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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Feb 03. 2022

[서평] 숲속의 자본주의자 / 박혜윤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지만 완전한 삶


   흐리멍텅하다. 이 책을 읽은 한 독서모임 멤버의 평이다. 단 한 마디의 짧은 평이지만, 나는 이것만큼 잘 어울리는 평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흐리멍텅하다. 이도 저도 아니다. 제목에서 말하는 것처럼 숲속에서 자연주의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온전한 자본주의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말그대로 이것저것 얽히고설킨 흐리멍텅한 삶을 살고 있다.


   왜 이 책(숲속의 자본주의자)이 흐리멍텅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은 저자(박혜윤)가 자신의 삶을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탐구하고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실천해나간다. 때로는 자연주의자처럼 살아보고, 때로는 자본주의자처럼 살아보며, 또 때로는 미니멀리스트로 살아보고, 때로는 에피쿠로스주의자처럼 살아본다. 그렇게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실험하고 음미해가면서 자신에게 맞는 적정한 삶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저자는 나만의 페이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 나만의 행동양식, 나만의 소비 기준 등을 통해 스스로 삶을 음미하고 향유할 수 있는 적정선과 한계선을 찾고 또 찾아가며 나만의 삶을 완성해나간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글에서 느껴지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마치 너무나도 많은 자극 속에서 바쁘고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숨을 돌릴 수 있는 일말의 휴식 시간을 제공해주는 것만 같다. 삶을 실험할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들에게 저자의 삶으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 같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저자는 자신이 음미하고 향유한 삶의 방식이 어떤 의미를 낳았고,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흐리멍텅하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여러가지 방향성을 열어 놓고 계속해서 자기와 맞는 삶의 방식들을 찾고 또 찾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만 한다. 그렇게 살 때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가 담긴 진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저자는 또한 철학자들의 철학이나 소설가들의 소설 그리고 몇 몇 실화들을 자신의 삶의 맥락에 맞게 인용하여 재해석한다. 그 지점에서 번뜩이는 인사이트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삶을 합리화 또는 애써 변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삶의 방식들이 과도하게 파편화되어 있어서 모순이 느껴지는 점도 있다. 특히, 아무렇게나,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거라는 마인드는 비전이나 야망이 없는 삶을 진짜 원하는 건지 아니면 회피하는 건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불분명하다. (성장 욕구가 가득한 내겐 저자의 이런 마인드가 별로 도움이 되진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런 삶은 금방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튼튼히 지탱해줄 기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주의, 미니멀리즘, 생태주의, 에피쿠로스주의 등등 현재 유행하고 있는 삶의 방식들을 모조리 향유해가면서 계속해서 삶의 방향키를 조정하고 또 조정한다. 전형적인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삶인데, 인생을 관통하는 큰 이야기의 뿌리 없이 작은 이야기들로만 구성된 삶은 강한 바람이 불었을 때 흔들리지 않을까싶다. 음미와 향유로만은 인생의 내력을 키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읽으면서 이게 왜 베스트셀러인지 의문이 많이 든 책이었다. 물론 책에서 풍겨지는 자연주의적인 느낌과 검소와 절제를 통해 적정과 균형을 찾으려는 저자의 노력 그리고 다양한 삶의 방식들을 음미하고 향유하려는 실천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삶조차도 어느 정도 자본을 전제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과 더불어 앞으로 10년 뒤 저자는 어떠한 삶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은근한 궁금증도 든다.


   어쩌면 이 책의 흥행은 자유를 바라고 또 바라는 대중의 욕망과 요즘 유행하는 삶의 방식들을 조합해서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모순적이면서 흥미로운 제목을 만들어낸 마케팅의 승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보다는 자본을 통해서 숲속에서든 도시에서든 어디에서나 자유를 누리기 희망하는 자유주의자가, 아니 그래서 흐리멍텅이라는 단어가  책과 어울리는 이유다.



[서평] 숲속의 자본주의자 / 박혜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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