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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May 18. 2020

[서평] 일의 기쁨과 슬픔

- 일의 양면성에 대한 8가지 에피소드


   공감소설. 하나의 장르가 탄생한 것 같다. 이 책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단어다. 8개의 짧은 단편들을 읽으면서 어느 하나 공감을 하지 않은 단편집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내용이 현실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누구나 겪을 만한 혹은 주위에서 들어볼 법한 사건들로 짜여 있다. 그러나, 이 공감에는 하나의 조건이 있다. 그것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아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이 책은 '일하는 사람'의 삶의 단면들을 아주 적절하게 오려내어 묘사했다. 일의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가볍고 무거운 가십거리들을 현실적으로 균형 있게 그려냈다. 또한 인물들의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 몰입도를 증대시켰고, 일을 통해 얻거나 잃을 수 있는 인간관계, 사랑, 여가, 또는 그 밖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기쁨과 슬픔이라는 양면적 감정을 통해 전달해낸다. 그래서인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이입할 만한 보편적 이야기로 승화되는 것 같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의 당위성에 대한 양면성(기쁨과 슬픔)을 개개인의 보편적 삶 속에서 포착하며, 순수함을 잃지 않고, 절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려는 희망과 공감의 이야기를 미묘하게 그려낸 8개의 단편집 '일의 기쁨과 슬픔'. 지금부터 간략히 소개해본다.






#1. 잘 살겠습니다

   회사 동기 언니의 세상살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주인공의 이야기.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내면에서 언니를 질책하며, 그 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지만 언니는 여전히 순진무구하기만 하다. 눈치 없고 센스 없는 언니의 모습들을 보며 주인공은 화를 내지만, 글쎄 나는 오히려 동정심이 들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없고, 사회성은 살짝 서툴고, 청첩 문화와 같은 자본주의 교환 논리를 무시(?)하는 모습들. 뭐,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순진하게 세상살이를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묘한 동질감과 이해심을 느끼며 부디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응원을 나지막이 건네본다.



#2. 일의 기쁨과 슬픔

   일을 통해서 뜻하지 않는 기쁨을 발견하기도 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슬픔을 경험하기도 한다. 무엇이 먼저 찾아올지는 모르는 일이고, 누구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주인공 안나는 중고마켓 어플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어느 날 어플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물건을 올리는 거북이알(닉네임)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직거래에 나서게 된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만난 거북이알의 정체와 사연을 들으며 안나는 노동자로서의 연대감을 느낀다. 고용관계에서의 불합리한 요소는 자본주의 사회라면 어디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 월급을 받자마자 공연 티켓팅을 시도하는 안나의 모습을 통해 일의 기쁨과 슬픔을 대비시킨다. 일의 양면성을 이것보다 더 잘 보여주는 스토리는 아마 없을 것 같다.



#3.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남편과 사별한 유부녀(?)를 짝사랑한 어느 회사원의 이야기. 묘한 연애 감정을 즐긴 자의 최후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욕망을 욕망한 자의 최후라고 해야 하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천천히, 조금씩 자신의 연애 스킬을 가동하며 그녀에게 접근했으나, 오히려 그녀는 한 수 위에 있었다. 잡힐 듯 말 듯 미묘한 향기를 남기며 호감을 유도하는 그녀의 행동이 자신의 스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착각하던 주인공은 마지막 날 그녀에게 알 수 없는 카운터 어택 한 방으로 비참히 일본을 떠나게 된다. 마음이 통했다면 행위는 무의미하지 않냐는 그녀의 말은 의미가 있다. 암시적 호감이 곧 욕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처음부터 착각 속에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주인공의 자의적 해석은 아니었을까.



#4. 다소 낮음

   즉흥적으로 창작해낸 '냉장고송'으로 단숨에 유튜브 스타가 된 어느 아마추어 음악인의 이야기. 그러나 자기만의 예술 세계에 갇혀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음원 발매, 여자친구)을 스스로 걷어찬다. 마치 예술인은 현실 감각이 떨어져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사는 고집불통이라는 속설을 증명해내듯이 말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인정해 주는 것만 같았던 강아지의 뜻밖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자신이 다소 낮은 위치에 있는 음악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냉장고의 절전 스티커를 보며 깨닫는다. 창의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이상과 몽상을 간직하는 것은 좋지만 처한 현실과 자기 분수를 자각하고 주어진 기회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예술가가 아닐까 싶다.



#5. 도움의 손길

   기독교 돌려까기가 아닌가 싶다.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기독교인의 위선적 면모를 주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일처리가 달라지는 가사도우미로 적절하게 풍자했다. 그러면서 주인의 말문을 막히게 하는 뻔뻔함 섞인 말로 관계의 주도권을 쥐는 손길은 과연 도움의 손길일까? 아니면 도우미의 손길일까?



#6.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첫 출근길의 기쁨과 슬픔을 담아냈다. 첫 출근에 따르는 과도한 부담감과 뜨거운 두려움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이탈리아 훈남의 매너로 증발시켜버렸다. 벌써부터 월급 계산기를 두드리며 택시를 티고 출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묘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것이 첫 출근 만이 맛볼 수 있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7. 새벽의 방문자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매일 밤마다 누군가 찾아온다. 그리고 문을 두드린다. 초인종을 누른다. 반복되는 현상에 주인공은 두려움을 느끼지만 이내 의심을 품고 현상에 대한 어떠한 단서를 찾아내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단서는 주인공이 일하고 있는 클린사이트 업무에서 얻을 수 있었다. 오피스텔의 목적이 단순히 주거공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을 통해 발견한 것은 일의 기쁨이라고 말해야 할까, 슬픔이라고 말해야 할까.



#8. 탐페레 공항

   핀란드 탐페레 공항에서 주인공은 어느 할아버지를 만나 빵과 삶을 나눈다. 느릿느릿하게, 조곤조곤 말을 하시던 할아버지의 구수한 삶의 향기는 탐페레 공항의 이미지를 훈훈하게 만들어 주인공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탐페레 공항의 할아버지 생각에 편지를 쓰려고 준비를 하지만 삶은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분주함 속에서 지내던 나날 중, 할아버지에게 쓰려고 했던 편지지를 보게 되고, 이전에 받아뒀던 연락처로 할아버지에게 연락을 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하다 보면 있을 법한 이야기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의 연결고리는 연결과는 무관하게 어떻게든 가지고 있을 테니까. 6년 전 브라질 여행이 떠오른다. 그때 만났던 하비에르는 잘 지내고 있을런지.






   일의 기쁨과 슬픔. 일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양면성은 공존한다. 기쁨이 없고 슬픔만 있는 일은 착취이며, 슬픔이 없고 기쁨만 있는 일은 놀이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은 아마 일의 양면성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일이 주는 기쁨(월급, 사랑(?), 기회, 깨달음, 설렘 등)과 슬픔(자본주의 문화, 고용관계, 분주함 등)을 다양한 삶의 모습들로 나타내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한편으로는 단편들의 결말을 완벽하게 맺지 않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주말이 가면 출근을 하고, 출근을 하면 퇴근을 하는 것처럼 반복되고 연속되는 일상을 의도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우리의 삶은 하나의 에피소드 만으로 끝나는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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