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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영 Dec 27. 2023

사랑은 지성이다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 김환기




친구들은 나에게

‘애정결핍 아니냐, 아직도 남편이 그리 좋으냐, 너 그렇게 목매달면 남자들은 질려한다 ‘ 며 걱정 섞인 조언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난 나 자신을 잘 돌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 하면서 사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니,

이제 그런 걱정은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


당연한 말이지만 난 그저 아내로서 남편이 좋아죽는 사람일 뿐이다.

한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책을 읽고 스스로를 “정신적 과잉 활동인”이라 판단 내렸고, 그런 부류의 사람은 원래 사랑이 넘치고 신뢰와 책임감 등에 삶의 가치를 두고 반려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다들 결혼 연차가 쌓이면 사랑이 정이 되고 우정이 된다는 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 이유를 알게 되니 속이 시원했다. 내 남편의 매력이 화수분처럼 매일 새롭게 솟아나서가 아니다. 난 그냥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다.

나를 가꿀 줄 알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부부상이 되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모범이 되는 어머니상은 갈 길이 너무나 멀고 힘들다)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 부부를 보면서 ‘우리 아빠와 엄마처럼’ 사랑이 바탕인 결혼생활을 꿈꾸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내 주방의 싱크장을 열어보면 나만의 ‘비전보드(vision board)가 있다. 내가 꼭 이루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사진으로 인화하여 붙여둔 공간이다.

훗날 자식들을 다 독립시킨 후 남편과 함께 살고 싶은 수영장 딸린 거대한 저택의 사진과 부유해 보이는 노부부의 행복한 한때를 찍은 사진이 있다. 나는 그렇게 우리의 노후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남편에게 ‘나중에 내가 할머니 되어도 지금처럼 예쁘다고 해줄 거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방금 밥을 먹여 출근시켜 놓고 돌아서면 ‘보고 싶다’고 톡을 보낸다.

남편과 함께 보내고 싶은 시간은 언제나 1순위다. 그 누구와의 약속이 정해져 있든 갑작스럽게 남편이 ‘오늘 뭐 해?’ 하고 나를 살짝 떠보면 모든 걸 제치고 함께하고 싶다.



이러는 날 보고 동생이 하는 말,

‘매형 참 피곤하겠다...’


그러든가 말든가, 그건 나 같은 여자를 만난 네 매형의 팔자란다.





​​




그저 그림값이 비싼 유명한 화가로만 알고 있었던 김환기 화백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파리가 생각나요>는 김환기의 그림뿐 아니라 사랑 이야기도 함께 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고 여린 한 인간이었으며 동시에 한 여자의 남편이었던 그의 인생은 아내 김향안을 빼고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작가 정현주는 김환기, 김향안을 따라 파리를 직접 찾아간다.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그들을 그대로 느끼며 글을 쓰는데 실감 나는 표현에 마음이 저릿했다.

김환기, 김향안의 편지와 일기도 중간중간 실려있는데, 작가는 그 시절 김환기의 말투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김향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잔뜩 묻은 글, 장난을 치다가도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아픈 나라를 떠난 국민으로서의 깊은 고민이 오가는 글이었다.​

김환기는 피카소를 실제로 만났고 흠모했으며, 우리나라의 해방과 전쟁도 겪은 데다 뉴욕에서의 활동 사진은 컬러로 인화되어 있다. 현대사에 약한 나에게 이 정도면 김환기는 시간여행자처럼 느껴진다. 1974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아내 향안의 노력으로 지금까지도 살아진다. 그는 과연 실제 살았던 사람이기나 할까? 정말로 지금 사라지고 없는 사람일까?

문득 김연수의 글이 떠올랐다. 육체는 사라지고 없으나 정신은 그 이후를 살아가는 거라는.

그는 작품을 남겼으니 향안의 사랑으로 그 안에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읽는 내내 남편을 생각하게 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나의 마음은 향안에 비하면 유아적이기 그지없기에 부끄러웠다. 사랑은 곧 지성이라는 그녀의 말이 내 머리를 콩 쥐어박는 것 같았다.

향안은 아내로서 본인을 죽이고 내조만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를 도움으로써 자연스럽게 스스로도 성장하고 독립하게 했다.

나는 기질이 그녀처럼 씩씩하고 용감하진 않지만

그녀의 헌신적인 사랑을 가슴에 품고 나만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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