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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5장>

- 인류 역사가 갈라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by Sun


앞서 우리는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를 통한 식량 생산의 여부’가 총 균 쇠의 발전에 필요한 선행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말은 식량이 곧 힘이며, 식량 생산의 여부에 따라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로 나뉜다는 의미다. 즉, 인류 역사는 대부분 유산자(농업의 힘을 가진 민족)와 무산자(농업의 힘을 가지지 못한 민족) 사이의 불평등한 갈등 관계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호주의 서남부와 동남부, 남아공 희망봉 일대는 오늘날 가장 비옥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칭송받을 만큼 농업이나 목축에 생태학적으로 매우 적합한 지역이다. 하지만 이 지역들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식량 생산이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농업 한계선에 가까운 듯한 지역에서 식량 생산이 제일 먼저 시작되었다.


또한, 어떤 지역에서는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는데 적합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으로부터 식량 생산 방법을 수입하였다. 왜 이들은 독립적으로 식량을 생산하지 않고 외부의 도움을 받았을까? 왜 이들은 타 지역보다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량 생산을 먼저 시작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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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답을 찾기 전에 우선 식량 생산이 발원했던 지역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언제 시작되었는지, 농작물과 동물이 언제 어디서 처음으로 가축화 및 작물화되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동식물의 잔해를 확인하는 것이다. 가축화·작물화된 동식물은 야생의 동식물과는 형태학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가축화 및 작물화된 동식물의 잔해가 발견된다면 그것은 식량을 생산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고고학자들은 방사성탄소 연대측정법을 사용하여 식량 생산 연대를 추정한다. 그러나 이 방법에는 기술적인 문제점이 많은데 여기서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방사성탄소 연대를 측정하기 위한 탄소의 양이 적다는 것이다. 때문에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물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 물질이 다른 시대에서 뒤섞인 물질일 수가 있으므로 정확하지가 않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소량으로도 측정 가능한 가속기 질량 분광 분석법이라는 신기술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지만, 기존의 측정법과 연대 사이에서의 큰 차이가 있어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연대를 측정함에 있어 약간의 오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대기 중의 탄소 비율은 정확히 일정한 것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조금씩 변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대를 측정할 때는 비율이 일정하다고 가정을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오차가 발생한다. 그래서 고고학자들은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변동하는 오차를 어느 정도 보정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흔히 보정 연대는 대문자로, 비보정 연대는 소문자로 표기하여 두 가지를 구별하기도 한다. (이 책은 모두 보정 연대다.)



측정 방법을 알아봤으니 이제 다시 식량 생산의 기원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세계 각지에서 식량 생산은 각각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발전했을까? 한쪽 극단에는 식량 생산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시작된 지역들이 있다. 서남아시아, 중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 일대와 아마존 강 유역까지 그리고 미국 동부 등이다. 이 지역들은 다른 지역으로부터 가축 및 농작물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토종 식물을 가축화·작물화했다. 그 외의 다른 지역들은 그곳에서 독립적으로 시작되었는지 아니면 수입된 건지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독립적으로 식량 생산을 시작한 곳 중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은 어디일까?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 ‘서남아시아(B.C. 8500년)’로 측정된다. 대부분의 지역들이 서남아시아의 가축·작물을 수입하여 지역적으로 가축화 및 작물화하였다. 그래서 서남아시아로부터 들여온 가축 작물을 ‘창시 가축 작물’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대부분의 지역들은 창시 작물을 수입한 후 식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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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알아보자. 각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이 다른 지역의 창시 작물들을 들여와서 스스로 농경민이 되었을까? 아니면 다른 지역의 농경민들이 창시 작물을 가지고 쳐들어와서 그것을 바탕으로 인구가 늘어 그 지역의 수렵민들을 죽이거나 쫓아낸 것일까?


이집트는 전자의 경우로 추정된다. 남아공은 농경민이 되지는 않았지만, 인구 교체는 없었다. 반면 외래 민족이 밀려들면서 식량 생산이 시작된 확실한 지역들이 있다. 캘리포니아, 북아메리카 서북부의 태평양 연안,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호주, 시베리아 등이 그렇다. 이곳들은 모두 유럽의 농경민과 목축민들이 쳐들어와서 그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을 살해하거나 감염시키거나 쫓아내면서 인구 교체가 이루어진 곳이다. 이것은 근대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문자나 책을 통하여 당시 상황들이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밖에도 외래 가축 작물에 의한 식량 생산과 외래 민족에 의해 인구가 교체되는 현상은 선사시대에도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증거가 빈약해서 고고학의 도움을 빌리거나 언어학적 증거에서 유추할 수밖에 없다. 가장 확실한 것은 교체된 수렵 채집민들의 골격이 다르다거나 외래 민족이 농작물과 가축뿐만 아니라 토기까지 들여왔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식량 생산이 독립적으로 발전한 곳은 세계의 몇 지역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각각 시기가 크게 달랐다. 어떤 지역들은 핵심 지역(독립적으로 가축 및 작물을 생산한 지역)으로부터 식량 생산법을 배웠고, 어떤 지역들은 핵심 지역의 식량 생산자들로 교체되었다. 또 어떤 지역들은 아예 식량 생산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결국 식량 생산을 일찍 시작한 지역이 총 균 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도 일찍 출발한 셈인데, 식량 생산이 시작된 시기와 양상이 지리적으로 달랐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다섯 장에 걸쳐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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