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거는 후회로 가득했지만

by 파란동화


나의 남편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in서울 4년제 대학을 나왔다. 나름 취업률도 높은 과였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나 지인들의 사업을 도우며, 일하고 여행 다니고 일하고 여행 다니고 하는 식의 인생을 살아왔다.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는 남편에게 "도대체 대학 4년 동안 뭘 했어?" 물었더니 "4년 내내 축구만 했어. 오로지 축구만 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전문대를 졸업 후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사무직을 전전했다. 그러다 서른둘에 모든 것을 팽개치고 그동안 모은 돈을 몽땅 털어서 등산만 다녔다. 거의 3년간 등산과 여행만 다녔다. 돈이 떨어지면 짧은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지만, 그 3년 동안 제대로 된 곳에 취직을 한 적은 없었다.




남편과 나는 서른넷에 여행지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사귄 지 20여 일만 함께 인도 여행을 떠났다. 참 낭만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덕분에 우리는




결혼 당시

둘 다 백수에

빈털터리였다.




고민 없이 여행만 다닐 때는 좋았다. 남편도 나도 자신의 인생과 미래에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던 시기여서 깊은 생각이나 목적 없이 그저 떠돌기만 했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보니 그동안의 행보가 얼마나 무모하고 허무한 것이었는지 뼈속에 스미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동안 쌓은 것도 없이, 앞으로의 계획도 없이, 무턱대고 아이부터 낳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었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돈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짓눌렀다. 나는 처음으로 등산만 다니던 시절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시절 내내 축구만 했다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남들이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누리기 시작한다는 40대에, 우리 부부는 사회초년생보다 더욱 치열하게 살고 있다. 나는 20대에 품었던 꿈을 다시 이루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글을 쓰고 근무 중에도 화장실 갈 시간과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를 하고 있다. 남편은 새롭게 취직한 직장에서 실력을 쌓아 전문가가 되기 위해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야 돌아온다.




이 나이에 이게 뭔 고생인가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남편도 나도 이 나이에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욱 크다. 체력적으로는 자주 한계에 부딪히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남편도 나도 '고생'을 한다기보다는 뭔가를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살면서 지금처럼 공부와 일이 즐거웠던 때가 없었다. 의미와 목적과 미래가 없던 삶에 그것들이 채워지고, 무채색으로 먼지처럼 흩날리던 나날들이 천연색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기분이다.




한때는 대학 내내 축구만 했다는 남편을 두고 한숨을 쉬곤 했었다. 가진 돈을 모두 털어 회피성 여행을 떠난 나의 지난날이 후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아이가 자라서 대학시절 내내 목적 없이 한 가지 일에만 빠져 지낸다거나, 서른 중반에 다니던 직장을 뛰쳐나와 생각 없이 여행만 다닌다고 한다면,




나는 어쩐지

싫지 않을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인생에는 그런 시기도 필요했고 어쩌면 누구나 그런 시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긴긴 인생 누구나 한 번쯤 그런 시기를 겪는 것이라면, 그것을 60대에 겪든 20대에 겪든 무슨 상관이랴. 인생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관점만 가진다면 말이다.




그런 시기를 이미 겪었기에 남편도 나도 지금의 '이 기회'에 오히려 감사하고 더욱 열심히 매진할 수 있는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누구나 같은 방향으로만 흘러갈 필요는 없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곳에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다.




흐름을 역행했더라도

과거가 후회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축구만했어

#등산만했어

#생각없이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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