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컨설턴트라고 하면 다들 멋있다고 한다

멋있어 보이는 그 말 뒤에 숨겨진 모습과 감정들.

by 조약돌 생각

“아, 컨설턴트세요? 멋있으세요!”


아마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말, 참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컨설팅이라는 단어 하나에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스마트해 보이는 사람’,
‘바쁘고 유능한 전문가’,
‘왠지 잘 사는 사람’ 정도일 것이다.


입사하면 받는 웰컴기프트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반응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특히 주니어 시절엔 더 그랬다,

어렸을 때는 "허세" 빼면 시체니까.


꽤 괜찮은 회사를 다니고,

맡은 프로젝트는 누구나 아는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고,

업무용 노트북(누군가 카페에서 Lenovo 랩탑으로 뭔가 작업하고 있다면 컨설턴트 직업일 가능성이 높다)과 삐까뻔쩍한 빌딩에 있는 본사 사무실까지.
어떻게 보면 ‘직장인’이라는 상징처럼 보이는 장면들이니까.


그때 나는,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자의식이 충만했던 것 같다.

Lenovo Thinkpad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바로 ‘겉으로 보이기엔’ 그렇다는 것.

회사도, 프로젝트도, 사무실도, 심지어 노트북조차 ‘내 것’은 없다.

소속감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딱히 없다.
회사 입장에서도, 동료 입장에서도 ‘소모성 자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업계는 이직 주기인 turnover가 짧다.

컨설팅 펌은 사람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구조이기에,
한 명이 퇴사하면 그가 수행하던 프로젝트의 연속성도 함께 사라지거나 대체 인력을 구해서 긴급 투입하는 경우가 많다.
속된 말로 '사람 장사'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일 수도, 내 옆자리 동료일 수도 있다.

물론 이직 후엔 이력서에 한 줄 정도는 남는다.
그래서 '신기루 같았다'고 말하진 않겠지만, 오래 남는 것도 사실 없다.




그렇다, 나는 지금 소위 말하는 Big 4 컨설팅펌에 몸담고 있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과 함께 아직 국내에 사례조차 없는 프로젝트를 팀장급(Mgr)으로 수행하고 있다.

PwC, EY, Deloitte, KPMG




출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퇴근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출퇴근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할 때가 많다.
컨설턴트들 사이에선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한다’는 말이 그냥 농담이 아니다.

하루 일정은 오전 미팅, 오후 미팅, 중간 보고, 최종 보고…
가끔 1~2시간 비는 시간에 커피라도 마시고 싶지만, 그 시간엔 항상 뭔가가 벌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고는 못 견딘다.
Teams, Slack, 메일…
알림 숫자를 지우기 위해 랩탑을 펴고,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메시지를 읽지 않으면 불안하고, 읽어도 답을 못 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IMG_8532.JPG 프로젝트 현장에는 화이트보드가 항상 따라다닌다.


주니어 시절엔 보고서 하나를 만들면서도 심장이 뛰었다.

상위 직급자의 피드백에 일희일비(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날 하루의 컨디션이 좌우되기도..)하고, 파트너가 “좋다” 한 마디 하면 온 세상이 인정해 주는 것 같았다.


그 감정, 지금은 없냐고?

아니다. 여전히 남아 있다.


고객사에서 “이거, 우리 회사에 꼭 필요했던 거예요”, “다음 프로젝트도 발주할 건데 맡아주실 거죠?”라는 말 한마디에 지친 하루가 위로받을 때도 있다.

거기에 더해 고객사로부터 공식적인 칭찬 이메일 등을 파트너가 받게 되었다고 들을 때면, 그날은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듯하기도 하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이 프로젝트는 나 없이도 돌아갈 텐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몰입하고 있는 걸까?”


밤 11시에 문서 고치고, 주말에 시간 리포트 쓰고,
샤워하다가도 발표 자료 흐름이 떠오르고,
침대에 누워서도 ‘이 문장은 바꿔야겠다’ 생각하는 삶.

정말 괜찮은 걸까?


가끔 주변 지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다시 흔들린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거기에 다녀야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한다. 진심으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 문제를 풀어내는 것,
복잡한 질문에 가장 단순한 답을 찾는 이 일은
나를 자꾸 단단하게 만든다.


지치기도 하고, 번아웃도 오지만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자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이 글을 써보기로 했다.

누구나 알지만 잘 모르는,
겉으로 멋있어 보이지만 안에서 고요하게 힘든,
컨설턴트의 삶에 대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보려 한다.


회사 밖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들,
컨설팅이라는 옷 안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들을.


이건 조용히 바쁘게 살았던 한 사람의 기록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 안에서 길을 찾고 있는 이야기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