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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Oct 13. 2020

[서평] 페스트 / 알베르 카뮈

-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주목받게 된 책이 한 권 있다. TVN ‘책 읽어드립니다’ 유튜브 영상에서 100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몰고 온 책, 각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수직 곡선 그래프를 그리며 당당히 상위 차트에 입성한 책,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유례없는 전염병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 책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왜냐하면 제목 자체가 '페스트' 즉, 전염병을 의미하고 있으며, 소설의 상황이 현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상황이 작금의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은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고, 역주행 신화를 쓰게 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나 또한 같은 맥락으로 흥미를 느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 속의 페스트는 어떻게 생겨났고,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대처했으며, 페스트와의 싸움은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또한, 이 책이 오늘날 코로나 시대에 주는 의미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며, 우리가 취해야 할 삶에 대한 자세와 태도는 무엇일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음으로써 몇 가지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ㅣ성실성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는 ‘성실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꾸준히 하는 것, 하루하루 내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는 것, 나에게 맡겨진 일들에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 일들은 누군가에게는 행정 업무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의료 업무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교육 업무가 될 수 있다.


(p60) 매일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일이었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둘로 나뉜다. 자신의 일을 성실히 다하는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자신의 일을 성실히 다하는 사람들은 현실 감각을 유지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허무주의 혹은 염세주의에 빠지거나 초월주의 또는 향락주의에 빠져 삶을 낭비한다. 이미 망했으니 될 대로 되라는 식, 페스트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라는 식, 작금의 현상을 신의 뜻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식이다.


   예를 들어, 책에는 파늘루 신부라는 인물이 나온다. 파늘루 신부는 종교적 초월주의에 빠져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현실을 해석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병에 걸렸으면 먼저 치료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데 병의 원인과 치료를 신에게서 찾는다. 주인공 리유는 이와 같은 방식을 극도로 거부하지만 파늘루 신부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고수한다. 결국 파늘루 신부는 진찰 한번 받지 않고 병에 걸려 죽는 최후를 맞이한다.


(p391) 인간을 초월해, 자기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지향(신의 섭리)하고 있던 사람들은 결국엔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다.

 

   파늘루 신부를 보면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떠올랐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대체로 많은 교회들이 공공 방역에 협조하고 있지만 일부 교회들의 만행과 비협조로 인해 공공성에 위해를 가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책임 회피이며 비성실성의 표본이다. 종교적 초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마땅히 해야 할 몫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현실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몫, 그것이 곧 성실성이다.


(p172) 따라서, 신이 그렇게 침묵하고만 있는 하늘을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서 죽음과 싸워 주기를 더 바랄지도 모릅니다.



   개인의 성실성이 중요한 또 한 가지 이유는 개인이 승리해야 사회가 승리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진다. 우리도 코로나 사태를 겪어봤듯이 전염병이 창궐하는 사회는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개인은 쉽게 흔들리고 무너진다. 전염병에 걸리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일자리를 잃거나 등등 생계의 위협이 찾아온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의 흔들림을 방지하는 것이 바로 '성실성'이다. 페스트는 각자의 문제다. 페스트는 남녀노소, 성별, 계층 등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그러니 각자가 자기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방역수칙을 잘 지키고, 금지된 활동들은 하지 않고, 답답하지만 제한적인 활동 범위를 가지는 것, 그리고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 말이다.


   따라서, 페스트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성실성'이다. 성실성은 죽어가는 삶에 '살아있음'을 제공한다. 즉, 성실성은 '살아있음'을 나타내며 이 '살아있음'을 통해 날마다 페스트와 대항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책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성실성'이 아닐까?


(p216)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ㅣ연대 의식


   개인적 차원에서 해야 할 몫이 '성실성'을 가지는 것이라면, 사회적(공공의) 차원에서는 ‘연대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삶의 모든 영역들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연대 의식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재난에 대하여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협력하거나 투쟁하는 것이다. 일단 전쟁이 터지고 보면 자기는 책임이 없다는 구실로 회피하려는 것은 헛되고 비겁한 일이다.


    소설 페스트에는 연대 의식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기자 랑베르다. 랑베르는 취재 차 오랑에 들렀다가 페스트의 발발로 꼼짝없이 갇히게 된 인물이다. 때문에 오랑에서 탈출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또한, 오랑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자신은 이곳의 사람이 아닌 이방인일 뿐이니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확신하며 도피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랑베르는 리유와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균열을 일으키고, 주변 인물들의 행동들을 보면서 마음의 변화가 생긴다. 결국 그는 오랑을 탈출하기 위한 밀거래를 그만두고 잔류를 선택한다. 이유는 '공공의 행복을 위해선 개인의 행복이 필요하지만 개인의 행복을 위해선 공공의 행복이 필요하다'는 순환 해석학적인 원리를 통한 연대 의식의 개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p272)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이 사건은 우리들 모두에게 관련된 것입니다.


   이처럼, 소설 페스트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연대 의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페스트의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페스트를 이겨내기 위해서 보건대를 조직한다. 보건대는 연대와 연합의 상징이자 페스트와 싸우는 강력한 무기다. 보건대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면서라도 전진을 계속해야만 하고 우리 모두가 선을 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이처럼 공공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연대 의식이 빛을 발할 때 소외된 자들, 고통받는 자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린다. 모두가 동일한 재난을 겪고 동일한 고통의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고통의 상황은 개별적이더라도 고통을 겪는 사실 자체는 보편적이다. 때문에 고통으로 인해 겪는 고통의 정서는 연대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 그것을 나누면서 위로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것이 아마 진정한 연대 의식의 의미이자 확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p393) 리유 자신과 같은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일한 확신, 즉 사랑과 고통과 귀양살이 속에서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고자 했다. 이리하여 자신과 같은 시민들의 불안이라면 그 어떤 것도 그가 그들과 나누어 겪지 않은 것이라고는 없고, 어떤 상황도 동시에 그 자신의 상황이 아닌 것이라고는 없었다.




   소설 페스트에는 알베르 카뮈의 인생이 담겨있다. 자신이 겪은 경험과, 체험기를 소설화시키고 소설 곳곳에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알베르 카뮈가 폐렴을 앓은 것, 부조리한 죽음을 일으키는 전쟁을 겪은 것, 동시대에 발생한 홀로코스트 참사를 보게 된 것 등의 경험을 상징을 통해 소설 속 세계에 반영한다. 사실 경험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기에 보편성을 띄기 어려운 일인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이를 잘 살려냈다는 점이 가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다양한 세계관이 충돌한다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이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각자의 세계관을 가지고 페스트에 대응한다. 마찬가지로,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들도 다양한 입장이 있고 다양한 세계관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입장이 옳고 어떤 세계관이 그르냐에 대한 논점 보다 페스트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회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각자의 삶, 가치관이 페스트와 싸우는 이유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투쟁해야 한다.


(p433) 증언은 죽음이라는 인간 조건에 대한 반항이다. 페스트에 대항해 투쟁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증인이다. 투쟁하는 사람의 행동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증언 행위이기 때문이다.


   '성실성'과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우리는 페스트에 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의지'가 필요한 일이고 일련의 '긴장'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 '의지'와 '긴장'이 삶을 살아가게 한다. 의지와 긴장은 '피곤'을 요청하지만 요청된 피곤이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삶은 피곤 가운데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삶을 산다는 건 결국 (피곤한)환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아픔(피곤)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스트는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내부에도 있다. 어쩌면 피곤한 삶 가운데 우리가 싸워가며 지켜야 하는 것은 방역수칙과 같은 외부적인 것뿐만 아니라 성실성, 연대 의식, 의지 등과 같은 내면의 가치들이라고 이 책은 말해주는 것 같다.


(p329)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리유.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입니다. 그러나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은 더욱더 피곤한 일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피곤해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누구나가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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