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량 생산의 기원
우리는 앞서 총 균 쇠가 대륙의 불균형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총 균 쇠를 먼저 가진 대륙은 정복 전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어떻게 하면 총 균 쇠를 먼저 가질 수 있었을까?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즉, 총 균 쇠를 얻는데 필요한 선행 조건은 무엇인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거리(식량)’다. 한 마을, 한 사회, 한 국가의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식량이 확보되어야 한다. 식량이 확보되지 못하면 정복 활동은 물론이고 집단의 존속 자체가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약간의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식량 생산의 여부가 총 균 쇠의 발전에 필요한 선행 조건으로 작용하여 정복 활동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간접적 영향인 이유는 식량 생산의 여부가 유일한 원인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기 인류는 유랑 생활을 하면서 야생동물 사냥과 야생식물 채집을 하였다. 그러다가 몇몇 민족이 비로소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를 통한 식량 생산’이라는 것을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각 민족의 대조적인 운명이 시작된다. 민족마다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의 시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 대륙 불균형을 초래한 총 균 쇠의 배후에는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라는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가 총 균 쇠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것일까?
먼저, 가축은 인간에게 네 가지 방식으로 먹거리를 제공한다. 첫 번째는 고기로써(동물성 단백질 공급원), 두 번째는 유제품으로써(젖과 버터 치즈 요구르트 등), 세 번째는 비료로써(분뇨를 비료로 사용하면 수확량이 크게 증가), 마지막으로는 쟁기를 끄는 것(농경을 하기 어려웠던 땅을 경작할 수 있게 함)으로서다. 즉, 동물의 가축화는 수렵 채집 생활보다 더 많은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소비할 수 있는 열량이 많다면 사람들도 많아진다. 먹을 수 있는 야생 동식물이 많은 곳에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같은 면적의 땅에 의존하여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수렵 채집민보다 목축민이나 농경민이 훨씬 더 많아진다. 이 같은 숫자의 힘은 식량을 생산하는 부족이 수렵 채집민 부족에 비해 인구가 조밀해지는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동물의 가축화는 군사적 이점 또한 가져다준다.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육상 운송의 주요 수단으로 인간 사회에 혁신을 초래했다. 특히, 정복 전쟁에서 말이 기여하는 바가 컸는데, 말이 끄는 전차는 전쟁 양상을 완전히 뒤집어버릴 수 있었다. 즉, 동물의 가축화를 통해 말을 가진 민족은 그렇지 못한 민족들에 비하여 막강한 군사점 이점을 누리며 정복 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물의 가축화는 다른 방식으로도 정복 활동에 영향을 끼쳤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들은 원래 동물들에게 퍼져 있던 병원균에서 나온 것인데, 각각 돌연변이를 거쳐 인간의 병원균으로 특수화되었다. 동물을 가축화한 사람들은 특수화된 병원균에 의해 제일 먼저 희생되었지만, 곧 면역을 키웠고, 면역을 지닌 사람들이 면역을 지니지 못한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유행병을 돌게 하였다. 즉, 동물의 가축화를 통해 면역을 얻은 민족이 정복 활동에 있어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복 활동에서의 이점 이외에도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가 주는 이점은 정착 생활로의 발전이었다. 정착 생활은 유랑 생활을 하는 수렵 채집민들과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기술적으로 다른 사회를 만들었다. 그것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잉여 식량의 저장과 운반’이다.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는 곧 많은 식량과 조밀한 인구를 의미했다. 그 결과 많은 잉여 식량이 생겼고, 동물을 이용하여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이것은 병사, 금속 기술자, 필경사, 사제들 등 전업식 전문가들의 등장을 초래했고, 그들을 먹여 살리는 데 쓰였다. 또한, 잉여 식량은 생산물과 생산수단의 관계를 토대로 정치적 조직과 사회적 계급을 만들어냈으며, 그 외에도 농작물의 천연섬유와 가축의 동물성 섬유로 담료, 의류, 그물, 끈, 인공유물, 소가죽 등을 만들어내며 경제적 복잡성과 기술적 혁신을 이루어내는데 일조했다.
이처럼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는 훨씬 더 많은 식량 창출과 인구 밀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다주었고, 정복 전쟁에서는 말과 유행병을 통한 군사적 이점을 누릴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잉여 식량의 저장과 운반은 정치적 중앙집권화와 사회적 계층화 및 경제적 복잡성을 야기하여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 데 선행 조건이 되었다.
그러므로, 가축화 및 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곧 ‘총 균 쇠’가 발달하는데 궁극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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