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명의 편견
효율성. 내가 정말 좋아하는 단어다. 나는 항상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효율성이란 무엇인가? 효율적인 삶이란 어떤 삶이며, 효율적으로 사는 방법에는 어떠한 방법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효율성)을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은 나에게 효율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주었는데, 효율성의 문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관의 차이로 보일 수 있으나,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차이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11)
저자(이근세)는 *'프랑수아 줄리앙'이라는 철학자의 관점을 토대로 효율성의 개념과 효율성에 대한 동서양적 간극을 설명한다. 그는 효율성에 대한 두 가지 세계관 - 동양적 효율성과 서양적 효율성 - 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 의미를 조명하려는 시도를 한다.(15) 물론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여기서 내리지 않는다.
* 동양 사상을 탐구하고 동서양의 교류를 실천한 서양 출신의 철학자
서양적 효율성의 기반은 '모델화'다. 모델화란 실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관념적으로 먼저 구상하고, 그 후에 의지와 행동을 통해 관념적 구상을 현실 속에 구체화하는 구도를 말한다.(18) 쉽게 말해서 이론/실습, 목적/수단, 사유/행동, 계획/실천과 같은 구조를 통해 목표 대상을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서구 문명이 이런 식으로 모델화를 추구하는 이유는 '완전성' 때문이다. 서구 문명에는 완전성을 전제하는 보편관념이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기독교의 신, 데카르트의 수학, 라이프니츠의 지성, 칸트의 자유 등이 그렇다. 이러한 보편관념은 세계는 가변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고정불변하고 완전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형성되었으며, 서구 문명은 이 전제를 모델로 삼아 세계에 완전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국가의 건설은 위대한 제작자를 모델로 삼아 영원한 본질들의 절대성에 시선을 맞추고 신적 모델을 구현해야 한다고 말했다.(2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론과 실천을 매개할 수 있는 프로네시스를 통해 '중용'이라는 개념을 도출하여 한 발자국 더 나아갔으나, 사실 중용도 나중에 구현해야 할 대상이자 목표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모델화 구조를 벗어나질 못한다.
서구 문명의 핵심 종교인 유대교와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창조된 세계 보다 완전한 세계(천국), 신의 절대적 완전성 등의 개념들이 내재한 성경은 서양의 모델화 전통과 맞물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결국 성경은 현실 세계의 불완전성, 속박, 타락으로부터 탈출구를 찾는 이 세계와 다른 이상향, 자유, 해방 관념의 뿌리가 되었고, 노예제 시대 흑인 노예들의 해방 창구로 작용했다.(32)
모델화는 근대에 들어와서 만개하게 된다. 모델화는 세계적으로 표준화가 되었는데, 이는 과학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과학은 그 자체로 거대한 모델화 작업이다. 과학의 요소인 수학과 기하학이 모델 중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학적 모델화는 서양의 힘이었다. 과학은 수학을 자연에 적용함으로써 자연법칙이라는 개념을 도출하는데, 여기서 고전물리학, 공학물리학이 탄생함으로써 세계의 정세가 바뀌게 된다. 중국이 뒤처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34)
모델화는 경제학과 정치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세상의 조화는 신의 섭리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기독교 신학 교리가 모델화와 일맥상통하게 작용함으로써 경제학과 정치학에까지 뻗어나간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모델과 각 개인이 자신의 이성을 따르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일반 의지가 형성된다는 민주주의 이념 역시 조화 개념의 섭리 사상에 근거한 모델이다.
이처럼 모델화 개념은 희랍 철학에서 정식화되고, 기독교 사상에서 유지되며, 근대에 와서 정점에 이르렀다. 또한, 모델화는 수학과 근대 과학의 발전과 함께 확실한 지식의 발판이 되었고, 생산과 경제의 영역에 적용되면서 서양이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과연 모델화는 효율적인 방식인가? 자연의 지배와 기술의 차원에서 효율성을 발휘하지만 인간관계 같은 동태적 영역에서 동일한 효력을 갖는가? 모델화를 통한 효율성은 일반화될 수 있는가?(39)
저자는 서구적 효율성의 한계와 내적 문제를 독일의 전쟁 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관점을 빌려 설파한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변화하는 분야다. 전쟁은 항상 예견으로부터 이탈하고, 이론과 마찰이 생긴다. 때문에 균형을 다시 잡고 저항을 무찔러야 하는 상황이 늘 발생한다. 즉, 전쟁은 계획이나 이론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이게 전쟁의 본질이자 개념이다. 그래서 모델화는 실재적 전쟁을 포착하지 못하며, 사유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모델화는 필연적으로 영웅을 요청한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모델의 이탈 속에서도 상황을 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천재적 능력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44) 할리우드 같은 서구 문화에서 늘 영웅주의 플롯이 등장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서구적 효율성은 계획과 목적을 치밀하게 세우고 강력한 의지로 실천에 옮기는 모델화 구도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모델화가 무산될 때 영웅을 요청한다.
동양에서는 중국 사상을 배경으로 효율성을 설명한다. 중국의 역사와 철학이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중국적 효율성의 핵심은 '형세'다. 형세란 무엇인가? 손자병법에 보면, '형'은 힘의 관계로서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형태를 취하는 상황이며, '세'는 이 상황 속에 함축되어 있는 잠재력이라고 말한다.(47) 한 마디로, 서구의 영웅주의 같은 개인적 노력이나 주체의 개입보다는 상황에서 비롯되는 객관적 조건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성공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상황은 그 자체로 결과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상의 배경은 '실재는 운행이다'라는 동양철학에 근거한다. 중국은 서양처럼 세계가 단일한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은 세계는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세계(자연)는 음양의 교대에 의해 상보적으로 순환한다고 말한다.(74) 때문에 자연의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효율적일 수 없다. 모든 것은 계절이 변화하듯 자연스럽게 전개되어야 하며, 인간의 행위나 사회제도 역시 자연의 운행 질서를 모방해야 한다. 즉, 중국적 효율성은 운행이라는 동적인 상황 속에서 형세를 읽는 것을 뜻한다.
상황의 잠재력에 의거하는 효율성이나 전략은 손자병법에서 잘 드러난다. 손자병법에서 언급하는 계획은 무언가를 구상하고 방법을 미리 헤아리는 서구적 용법이 아니다. 손자병법의 계획은 적군과 아군 사이의 세를 헤아려봄으로써 상황 잠재력의 평가와 상호 간의 역학 관계 점검을 통해 세의 향방을 잡아내는 것이다. 전쟁은 항상 상대적이며, 두 진영 간의 관계에 따른 상황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유리한 조건을 잡아서 주도권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형세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54)
형세가 드러나면 승자와 패자가 결정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은 이러한 의미다. 전쟁을 잘하는 자들은 모두 이길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 이들은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저 객관적 조건을 유리하게 만든다. 물론 승리를 위해 특정한 전략이 요청되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항상 적의 움직임에 연동하는 상황 전략이다.(58) 그래서 쉽고, 피도 흘리지 않고, 눈에 띄는 장수가 없다.
효율적인 전략은 승리를 쉽게 만들고, 사람들이 칭찬할 생각도 하지 않을 정도로, 점진적인 방식으로 개입함으로써 승리의 방향으로 상황이 진화하도록 이끌어가는 데 있다.(59) 서구적 전략이 목적/수단의 도식을 통해 적의 직접적 파괴를 추구한다면, 중국적 전략은 조건/귀결의 도식을 통해 상황의 변형과 적의 탈구조화를 추구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따라서 공성전은 최악의 방식이며, 적을 온전히 두고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61)
이러한 중국적 전략은 대인 관계와 외교술에도 나타난다. 이들은 상대의 성향에 맞는 방법을 택한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기 때문에 상대를 파악한 후 그에게 적응하는 상황성이 핵심이다. 먼저 나서는 것보다 타인의 반응에 따른 상황에 연동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만디'와 '콰이콰이'가 대표적인 예다. 중국인들은 형세가 드러나기 전에는 만만디 전략을 사용하고, 형세가 드러났을 때는 콰이콰이 전략을 사용한다. 만만디는 말 그대로 느리고 또 느리게 대처하는 것이고, 콰이콰이는 재빠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만만디는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때는 최대한 느리게 대응함으로써 상대방을 지치게 하여 속내를 드러내도록 유도한다. 반면, 콰이콰이는 이익이 눈앞에 있을 때 재빠르게 대처하는 전략이다.(61) 결론적으로, 만만디와 콰이콰이는 적의 균형을 서서히 무너뜨리면서 빈틈이 보이는 전투에서 재빠르게 끝내는 효율적인 전략인 셈이다.
중국적 효율성은 도덕에서도 드러난다. 맹자는 어진 사람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도덕성은 만인의 본성에 부합하는 것이므로 도덕성이 몸에 밴 사람은 점차 영향력이 커지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를 따르게 된다. 그래서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감화시키고 교화시킬 수 있다. 반면 폭군은 강압적이다. 때문에 많은 저항에 부딪히고, 설령 권력을 잡았다 해도 손실이 크다.
정리해보면, 서양의 효율성은 '모델화'를 기반으로 한다. 모델화는 지성에 의해 구상을 하고 의지와 행동을 통해 구상을 현실에 옮기는 전략 구도다. 즉, 관념적 형상이 목적과 계획으로서 제시되고 그것을 구현할 행동이 뒤따르는 구도다. 때문에 모델화는 플랜에 난관이 있더라도 밀어붙이는 적극성이 요구되며, 붕괴 시에는 천재적 임기응변 능력을 지닌 영웅을 요청한다.(78)
반면 중국의 효율성은 '형세'에 기초한다. 형세는 상황의 흐름을 읽고 타는 것을 말한다. 만약 형세가 유리한 쪽으로 기울 경우, 재빠르게 행동하여 승기를 잡는 전략을 취한다. 허나 그렇지 않다면, 행동을 포기할 정도로 기회주의적이고 수동적인 전략을 취한다. 때문에 중국의 효율성 전략은 객관적 형세의 조건에 따라 귀결이 필연적으로 산출되므로 사태의 행로가 이탈되지 않는다.(80)
이처럼 저자는 서양과 동양의 철학과 사상을 통해 효율성 개념을 분석하고, 나아가 국제 정세를 전망하기까지 이른다. 작금의 시대는 서구 문명(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따라서 모델화 구도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모델화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줄리앙은 마찰이 생긴다 하더라도 이상적 형태가 목적으로서 제시될 때 비로소 협의나 타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83) 즉, 모델이 제시되어야 찬반 논쟁을 할 수 있는 공론장이 펼쳐지고 이것이 민주주의 형성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에 부재한 것이 바로 '공론화'다. 형세의 파악과 그 변형에서 전략가는 적군 및 아군에게도 비밀 유지가 필요하다. 공적 논의와 자발적 참여의 모든 가능성은 차단된다. 어떠한 이상적 모델이 없기 때문에 그저 상황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액션을 취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언제까지나 2등의 전략에 불과하다. 만약 중국이 국제 정세의 우위를 점하게 된다면, 더이상 형세 전략을 고수할 순 없을 것이다. 1등에 걸맞는 모델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국제 정세는 서양의 효율성 전략인 모델화와 동양의 효율성 전략인 형세를 종합하는 데 있다. 인문학의 행로 역시 동서양의 대화를 향한 모색에 달려있다. 서양의 전략만이 효율적인 것은 아니고, 동양의 전략만이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문명의 편견이다. 가치판단은 사후에나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효율성에 대한 관점을 넓히고,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유연함을 기르는 것이다.
이 책은 언제나 모델화 전략만 고수했던 나에게 형세의 개념을 알려주고, 문명의 편견을 깨뜨려주었으며, 이에 따라 삶에서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좋은 인사이트를 제공해주었다. 효율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앞으로 내 삶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