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표, 방향에 대한 고민
결혼을 하고 주변환경과 생활패턴, 인간관계 등 큰 변화가 있었다. 양가 부모님과의 교류, 남편과의 시간을 주로 보내며 새로운 가족 구성원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소중해졌다. 결혼 전 친구들과의 여행, 수다, 맛집탐방의 시간은 줄어들고, 남편과 미래를 꿈꾸며 미래계획, 재테크, 절약에 대한 이야기들로 일상이 채워졌다. 결혼 전 의사로서의 직업적/학문적 욕심에 쏟아붓던 자기개발 영역도 퇴근 후 업무외 자기개발로 관심사가 다양해졌다. 새로운 가치를 배우면서 얻는 즐거움과 동시에 흐릿해지는 이전의 가치들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제한된 에너지와 시간을 내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있는 곳에 쓰자는 생각은 하면서, 그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인생의 목표, 인생의 방향, 모두가 고민한다는 건 알았지만, 나에게 적용시키고 진지하게 고민해본건 처음인것 같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건 역시 줄세우기 쉬운 수치들이다. 대학입학, 전공선택, 구직까지도 경쟁을 통해 달려왔는데 이젠 또 다시 재테크 앞에서 줄을 세우고 있다. 마침 또 공교롭게 내 나이가 결혼 적령기인지라 부부들의 서로 다른 시작점들이 보이고, 그 자체로 보기보단 수치화하고 비교하기 쉬운 사회분위기 속에 뒤쳐지면 안된다는 긴장감도 느낀다. 수치화하고 비교하기가 쉬운 전문성 기르기와 재테크에 열심히 하는 것에는 주저함이 없이 성실한데 행복해지기 위해 조화를 이루려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들, 사랑과 취미, 교우에서 충실했나..? 스스로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찔렸다.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방향과 목표는 무엇일까.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사회적 시선을 그대로 나에게 우겨넣으며 ‘남부럽지 않은 삶’에 집중하느라 불안했던 게 아닐까. 내 중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진짜 중요한 나의 과제에 충실하지 못한 건 아닐까. 한참 익숙한 근무지와 집에서 떠나 강릉 바다가 보이는 예쁜 숙소에서 오랜 친구들과 어울리며 내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본 시간이었다.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한 걸세. 경쟁의 도식에서 해방되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게 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게 되네. 우리는 세로축이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공간을 걷고 있네. 우리가 걷는 것은 누구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인생을 과제’를 직시해야 인생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일의 과제, 교우의 과제, 사랑의 과제. 여러 가지 구실을 만들어서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사태를 가리켜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한다. 인생의 과제에서 도망치지 말고 직시하는 용기의 문제이다. 가정에 소홀한 워커홀릭은 일을 구실로 다른 책임을 회피하는 것. 아이 양육, 집안일, 친구 교류, 취미에도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느 한가지만 돌출되는 삶의 방식,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삶의 방식은 인정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삶이란, 타인의 과제를 나의 과제와 분리하는 것이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발상이다. 타인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인정욕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욕망이 흐르느내로 돌멩이처럼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삶은 편하지만 부자유스럽다. 본능이나 충동에 저항해야 자유로워질수 있다. 나의 과제를 성실히 할 것.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을 키우는 것인데, 이는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수 있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를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즉,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 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다.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
공동체 감각을 기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자기수용’,‘타자신뢰’,‘타자공헌’ 세가지다. 자기수용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수용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기에,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타자신뢰는 다른 사람을 믿을 때 조건을 일절 달지 않는 것이다. 신뢰의 반대는 회의로, 배신, 상처만 주목하고 신뢰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인간관계의 즐거움을 누릴수 없게 된다. 배신하는 건 그 사람의 과제이며, 자기수용을 하고 마음껏 슬퍼해라. 세상에 착한 사람만 있지 않다. 어떤 경우라도 공격하는 ‘그 사람’이 문제이지 결코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타자공헌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희생하는 게 아니라,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를 통해 ‘여기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을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인정욕구를 통해 얻은 공헌감에는 자유가 없다. 우리는 자유를 선택하면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평범해질 용기. 평범한 것은 무능한 것이 아니라네. 일부러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 뿐이야.
산 정상에 오르는 ‘선’의 인생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점의 연속이다.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 여정은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상태가 된 것.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