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의 기술

feat.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by 파란동화


그런데 정말 다행인 건 우리 부부는 싸움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싸우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게 아니라 잘 싸우기 위해 애쓰다 보니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구나. 내가 참 괜찮은 남자랑 살고 있다는. 왜냐하면 무조건 아내 말을 따르거나 싸움 그 자체를 회피하는 남자는 아내에게 짐만 안겨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문제와 상관없이 벌컥 화부터 내는 사람은 아내에게 상처만 줄 수 있다. -한성희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편지>






책을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정말 괜찮은 남자와 살고있는 것이라고 권위있는 정신과 의사에게 인정받은 셈이니까.




이 책은 40년간 정신분석 전문의로 살아온 작가가 결혼을 앞둔 딸에게 전하는 삶의 조언을 담은 책이다. 10년 전, 20년 전에 이 책을 만났더라면 내 삶의 힘겨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지지 않았을까 싶은 책. 나의 딸이 자라 20살이 되면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하고 싶은 책이고, 나의 딸이 30살이 되면 다시 한번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KakaoTalk_20220321_055037800.jpg
KakaoTalk_20220321_055037800_01.jpg
한성희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꼭 읽어보세요!!





이 책에 부부싸움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싸움을 피해선 안 된다고.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받아들이되 서로에 맞게 잘 싸우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돌이켜보면 우리부부의 지난 7년도 '잘 싸우기 위한 기술을 터득한 기간' 이었던 것 같다. 결혼 초반에는 시댁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연애할 때 몰랐던 이 남자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도, 너무 너무 힘들었다. 뭔가 속은 것 같았고 잘못 된 선택을 한 것 같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긴 긴 결혼생활이 막막하다 못해 숨막히게 느껴졌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감정이 극에 달하면 나는 거기서 멈추고 싶었다.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감정으로 무슨 말을 한들 서로에게 아물지 않을 상처만 주는 날카로운 칼부림이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싸움을 멈추고 일단 자고 일어나서 감정을 가라앉힌 후 다시 대화하고 싶었다. 나는 '싸움'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 정 반대였다. 남편은 잠들기 전에 모든 것을 풀고 해소해야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다고 했다. 해결되지 않으면 새벽까지라도 혹은 아침까지라도, 해결이 될 때까지 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순간에는 잠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어떻게 잠을 잘 수 있냐고 했다.




내가 극도로 예민해질 때는 딱 두 종류의 상황인데, 바로 배고픈데 먹지 못할 때와 피곤한데 자지 못할 때다. 남편은 부부싸움이 끝날때까지 먹지도 자지도 않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아무리 싸우더라도 먹고 자며 에너지를 채우고 다시 채워진 에너지로 감정을 순화시킨 후 2차전을 치르고 싶어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러니 부부싸움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처음 서로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싸움을 유발하게 된 사건이 무엇이었는지는 뒷전으로 미뤄진 채, 남편은 계속 대화를 중단하려는 나를 참을 수 없어 했고, 나는 이 감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가려는 그가 신물났다.




TV에 나오는 배우 '한고은'의 남편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어떻게 이 좁은 대한민국에 저런남자와 이런남자가 공존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친구의 남편 중에는 아내의 말에 절대 반론을 하지 않는 남편이 있었다. 주변에서도 선비같은 인품으로 칭찬이 자자한 사람이었는데, 역시나 집에서도 아내에게 함부로 말하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한숨을 푹푹 쉬며 친구의 남편을 부러워 했더니, 그 친구는 더욱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 남편이 좋아 보이지? 나는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아.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어. 나는 싸워서라도 해결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데 이 사람은 아무 말을 안 해. 그러니까 점점 나만 소리지르게 된다니까. 한참 소리지르다보면 나 혼자 미친여자가 된 기분이야."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 남자랑 함께 산지 10년인데, 아직도 남편에게 맞추는 법을 모르겠어. 이 사람은 이래도 '응' 저래도 '응' 무조건 '응'밖에 모르니까. 나도 너처럼 부부싸움 좀 하면서 살고 싶어."




나는 친구에게 배 부른 소리 한다며 눈을 흘겼지만 친구는 진심이었다. 격렬하게 싸우고 격렬하게 사랑하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SE-5b470ede-993f-4e74-8946-64f330598468.jpg





어떤 방식의 부부가 더 나은지는 아직도 모른다. 중요한건 친구도 나도 지금은 서로의 남편에게 맞춰서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와 남편은 부부싸움이 극에 달해도 특정 시점에서 더 나아가지 않는 '데드라인'을 터득하게 되었고, 친구는 친구대로 화내고 삭히는 과정에서 그래도 이만한 남편이 없다는 것이 더욱 선명하게 와 닿는다고 했다.




각자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다.

'딱 이것만 아니면 좋겠어. 너무 숨막혀.'라고 생각해봤자, 사람은 수만가지의 습성을 가진 동물이라서 그것이 아니어도 숨막히고 천불나는 요인은 널리고도 널렸다. 그러니 적당히 모른척하고 적당히 눈 감고 넘어가는 스킬도 중요한 것이다. 바람을 피운다든지 도박을 한다든지 이런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고서 상대방의 어떤 특징을 못 견뎌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덧.

이제 내 남편은 부부싸움 중에도 내가 '일단 자자'고 하면 잔다. ㅋㅋㅋㅋㅋ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인의 삶을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