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어린시절은 고통 그 자체였어요.
저를 낳아주신 친엄마는 제가 세 살이 되던 해 2월에 돌아가셨고, 제가 7살이 되던 해에 우리집에 들어온 새엄마는 인생의 모든 스트레스를 어린 우리 삼남매에게 폭력과 폭언으로 퍼붓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새엄마보다 더욱 큰 문제는 친아버지였어요. 평소에도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하고 무서웠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돌변했거든요. 집안의 살림살이를 다 때려부쉈고 허리띠를 풀어 어린 우리들을 짐승처럼 때렸어요...
그런 아버지의 폭력 앞에 새엄마라고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래서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다음날이면 새엄마는 아버지에게 맞은 것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려주었죠.
밤이면 술 취한 아버지를 피해 벌벌 떨어야 했고, 낮이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새엄마에게 사정없이 두들겨 맞아야 했어요. 그것이 우리 삼남매의 일상이었죠.
아마 매일 그러진 않았을 거에요. 아마, 일주일에 한번이나 두번쯤 이었겠죠? 그런데 참 이상하죠. 저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면 그 기억밖에 남은 것이 없어요. 왠일인지 저는 1년 365일 매일 그런 일상을 살아온 것 같아요.
저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죠. 새엄마같은 엄마, 내 아버지같은 부모는 절대 절대 되지 않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신기한 건,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자라면서도 결혼은 꼭 하고 싶었다는 거에요. 이정도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인생을 꿈 꿀만도 한데 말이죠. ㅎㅎㅎ
저는 꼭 '결혼'이란 것을 해서 화목한 가정을 일구고 싶었어요. 죽기 전 딱 한순간, 단 한순간 만이라도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따뜻한 가정'에서 살아보고 싶었거든요.
이것이 제 인생 최대의 소원이자
다른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하지만 결혼은커녕 연애도 쉽지 않았죠. 아버지에 대한 공포는 남자를 만나는 것 조차 어렵게 만들었거든요. 스물아홉인지 서른인지, 그 즈음 겨우겨우 첫번째 연애를 시작했지만, 저의 생각과 전혀 달랐던 연애경험은 저를 더욱 세상과 단절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직장도 다니지 않고 친구도 거의 없이, 인생을 반쯤 놓은 상태로 등산만 다니다가,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 친구와...
서른 다섯에
결혼을 하게 되었어요.
세상에! 제가 '결혼'이란 걸 하게 된 거에요!!
제가 제 인생을 놓았듯 결혼도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덜컥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니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정말 신기하고 행복했어요.
결혼 초기엔 남편과 맞춰가는 것도, 시댁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너무 너무 힘들어서 후회를 많이 했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그 모든 것들이 싹 잊혀질 정도였죠.
우리집 첫째는 등센서가 심해서 잠시라도 내려놓으면 어김없이 울어댔어요. 잠을 잘 때도 아이를 가슴에 앉고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자야 했고, 화장실에 갈 때도 아이를 슬링에 안은 채로 볼일을 봐야 했어요.
아빠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머리라도 감을라치면 아이는 죽어라고 빽빽 울어댔죠. 저는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도 못하고 수건만 감은 채로 뛰쳐나오기 일쑤였고, 그래서 출산 후 한달 만에 저의 머리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듬군단이 생겼어요. ㅠㅠ
매일 아이를 안고 있어서 손목에는 염증이 생겼고, 조금만 움직여도 송곳이 관통하는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려야 했죠. 그 손목으로 아이를 안고 분유를 먹이는데, 아이가 발버둥을 치다가 저의 손목을 발로 차버렸어요! 끄아아아악!!!
죽을것 같은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아이를 떨어뜨릴 수는 없었어요... 그래요, 아마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이 비슷한 경험을 한번쯤은 했을 것에요. 아이를 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사는 것이 왜 이다지도 힘든 것인지 모르겠다고 혼잣말을 되뇌이곤 했었죠...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랬는데...
그 힘든 와중에도 아이를 계속 안고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적절한 '처방'이 되었던 모양이에요.
어렸을 때, 저를 안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기억, 제가 아무리 울어도 달려와주는 사람이 없었던 기억, 저의 눈물을 닦아주고 괜찮다며 다독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기억이... 제 아이를 안고 있는 동안 치유된 모양이에요.
제가 제 아이를 안아줄 때마다
어린시절의 저도 엄마 품에 안겼던 모양이에요.
제가 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갈 때마다
그곳에 어린시절의 제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제가 제 아이의 얼굴에 입맞추고
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어르고 달래줄 때마다
울고있던 어린시절의 제가
그때 받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현재의 저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치고 힘들었는데, 제 안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시절의 저는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위로 받고 어깨를 펼 수 있었던 모양이에요.
빛이 들어오지 않는
가장 깊숙한 곳 어두운 구석에서
등을 돌리고 고개를 쳐박은 채
숨소리도 들키지 않으려 애쓰던 그 아이가
어느덧
제 발로 걸어나와
세상 앞에 서 있었어요.
그 시절 그대로 성장을 멈춘 채로
기억속에 박제된 듯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던 그 작은 아이가
어느덧
제 옆에 나란히 서 있었어요.
지금의 저와 '함께' 말이에요.
우리집 첫째는 올해 6살,
태어나고 다섯 해를 살았습니다.
그 다섯 해 동안
제가 제 아이를 안아준 횟수만큼
어린시절의 제가 위로받았고,
제가 제 아이에게 뽀뽀한 횟수만큼
어린시절의 제가 인정받았던 것 같아요.
어린시절의 저는
다른 어떤 칭찬보다
그저 '존재의 인정'이 필요했어요.
그 역할을
어떤 지혜로운 큰 어른이 아닌
제 자신이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저는 그저 제 아이를 사랑했을 뿐인데
그 사랑이 제 아이를 통해
저의 어린시절에 닿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