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저의 목을 꼬옥 끌어안고 이렇게 말하네요.
"엄마, 나 어젯밤에 엄청 많이 울었어.
이십번도 넘게 울었어."
"어젯밤? 언제? 꿈에서?"
"응."
"왜? 무서운 꿈 꿨어?"
"응. 엄마가 할머니 되는 꿈을 꿨어.
그래서 너무 무서웠어.
엄마, 엄마는 할머니 되지 마.
지금처럼 계속 예쁜 엄마 해줘."
ㅎㅎㅎ 엄마가 늙는 것이 무서워 펑펑 울었다니
ㅎㅎㅎ 악몽도 참 귀엽게 꾸는 딸아이에게
저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괜찮아. 엄마는 할머니 되어도 예쁠거니까.
엄마는 있잖아, 웃기고 재밌고 유쾌한 할머니가 되는게 소원이거든.
그리고 엄마는 할머니 되어도 계속 예쁠게.
그렇게 노력할거니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아니야. 싫어 싫어...
엄마는 할머니 되지 마. 싫단 말야.
계속 지금처럼 예쁜 엄마 해줘... 으아앙..."
저는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말했어요.
"알았어. 엄마 진짜 많이 노력할게.
엄마가 노력 하나는 끝내주게 잘 하는거 알지?
엄마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는 거 알지?
아무도 시킨 사람 없는데 엄마는 스스로 일찍 일어나서 공부도 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지금처럼 계속 젊은 엄마로 사는 것도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어. 그치?
그러니까 뚝. 울지 마. 옳지."
노력으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 통했는지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었어요.
"엄마는 계속 젊고 예쁜 아줌마 할게.
약속~"
그런데 '아줌마'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요.
아이가 또 다시 울먹이네요.
"엄마가 왜 아줌마야.
엄마는 엄마지!"
'아줌마'라는 말이 그닥 좋은 표현은 아니라는걸
이 어린 아이도 느낌으로 아나봐요.
가르쳐주지 않아도 이런걸 귀신같이 아는 것 보면
참 신기할 때가 많습니다.
"왜? 아줌마가 뭐 어때서?
아줌마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말이야.
엄마들이 밖에 나가면 다 '아줌마'가 되는 거야.
솔이도 밖에서 만난 어른들 보면 '아줌마'라고 하잖아. 그치?
엄마는 솔이 람이를 낳고 드디어 '아줌마'가 될 수 있었는 걸.
그래서 얼마나 뿌듯한데!"
그랬더니 드디어 아이가 진정 되었네요.
인상을 쓰던 표정도 다 풀렸구요.
저는 아이의 볼을 콕콕 찌르며 말했어요.
"웃고 싶으면 웃어도 되는데~"
"아니거든. 나 아직 속상하거든."
울고 있었는데 바로 웃어버리면 멋쩍을까봐
아이가 표정관리를 하는 게 보였어요.
"솔이 얼굴에 웃고 있는 거 다 보이는데~
엄마 눈에는 다 보이는데~"
볼을 콕콕 찌르며 간질간질 했더니
드디어 아이의 웃음이 터져나왔네요.
"엄마, 나는 엄마가 젊고 예뻐서 좋아.
그러니까 절대로 할머니 되면 안돼.
알았지?"
아이는 엄마에게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문득, 제가 한 살 한 살 나이 들어갈수록
제 아이는 한 살 한 살 나이가 채워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에게서 한 해 한 해 젊음이 사라질수록
그 젊음은 제 아이에게로 가서
한 해 한 해 채워질 것이라는 생각.
그렇게 생각하니
젊음이 아깝지 않았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맨바닥에 흘려 보내던 젊음이
이제는 나와 영혼을 나눈 내 나이에게 전해지는 것이라 생각하니
나의 젊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에게 고스란히 보관되는 것이구나,
아, 그렇구나!
우리의 젊음이 더욱 찬란히 빛날 수 있도록
내가 이 아이를 더 잘 키워야 겠구나,
아, 그렇구나!
옛 어른들께서
왜 그렇게 '대를 잇는 것'에 목숨을 걸었던 것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아침이었습니다.
< 모 녀 >
- 안선유 -
한 해가 지나면
한 해 만큼의 젊음이 사라진다
바쁜 걸음에 채여
또 한 번의 젊음이 사라진다
속절없이 버려지던 나의 젊음은
너를 만나고 다시 영광의 날들로
이어지게 되었구나
나에게서 떠난 젊음은
너에게 너에게 켜켜이 쌓여
다시 한 번 절정의 생을 꽃 피우리라
네가 젊어지는 만큼
나는 늙어 가겠지만
더이상 나의 젊음을 헛되이 버리지 않고
너에게 쌓을 수 있게 되었으니
너로 인해 나는
더이상 사라지길 멈추고
오롯이 존재하게 되었구나
젊음을 헛되이 버리지 않게 해줘 고맙다, 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