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그리고 지금은

책임감 속에 숨어 있는 자율성

by 조약돌 생각

낙엽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어느새 길거리에 단풍 색이 사라져갈 즈음이었다.


유난히 몸이 움츠러들기 시작하는 가을이 오면, 나는 늘 한 해를 돌아보곤 한다.

그리고 2023년 11월, 나는 또 한 번 이직을 선택했다.


안정적인 삶보다 도전을 좋아하는 내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 선택은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물기보다는, 내 가능성을 확인하고 또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삶.


그리고 그 이전, 2017년 8월.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나와,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창업했던 곳을 폐업하였다.

'국내 최초 SSL 인증서 발급기관을 구축해보자' 란 뜻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투자금을 지원해주던 회사가 도산하면서 우리의 여정은 짧게 마무리되었다.


SSL.png <보안서버(SSL) 인증서 통해 웹사이트 상 피싱 행위를 예방할 수 있다>


참으로 아쉽지 그지 없었다.

사업을 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그런 사람들과 꾸려가던 곳을 정리해야만 했으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꿈이 원대하고 뜻을 함께 하여도,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는 돈이 없다는 것은,

"마침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쉼표" 정도는 되는 것이니까.


난 그 쉼표에서 교훈을 얻고,

다시 내실을 다지기 위해 직장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시간이 조금 흘러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는 컨설팅 업계이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다소 생소할 수 있으나,

우리 입장에서 고객사가 여러 니즈(예: 재무, 디지털 혁신, AI 측면 등)를 갖고 있는데,

그러한 니즈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참고로 컨설팅 업계를 처음 접한 계기는 공교롭게도 2017년에 사업체 폐업 직후였다.

다행스럽게도 옆에서 내 모습을 보다가 수입이 끊길 위기에 처해 있는 나를 이 세계로 안내해 준 뒤로,

난 같은 업계에서 발을 떼려고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오고 있다.


주니어 레벨이었던 시절을 거쳐 지금은 어느덧 시니어 레벨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다.


돌이켜보면 '재미'란 요소도 함께했던 시절들이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 웬 재미? 라고도 할 수 있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업무에서의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컨설팅 업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율성 때문이었던 걸까.


반드시 9시부터 6시까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일에 몰두하면서 성과를 내는 환경이라기보단,

업무 특성 상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만나고 필요에 따라서는 현장 방문과 또 다른 고객사로의 이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물론 이 부분은, 여러가지 놓여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철저히 내 입장에서 쓴 글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다시 말해, 내가 좋아하는 '땡땡이'와 '말하기'를 합법적(?)인 선에서 모두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학창 시절에 내 모습은 땡땡이 한 번 해본 적 없고, 수업 중 발표마저도 부끄러워하던

요즘 말로 '극I' 성향의 소유자였다.


또 남들 앞에서 입으로 말하는 것을 꺼려하던 나는,

청자들이 내가 말한 내용에 대해 이해하고 동의해주는 모습을 보고 난 뒤로는 '말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업무 특성 상 '말하기'가 많을 뿐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것'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더욱 선호한다.)


그래서일까.

오전 10시~11시, 오후 2시~4시,

이 두 시간대에 업무 상 이동한단 것은 나에게 있어 팍팍한 일과 시간 중 주어진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다.


그러나 여기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여러가지 상황으로 주어진 자율성 뒤에 숨겨져 있는 "책임"이다.


위에서 얘기했던 업무 상 이동, 미팅 시 원활한 미팅을 위해 구매했던 커피류.

이 모든 것은 결국 '회사 비용'이라는 것을 동반한다.


이러한 업무 명목 상 회사 비용을 썼다면,

그 비용을 투자한 만큼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누가 말했지 않은가,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여기서 자율성과 책임 관련하여 모든 얘기를 꺼낼 순 없지만,

시니어 시절로 돌입한 요즘 그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느끼며 주니어 시절을 돌이켜본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에 대해 내면 속에 깊이 숨겨져 있던 내가 추구하는 바.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체를 꾸리기 전 맞이했던 첫 직장.

직장 내 보수적인 문화, 업무 절차 등으로 인해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던 매니리즘을 맞이했던 그 순간.


누군 그런 모습을 보고 '인내심이 없다', '신입이 얼마나 안다고' 라며 평가절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 시절 내가 얼마나 안다고 마치 다 아는 듯이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마음이 있는가'를 물어본다면,

백 번 생각해도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오해하면 안된다.

회사가, 사람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 형성되어 있던 문화가 나와 맞지 않았던 것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인내심이 없는' 나와 맞는 문화를 가진 세계에 다시 들어선 것 뿐이다.

난 내가 놓여진 지금이 좋고 더욱 나은 내가 되길 위해 다시 담금질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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