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순영 Apr 28. 2023

나는 매주 도서관에 간다.

아아 생각이 간절했던 무더운 4월의 어느 날.



 목요일 오전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가볍게 입는다고 했는데 긴 머리를 풀고 걸어내려갔더니 두피에서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애를 셋이나 낳았지만 머리칼이 가늘어질지언정 숱은 여전히 빽빽하기에 두피에서 뿜어져 나온 열이 그대로 갇혀 찜통을 얹고 가는 기분이다. 이런 날은 팔목에 그 흔한 까만 고무줄도 걸려있지 않다. 벌써 여름이 후욱 하고 다가온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레이 카디건을 주문해 놓은 게 출고지연 중인데 받으면 묵혔다 가을에 입어야 하나....


 상가건물에서 우르르 나오는 동네 아줌마들은 헬스장에서 나오는 길인지 얼굴이 벌겋게 익어있었고, 손에는 1,500원짜리 아아가 생명수처럼 들려있었다. 저렴한 테이크아웃 커피집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만 네 군데가 있는데 다들 망하지 않고 장사를 잘하는 이유는 나를 포함한 동네 아줌마들의 소비가 한 몫하는 듯하다. 문득 아침 단톡방 대화에서 걷기 운동을 갈 예정이라던 언니가 생각이 나, 오늘 밖이 무지하게 더우니 시원하게 입고 가라고 일러주었다.

 이렇게 더울 줄 알았으면 텀블러에 시원한 아아를 담아 올 걸. 생수병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면 가방 속과 노트가 젖게 될까 봐 베란다 팬트리에서 실온보관했던 것을 꺼내온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달가락 달각 얼음들이 부딪히며 만드는 작은 진동, 시원한 아아 생각을 간절하게 하다 보니 어느새 도서관.



 도서관 5층 종합자료실은 보통 커다란 책상에 의자를 여러 개 두어 책상의 상판을 공유하는 형태다. 코로나 이후 한 자리씩 띄엄띄엄 앉아야만 하니 책상을 이전보다 훨씬 넓게 쓸 수는 있지만 내가 서고에서 꺼내 온 책을 적나라하게 쌓아두는 게 왠지 타인에게 나의 근래 관심사를 전체공개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코너 기둥 뒤 2인 좌석이다. 앞으로는 시원한 숲 너머로 다대포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가방부터 내려놔 잡아놓고 반납을 하든, 대출을 하든 볼 일을 보러 간다.


도서관 구석 자리


 원하는 책은 오늘도 대출 중이다.

 반납예정일은 3월 2일이라고 되어있다. 오늘은 4월 20일이다.

 전산의 오류일까? 대출자의 행동오류일까? 후자라면, 대출자는 나와는 정반대의 종류의 사람이다. 반납기한 하루 전 친절하게 도서관에서 알림 문자도 보내준다. 그런데도 연체를 이렇게 오래 한다고? 아예 책을 분실한 건가? 나 같으면 새 책을 사서 제출을 하든 이렇게 오래 두진 않았을 텐데. 불특정 다수에게 여러모로 피해를 주고 있잖아.

이렇게 연체를 오래 하고 있으면 도서관에서는 어떻게 행정적으로 일을 처리할까? 그렇다고 사서에게 가서 문의할 ‘용기’는 없다. 도서관에서 사서에게 책의 행방을 묻는 데에 왜 용기까지 필요한 지 모르겠다. 나는 ‘물은 셀프’인 식당에서 물을 셀프로 가져오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하게 사는 걸까?하는데에 까지 생각이 뻗치자, 그만! 생각 그만! 하고 눈을 다시 크게 떠 머리를 환기시킨다.


 옆 책상에 앉은 남자는 아저씨인지 청년인지 하아- 하아- 하고 계속 한숨을 쉬는데, 하는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새다.

등산에나 어울릴 법한 차림새에 가방에서는 짐들을 잔뜩 풀어놓고 1리터쯤 되는 물통은 두 개나 올려져 있다. 무언지 모를 걸쭉한 음료가 든 통은 벌써 거의 비웠다. 나머지 한 통은 시원한 커피인가? 도서관 종합자료실을 가득 채운 고요한 책 냄새가 음료통에 닿자 이슬이 맺혔다 이내 물로 변해 미끈한 표면을 타로 주르륵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책을 읽는 건 아니고 뭘 만드는 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널려있었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나는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행태를 취하면서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였다.

그의 동작들이 도서관 이용규칙에 어긋나지는 않았지만 심히 신경 쓰이면서 기이하긴 했다.

안 그래도 잡생각이 많은 나는 책 읽기는 덮어두고 펜을 들고 필사를 시작했다. 미지근한 생수가 영 부족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날 저녁.

뉴스의 기상캐스터는 대구의 최고기온이 예년의 평균기온을 훨씬 웃돌아 29도까지 치솟았다며 전했다. 마침 오전에 날씨를 전해주었던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네 덕분에 운동 잘하고 왔다.‘ 며, 반팔을 입고 운동을 했는데도 너무 더워서 1,500원짜리 아아를 사 마셨다고.


도서관 가는 길. 여름 같았던 4월 어느 날.


작가의 이전글 ‘쓰기‘를 좋아하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