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 신학과 인문학의 공존을 통하여

by Sun



2020년을 맞이하면서 자기계발 7대 목표를 세웠었는데, 그중 하나가 인문학 공부에 대한 비중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과학주의가 팽배하고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인문학 공부라니 꽤나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늘날의 시대는 이미 인문학을 요청하고 있다. 인문학적 사고가 기반이 되어 있는 인간만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종속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파고’와 같은 현상을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독서리뷰 1편 ‘에이트’ 참고)

아무튼, 이러한 나의 생각을 두란노에서 진행하던 도서 이벤트에 기고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당첨이 되어서 이 책을 선물 받게 되었다. 사이즈도 작고, 무게도 가벼워 금방 읽겠다 싶었는데,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책을 읽는 내내 나의 지적 자만심과 지적 허영심이 얼마나 높이 솟구쳐 있었는지 절실히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기본적인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꽤나 어렵다. 또한, 근본주의나 교조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겐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책이다. (어쩌면, 개혁주의 신앙인들에게도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만큼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인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인본주의’가 많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인문학’이며, 이 책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인문학의 존재 이유와 기독교의 진리와의 접점을 이렇게까지 탐구한 책은 근래 읽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인문학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렇게 인간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지는 사상을 ‘인본주의’라고 하며, 영어로는 ‘휴머니즘(Humanism)’이라고 한다. 휴머니즘은 중세 신(GOD)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의 포문을 연 근대화 운동 중 하나이다. 근대화는 인간의 생각에 자유를 부여하며 다양성, 개방성, 창조성이라는 가치를 탄생시켰다. 이것은 선진사회로 향하는 뿌리와 밑동이 되었는데, 그렇게 근대화에 빠르게 진입한 국가들은 민족과 사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정신을 꽃피우며 인문학적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반면에, 근대화에 뒤늦게 진입하거나(ex. 대한민국) 거부한 국가(ex. 공산주의 국가)들은 인문학적 기초를 다지지 못했고, 성장과 실용만을 추구함으로써 자주성과 주체성을 잃어버리거나 자유와 인간을 배제해 몰락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선진사회의 성장과정에는 인문학적 정신이 존재했으며, 그 정신을 한 발 앞서 수용한 서구사회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발전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https://blog.naver.com/gppchm/220323519608)


인문학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은 '언어'다. 인문학은 언어와 문자 등으로 개념화된 사상을 취급하는 학문이다. 언어는 사상과 분리될 수 없으며, 국가와 민족의 정신문화를 이끌어 가는 역사적 책임을 담당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다. 때문에 언어에는 국가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이 공존하는데 이 말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이다. 즉, 진정한 애국은 한국적인 것을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그저 일본 제품을 불매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선전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으며, 진정한 애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 나라의 정신과 문화는 그 나라의 '언어'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제가 일제강점기 시대에 왜 한글을 말살시키려 했는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처럼, 언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인문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문학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은 ‘인간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고대 사회부터 시작된 이 질문은 존재론 - 인식론 - 윤리론으로 전개되어 왔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여러 학문들이 차용되었다. 그러나 통일된 인간관을 얻기가 매우 어려워 인간 이해에 난점이 많았고, 이러한 난점을 구원하기 위한 대상으로 이성•도덕•윤리 이상의 것, 초월적 존재를 요구하였다. 이것은 인간관과 신관, 인본주의와 신본주의, 휴머니즘과 초휴머니즘의 공존이라는 인간 이해에 대한 하나의 틀을 제시하였으며, 인문학과 신학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신의 계시와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탐구하는 인문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언뜻 보면 인문학은 신학과 모순되는 학문으로 보인다. 신학은 신을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인문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순으로 바라보는 이 관점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가 교양과 상식을 잃어버린 종교로 전락해버렸다. 건전한 종교와 참다운 신앙은 언제나 좋은 인간성 위에서 건설되는 법이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회가 교회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독교 정신인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과 신학의 양립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포함하고 초월하며 기독교의 진리로 흡수 완성시켜야 하는 하나의 과제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본질과 존재를 다루지 않고 종교적 진리를 논하는 것은 결코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다. 진리는 주체적이며, 인간의 유한성과 시간성은 진리의 무한성과 영원성 앞에서 필연적으로 드러난다. 인간의 본질과 존재론적 위치를 규정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의사(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문학을 처절하게 공부하고 끝까지 탐구하다 보면, 인문학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와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규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이성과 윤리•도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마지막 관문에 도달했을 때, 참된 진리와 신을 요청하며 복음이 들리게 되는 구원의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인문학이 주는 유익이 아닌가 싶다. 끝까지 공부하되, 성경 앞에서 전부 버리는 것임을 말이다.



* 구글 ‘인문학 정의’ 검색 인용



#sunwriter #썬작가




keyword
팔로워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