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지겹도록 이야기했지만 한 번 더 언급하겠다. ‘총 균 쇠’는 오늘날 세계가 불평등하게 된 직접적인 요인이다. ‘총 균 쇠’를 먼저 획득한 대륙은 그렇지 못한 대륙보다 더 빠른 시간 내에 문명을 일궈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남들보다 더 빨리 총 균 쇠를 선취할 수 있었던 것일까?
궁극적인 요인은 동서의 축 같은 지형적·환경적 요인이다.(이것은 10장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사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요인인데, 그것이 바로 수차례 언급했던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를 통한 식량 생산의 여부’다.
인류의 역사는 대부분 유산자(농경민)와 무산자(수렵·채집민)의 불평등한 관계로 이루어져 왔다. 유산자는 무산자보다 더 빠르게 기술적이고 혁신적인 사회와 문명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동식물의 가축화 및 작물화’를 통해 식량 생산을 원활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기 유산자들은 어떻게 동물을 가축화하고 식물을 작물화를 할 수 있었을까? 그 기법들을 어떻게 알고 써먹은 것일까?
앞으로 총 4장에 걸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볼 것이다. 첫 번째는 ‘식물의 작물화’다. 초기 농경민들은 어떻게 식물을 작물화했을까? 생각을 해보자. 모든 농작물은 야생식물종에서 생겨났다.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농작물은 모두 농작 기법을 통해 야생식물을 작물화시킨 것들이다. 지금에야 재배 기법이나 분자유전학의 기술을 사용하여 작물화를 하지만, 초기 농경민들은 그렇지 않았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야생식물을 농작물로 작물화할 수 있었던 것일까?
흥미롭게도, 저자는 초기 농경민들이 무의식적으로 작물화를 했다고 주장한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에겐 작물화를 할 어떤 본보기도 없었을뿐더러, 종자를 퍼뜨릴 의식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식물을 선택했고, 그것을 농작물로 변형시켰다.
우선 그들은 먹을 수 있는 종자만을 선택하여 작물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눈으로 보이는 어떤 조건들(크기, 맛, 살이 많거나 씨가 없는 과일, 기름이 많은 종자, 긴 섬유 등)에 따라 특정 식물을 선택하고 작물화를 진행했다. 가령, 그들은 열매의 크기가 작은 종자보다는 큰 종자들을 선택했을 텐데, 무의식적으로라도 고작 작은 열매를 먹기 위해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려고 하진 않기 때문이다. 즉, 초기 농경민들은 무의식적으로 조건들에 맞는 개체를 수확함으로써 그 식물들을 널리 퍼뜨려 작물화의 기반을 닦은 것이다.
그러나 그 밖에도 어떤 보이지 않는 이유로 작물화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종자 분산의 기법, 발아 억제물, 식물의 생식, 자화수분 등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돌연변이 종자의 유용성과 자연선택으로 설명된다. 즉, 돌연변이 종자가 정상적인 종자보다 인간에게 더 유용하게 작용함에 따라 인간들이 돌연변이 종자를 선택해 작물화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 농경민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눈에 보이는 특성들과 눈에 보이지 않은 특성들을 선택함에 따라 야생식물을 작물화하였다. 그러나 식물 스스로가 작물화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것은 다양한 자연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연선택의 과정 때문이다. 환경이라는 조건이 달라지면 식물 사이에서도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진다. 이 과정에서 야생식물의 작물화가 이루어지는 등 수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종은 오래전부터 작물화가 되고, 어떤 종은 지금까지도 작물화가 되지 않은 점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이다. 즉, 식물마다 작물화의 난이도가 크게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식량으로서의 가치가 우수한가?’이다. 농작물은 유형에 따라 재배와 저장에 있어 차이점을 보인다. 어떤 농작물은 성장 속도가 느려 재배까지 수십 년이 걸리고, 또 어떤 농작물은 재배하는데 까다로운 기술을 요구한다. 반면 어떤 농작물은 성장 속도가 빠르고,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많으며, 재배법도 쉽다.
예를 들어, 곡류는 다른 농작물에 비해 성장 속도, 재배 면적당 생산량, 탄수화물 함량 등이 우수하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가장 많이 소비하는 농작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즉, 식량으로서의 가치가 다른 농작물보다 월등함에 따라 인간에서 선택을 받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견주어 볼 때, 7장(야생 먹거리의 작물화)의 키워드는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초기 농경민들이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선택을 했기 때문에 야생식물들 사이에서 진화가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그들은 그들에게 유용한 식물을 발견하고 작물화함으로써 작물화 기법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