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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Feb 02. 2022

[서평] 내 마음 살리기 / 오스 힐먼

- 소명을 이루기 위해 장애물 극복하기


   상담 선생님은 늘 내게 경직되어 있다고 말했다.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내게 마음의 벽이 존재한다고 말했고, 내 주위의 친구들은 내가 항상 피상적이라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대수롭지 않게 들렸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성격과 기질의 차이'로 치부해버렸고, 깊이 있게 재고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의 덫에 빠진 나는 오랜 시간 그 모습이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경직, 마음의 벽, 피상적이라는 단어들이 결코 성격과 기질의 차이로 생기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 데에는 심리학과 상담의 도움이 컸다. 이것들은 내가 외면하고 있는 문제를 직면할 수 있게끔 내면의 거울을 제공해주었다. 나는 내가 왜 심리학과 상담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궁금했는데,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내 진실된 자아의 몸부림이었음을 깨달았다. 거짓된 자아의 감옥 속에 억압된 진실된 자아의 외침이 나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심리학의 세계에 기웃거리게 만든 것이다.


   경직, 마음의 벽, 피상적, 이러한 단어들은 나의 거짓된 자아를 대변하는 단어들이었다. 이것은 차이와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 내가 외면하고 있는 - 문제 그 자체였다. 나는 진실된 삶을 살기 위해선 반드시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나의 거짓된 자아를 허물고 진실된 자아를 찾아 나서는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이 책(내 마음 살리기)을 만났다. 이 책은 나의 문제와 그 문제가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거짓된 자아는 우리 마음의 상처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하나의 방어기제로서 잠재의식 속에서 일어난다.(105) 거짓된 자아는 보통 유년기 초기에 겪었던 상처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래서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모조 인격의 가면을 만들고 벽을 세우는데, 이것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방해물이 된다.


   상처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의 진실된 내면을 공유하지 않는다. 타인이 자신의 속마음을 알게 되면, 그래서 혹여나 자신의 연약함이나 결함을 알게 되면 틀림없이 자신을 거부할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들은 가면과 벽을 쉽게 허물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감춰야 상처받을 일이 더 적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다시 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재능과 능력을 찾으려고 한다. 이것들을 자기 존재와 동일시하여 자신의 본심과 상처를 가린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을 외면한 거짓된 자아의 몸부림일 뿐이다. 진실된 자아를 발견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거짓된 자아 혹은 겉치레로 꾸민 인격으로 아픔을 은폐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과거에 대한 진실을 배우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게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는지를 깨닫고, 그 진리 안에서 걷기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의 과거에 관한 진실을 아는 게 자유와 치유를 향한 첫걸음이 된다. (121)



   여기서 이 책(내 마음 살리기)의 원제의 의미를 더욱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Overcoming hindrances to fulfilling your destiny. 이 책의 원제다. 직역하면 ‘당신의 운명을 수행하기 위해 방해물들을 극복하는 방법’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을 수행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또, 운명을 수행하는 삶에는 어떠한 방해물들이 있는 걸까?


   우선 저자(오스 힐먼)는 그리스도인이다. 따라서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운명이라는 개념에 대해 해석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운명이 있다. 그 운명이란 하나님의 궁극적 계획을 이루는 것이다. 그것을 완수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destiny다. 하지만 사탄은 그리스도인이 그 목적대로 사는 것을 방해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무가치함, 부적당함, 불안함, 버려짐 같은 메시지들을 주입시키며 운명의 항로를 이탈하게끔 만든다.


   특히, 사탄은 유년기를 공략하는데, 유년기는 자가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시기, 즉 무방비 상태로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년기에 사탄의 메시지를 받게 된 아이는 정신과 정서 발달에 영향을 받게 되고(이것을 책에서는 발육 정지라고 정의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같은 메시지에 시달리게 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어린 시절 상처 혹은 부정적 경험의 학습 개념과 비슷하다)


유년기의 상처로 인해 생기는 발육 정지는 우리의 죄의 본성을 증폭시키거나 확대시킨다. 상처가 깊을수록 우리는 더 이기적으로, 더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 (119)


   따라서 저자는 이러한 원리를 파악하고 우리의 어떤 모난 특정 행동만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정 행동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치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대부분 유년기로부터 비롯되고, 사탄의 간교한 계략으로부터 시작된다. 즉 내 안에 있는 유년기의 상처와 아픔(방해물)을 진실되게 마주하여 그것들을 인정하고 치유할 때(극복할 때),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운명)을 이루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거짓된 자아는 '성공한/성취한 이미지'였다. 나는 이 이미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 이미지는 생애주기 혹은 환경에 따라 달라졌는데, 어떤 때는 공부를 잘하는 이미지, 또 어떤 때는 축구를 잘하는 이미지, 또 어떤 때는 글을 잘 쓰는 이미지 등으로 계속해서 변해갔다. 나는 언제나 그러한 이미지들로 보이기를 원했다. 왜냐하면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정받길 원했다. 인정받지 못하면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여겨졌다. 내 마음의 근원에는 항상 인정 투쟁이 자리 잡고 있었고, '인정을 받아야만 사람들이 나를 거부하지 않을 거야'라는 메시지가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왜곡된 메시지라고 부르고, 저자는 유년기 시절 사탄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라고 말한다. 이것이 일반 심리학과 기독교 심리학의 차이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인정받기 위해 애썼다. 업적이 될 만한 것, 타이틀이 될 만한 것 등 인정받을만한 것은 모조리 성취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들은 취하면 취할수록 관계는 더 피상적으로 향해갔고, 스스로 경직되었으며, 마음의 벽을 겹겹이 세우게 됐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무서웠기 때문이다. 외적인 치장과 내면의 외면이 관계에서의 진실성을 결코 담보하지 못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자기방어를 위해, 인정받기 위해 타인과의 마음의 연결을 방해하는 거짓된 자아의 옷을 입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취가 아니라 마음의 연결을 통해 서로 관계하기를 원하신다. (204)



    늘 거짓된 자아의 옷을 입고 있던 나는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지 못했다. 솔직하지 못했고, 진실되지 못했다. 이것은 나로 하여금 타인들에게 경직, 마음의 벽, 피상적이라는 단어를 유발했고, 더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데 실패했다. 진실된 자아로서 그들을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된 자아 - 있는 그대로의 모습, 어쩌면 연약하고 무능력하며 실패한 모습 - 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 진정으로 친밀하게 사귀고자 한다면 거짓된 자아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관계에서의 친밀함이다. (150)


   하지만 이제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 무엇이고,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거짓된 자아를 죽이는 일이고, 용기를 내서 나의 진실된 자아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두려운 일이지만, 나의 진정성 있는 삶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 두려움을 자유와 치유를 위한 첫걸음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그 은혜를 믿는다.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벌거벗고 연약한 자아 안에서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진정한 변화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기 원한다면 무능력과 연약함이 나의 진정한 상태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 사랑에 항복하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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