 곧 정보의 존재를 의미한다. 스페인인들은 편지나 소책자 등을 통해 신대륙의 소식을 듣고 신대륙으로 가고자 하는 동기와 항해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받았다. 반면 아타우알파는 스페인인이나 그들의 군사력 또는 의도에 대한 정보를 거의 갖지 못했다. 문자를 사용하지 않고, 구두로만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스페인인들이 정복자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즉, 문자 덕분에 스페인인들은 인간의 행동과 역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진 반면, 아타우알파는 스페인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이처럼, 피사로의 아타우알파를 생포 사건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지 못하고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식민지로 만들게 된 직접적 요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총기, 쇠, 무기,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기술과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해양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집권적 정치조직, 문자 등이 있다. 이러한 요인들이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이 된 것이다.
이제 이 책의 이름이 왜 ‘총 균 쇠’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총, 균, 쇠는 대륙의 불균형에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아직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았다. 어째서 그와 같은 요인들이 신대륙보다 구대륙에 편중되었을까? 잉카제국은 왜 유럽인들처럼 총, 균, 쇠 등을 지니거나 배와 발전된 정치조직, 문자를 얻지 못했을까?
총 균 쇠 <3장 :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 : 네이버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