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 많은 것을 얻을 기회를 연다는 것
나는 축구를 단순히 스포츠 그 자체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나에게 축구는 하나의 언어다. 나는 축구로 세계를 인식하고 축구로 세상을 해석한다. 어떤 현상이든 축구적 세계관으로 연결 지어 의미를 도출하고, 내 삶 속에 재맥락화하여 나의 것으로 만든다.
그래서 나에게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며, 스포츠의 한 종목이 아니다. 나에게 축구란 '경기장 안과 밖이 함께 호흡하며 사회, 문화, 역사, 경제, 정치, 미디어, 경영, 마케팅, IT, 디자인, 건축, 관광, 물리학, 생물학, 교육 등 다방면의 분야와의 연계 플레이를 통해 세상을 재해석하고 변혁시키는 스포츠 그 이상의 것'이다.
때문에 축구를 안다는 건 세계를 아는 것이고,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는 사람을 공부하게 만든다. 물론 모든 분야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 수는 없고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지만,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와 지식·트렌드 등을 습득하고 세상의 다채로움을 마주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축구를 안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축구 철학에 넌지시 동의를 해준 책을 만났다. 바로, 류청 작가의 <축구는 사람을 공부하게 만든다>라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지난 세월 동안 수많은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얻은 인사이트와 축구가 주는 아름다운 가치들을 전달한다. 특히, 자신만의 여행 철학을 녹여내며 도시의 숨결을 세심히 느끼고 도시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튀르키예(터키)의 이스탄불은 세 종교(이슬람, 유대교, 정교회)가 조화롭게 상생(콘비벤시아)해 온 역사를 담고 있다. 맥주가 문화이자 상징인 뮌헨은 수도승들이 만든 도시이며,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도시예술의 진작을 위해 기능적으로 설계된 도시이기도 하다.
파리는 똘레랑스에서 인종차별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세계의 도시이며, 밀라노는 유럽에서 가장 차가운 대도시이자 무채색의 도시로 평가를 받는다. 반면에 피렌체는 미래보다는 과거로 열린 도시 혹은 일상보다 예술을 향한 도시로서 고요한 뜨거움이 내재되어 있는 도시다.
마피아의 도시로 악명 높은 나폴리는 의외로 마르게리타 피자의 원조로 유명하고, 경이롭고 아름다운 유적지가 숨 쉬고 있는 로마는 생각보다 인종차별이 심한 도시다. 공업도시 맨체스터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축구가 있고, 런던은 13개의 프로축구팀이 있을 정도로 축구가 발에 치이는 도시다.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수많은 문화들이 거쳐간 도시다. 때문에 역사와 포용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로 유명하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함께 사원을 공유하고, 예배 장소의 기능을 넘어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는 점을 보면 중동 국가를 향한 편견이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 밖에도 저자는 광저우와 오사카 그리고 모나코에서의 축구 여행기를 담으며 그 도시만의 고유한 느낌을 들려준다. 특히, 여행하면 빠질 수 없는 '음식' 문화를 일일이 체험하고 서술하며 독자들에게 허기를 유발하는 점은 가히 일품이다. 또한, 축구기자답게 특정 도시에서 뛰는 축구선수를 취재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그려낸 점도 색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여행은 편견을 바로잡고 허상을 걷어내는 일이다. 여행자는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직접 보고 느낀 정직한 경험을 가슴에 새기면 된다. (p200)
나 역시도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가면 항상 축구장부터 찾는다. 축구장이 어디에 있는지, 그 도시에 축구팀은 있는지, 있다면 경기 날짜는 언제인지가 늘 우선순위다. 때문에 일정과 동선을 잡는 것이 의외로 수월하다. 경기 일정과 경기장을 중심축으로 전체 일정을 설계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도시에 축구장이 없다면? 걱정하지 말라. 축구 없는 도시는 없다. 모든 도시는 축구의 흔적이 남겨져 있으며, 정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된다. 2015년 인도의 콜카타를 갔을 때, 나는 인도 아이들과 진흙탕에서 축구를 했다. 언어도, 생김새도, 문화도 모두 달랐지만, 그 당시 우리는 축구로 하나가 됐다. 축구로 연결됐던 그 동질감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나는 축구가 세계를 연결해주고 아름다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축구에는 그런 힘이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축구를 사랑한다. 축구를 통해 세계를 더 경험하고, 세상을 더 공부하고 싶다. 축구라는 스포츠에 담긴 수많은 의미와 가치들을 이 세계에 남기고 싶다. 류청 작가의 축구인문학 답사기처럼, 나도 언젠가 전 세계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축구의 매력과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글로 써 내려가는 축구작가의 삶을 꼭 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