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이런 동화책이 있다.
집에 내돈내산 동화책은 몇 권 되지 않고 모두 주변에서 얻은 것인데, 이것은 도대체 누구네집에서 받아온 것인지 모르겠다. 분명 교육동화 전집 중 한권인데
제목은 <동생은 어디서 왔을까?>지만, 안을 펼쳐보면 사실은 성교육 동화책이다. 엄마아빠의 몸이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어서 처음에 다소 놀랐던 책. ㅋㅋㅋ 그런데 울집 첫째가 집안 가득한 많고 많은 책 중에 한때 이 책에 꽂혀서 매일같이 이 책만 읽어달라며 찾아들고 왔었다.
내용인 즉 이렇다. 어느날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왔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가 모두 동생만 쳐다보며 예쁘다고 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저 못생인 녀석이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동생은 어디서 왔나요?" 라고 물어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당황하다가 새가 물어다줬다느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느니 말씀하시고, 상상력이라곤 1도 없는 아빠는 병원에서 데려왔다고 말한다. (진짜 ㅋㅋㅋㅋㅋ 대한민국 아빠들을 제대로 현실반영한 책이 아닐 수 없다. ㅋㅋㅋㅋㅋㅋㅋ)
궁금증이 쉬이 해결되지 않던 주인공은 엄마에게 "동생은 어디서 왔나요?"라고 다시 물었고, 그제야 제대로 된 대답을 듣게 된다. 아빠 몸에는 아기씨가 있고 엄마 몸에는 아기집이 있는데, 어느날 엄마아빠가 사랑을 나누다가 아빠가 엄마 몸에 아기씨를 주었고, 그 수많은 정자 아기씨 중에서도 1등으로 도착한 아기씨가 무럭 무럭 자라 건강한 아기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엄마,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기뻤나요?"
"그럼! 세상에서 제일 기뻤지!"
그러면서 주인공은 드디어 동생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아아! 정말이지 교육적인 내용! 그러면서도 심지어 재밌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우리집 아이들은
"나 원래는 아빠 몸에 있었잖아. 그런데 내가 달리기 1등해서 태어난거잖아. 나 달리기 엄청 잘해! 알지?"
하며 어깨를 으쓱대곤 했었다. ㅎㅎㅎ
그래, 여기까지는 좋았다. 세상 좋아진 동화책덕분에 힘 한번 안 들이고 아이에게 자신의 탄생을 얘기해 줄 수 있어서 편했다. 그런데 어느날, 벽에 걸린 결혼사진을 유심히 보던 첫째가 하는 말.
"엄마... 근데 이상해...
엄마 배랑 아빠 배가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내가 엄마 배로 건너간 거지?"
나는 깔깔깔 웃으며
"아빠에게 물어봐!"
라고 대답했고
아빠는 침대에 엎드려
코를 골고 자는 척을 했다.
(우리는 지극히 현실부모 ㅋㅋㅋㅋㅋㅋ)
깔깔깔 웃던 나는 아빠의 반응을 보고, 결국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이빙 선수처럼 자세를 잡고 서서 아이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해주었다.
"솔아, 너는 달리기만 1등이 아니야. 너는 점프도 엄청 잘해! 아빠 배에서 이렇게 점프해서 엄마 몸으로 왔잖아! 기억 안 나?"
"아아아~ 맞다! 기억 나 기억 나!"
(휴우... 한시름 놓았다...)
이후로 우리집 아이들은 첫째 둘째 할 것 없이 이렇게 얘기한다.
"나 원래 아빠 배에 있었는데 이렇게 점프해서 다다다다 달리기해서 1등해서 엄마 배에서 태어났잖아. 휴우~ 그때 엄청 힘들었어."
그러고는 꼭 덧붙이는 한마디
"엄마, 내가 1등해서 좋지?"
다른 아기가 태어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나줘서 좋은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ㅎㅎㅎ 이런 아이를 어떻게 안아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럼! 좋지 좋지! 그때 다른 아기씨가 일등 할까봐 엄마도 조마조마 했잖아~ 그런데 네가 일등으로 도착해서 엄마도 얼마나 기뻤다구! 엄마 배에서 태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줘서 넘넘 고마워 내딸~ ♥"
실제상황을 설명해줘야 한다는데 아직 내게 그만한 스킬이 없다. 12살이 되면 진짜 제대로 된 성 상식을 얘기해줘야 할텐데 어찌해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요즘엔 교육센터나 기관도 많으니 그런 사회시스템을 적극 알아봐야겠다.
그래도 이런 동화책이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다시 한번 동화작가님들, 그림책작가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나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작가가 되어야지! 그리고 재밌는 내용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