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자연 그대로가 사람의 손끝보다 섬세한 무릉계곡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by 파란동화


'하늘문' 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문' 이라는 말에 이끌려 이곳으로 향했는데




세상에나!

정말로 저 높은 하늘 위에

바위로 형성된 '문' 이 있었다!!




멀리서 봐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면 그 위에 바위문이 나타난다. 10kg이 넘는 박배낭을 메고 철계단을 오르며 혹여라도 손을 놓쳐 그대로 곤두박질 칠까봐 노심초사 해야 했다.




철계단의 경사각이 거의 수직에 가까워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더욱 아찔했다. 목을 완전히 뒤로 꺾어야만 철계단의 끝이 보인다.




철계단의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천천히 한계단씩 올랐다. 다행히도 평일 오후 4시의 하늘문에는 등산객이 한 명도 없었다. 나의 앞뒤로 누군가가 있었다면 더욱 다리가 후들거렸을 것이다.




하늘문을 통과하며 왠지 모를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쏟아내다가 급기야는 소리내어 엉엉 울기까지 했다. 모든 것이 다 감사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이 감사했고

나에게 길을 내어준 것이 감사했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곳에 속한 것이 감사했다.









철계단이 없었다면 나의 자력으로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이 험난한 곳을, 미천하고 비루한 '나' 라는 사람이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하늘문을 위시한 주변의 바위들도 모두 예술이었다. 이곳 무릉계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도 무릉계에 발을 들인 순간, 모두 아름다워진다.




무릉계를 거닐던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도 아름다웠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하늘문을 통과하고도 아찔한 철계단은 계속 계속 계속 이어졌다. 등산화를 신지 않은 초행자들에게 함부로 권해서는 안 될 곳이었다. 하지만 철계단을 모두 오르고 나면 이후로는 완만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이 높은 곳에서 건너다보이는 봉우리는 기암으로 끝내주고, 내려다보이는 골짝은 단풍으로 끝내준다. 좀 전에 내가 있었던 계곡이 엄청나게 멀게 느껴졌다. 도대체 철계단을 얼마나 올라온 것인지.









이곳 등산로에는 '신선바위' 라는 것도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나도 신선 흉내를 내어 본다. 무릉계곡의 골짝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단풍으로 가득한 계곡은 저물어 가는 태양빛을 받아 더욱 붉게 불타고 있었다.




아!

신선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시인들이 왜 이곳을 찾았는지

가보면 알게 된다.




이 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누구든 시인이 되리라!




경치에 감탄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산너머로 꼴깍대고 있었다. 관음암을 거쳐 지상으로 내려간다. 관음암 앞에서 바라다보는 풍경도 신선바위나 하늘문에서 바라본 풍경만큼 절경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라면 자연에 시선을 빼앗겨 해탈의 경지에 이르긴 힘들것 같다.









관음암을 지난 이후로는 계속 계속 계속 내리막을 내려가야 한다. 하늘문까지 올라온 딱 그 높이만큼 내려가야 지상에 닿는 것이다.




무릉계곡의 입구에는 본사인 '삼화사' 가 있다. 등산을 다녀보면 본사인 큰 절 보다 말사인 암자들이 훨씬 고즈넉하고 좋은 경우가 많다. 사람 많은 시내보다 사람이 거의 없는 작은 공원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은 특히나 암자에 더 끌릴 수 밖에 없다.




드디어 계곡 입구에 있는 '무릉반석' 에 닿았다!

엄청나게 너른 바위에 옛 시인들이 새겨넣었다는 글귀들이 즐비했다. 바위가 어찌나 넓은지 도저히 한장의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았다. 유명한 곳의 계곡 입구는 평일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사실 무릉계곡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이곳 '무릉반석' 인데 산 위에서부터 내려온 나는 어쩐지 감흥이 덜 했다. 계곡의 상류에서 보았던 반석과 폭포와 하늘문에 나의 감동을 모두 빼앗겨, 여기서까지 감탄할 것이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나는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면, 넉넉한 시간으로 무릉반석에 흠뻑 빠져들어야지!




삶에서도 여행에서도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주말만 보내고 다시 월요일이 되면 동해로 출발하려고 했다. 그런데 동해지방에는 주말부터 수요일까지 비가 오락가락 했고, 나의 몹쓸 몸뚱이는 설사병에 걸려 버렸다. 백두대간을 하며 음식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몸이 신호를 보낸 것이었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살면서 설사병에 걸린 것은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




겸사겸사 일주일동안 푹 쉬고 비가 그친 목요일부터 다시 종주를 이어갔다. 지난번 무릉계곡에서 나올 때는 입장료 따위 몰랐는데, 들어갈 때는 입장료를 내야만 했다. 큰 절이 있는 등산로 입구는 항상 이런식이다.




'문화재 관리비' 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는데 그 돈이 국립공원의 관리비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절' 로 다 들어간다. 그 '절'을 둘러보지 않고 그저 등산만 하려해도 입장료는 무조건 내야 한다. 그러니 이것은 '문화재관리비' 가 아닌 '통행료' 인 셈이다. 등산객들이 불편해하는 이유가 여기서 발생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려는데 입구의 아저씨가 나를 잡아 세웠다. 아저씨의 시선은 나의 커다란 배낭에 꽂혀있었다.




"아가씨, 어디로 갈 거에요? 산 탈 거에요?

이 시간에 올라가면 해 지기 전에 내려오기 힘들텐데."




비박자들을 잡아 사전통제를 하는 것인줄 알고 뜨끔해진 나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두타산으로 올라갔다가 백두대간 타고 댓재로 가요."




"그래? 그럼 시간 충분하지. 조심히 등산 해요."




휴우... 다행이다. 이곳은 쉰음산 군립공원. 국립공원이나 군립공원은 모두 비박 금지였다.




동해지역에는 어제까지 비가 내린 덕분에 계곡의 수량이 지난번보다 훨씬 늘어나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하게 귓전을 때린다.








마지막에 급하게 하산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무릉반석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보니 가히 압권이었다. 무릉반석의 바위 위에 새겨진 글귀 중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것도 있다고 하는데 저 수많은 글귀중 어느것이 그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렇게나 넓은 바위라니!

돌 위를 걷는데도 전혀 불편함 없이

오히려 바위에 발이 착착 붙는다.




계곡의 바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간 중간 선명한 검은 띠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을 두고 '용오름' 이라고 하는데,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며 지나간 흔적이라고 한다. 무릉계곡 입구쪽 바위에는 이런 까만 줄이 상당히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아마도 암석의 침식과정에서 생긴 흔적이겠지만,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용오름을 전설 그대로 믿고 싶었다.




큰 절인 삼화사와 넓고 완만한 폭포인 학소대를 지나 무릉계곡의 명물인 용추폭포쌍폭포를 보러 갔다. 용추폭포와 쌍폭포는 2분 거리에 있는데, 먼저 나타나는 것은 똑같은 폭포가 좌우로 나란히 만나는 '쌍폭' 이었다.









쌍폭은 정말이지 똑같이 생긴 폭포가 오른쪽과 왼쪽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떨어진다. 폭포로 유명한 무릉계곡을 보기에는 오늘이 최고의 날이었다. 전날까지 내린 비로 폭포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이 이보다 시원할 수 없었다. 그냥 보아도 좋을 폭포는 수량까지 풍부해서 더욱 장관이었다.




쌍폭을 형성하는 바위에는 신기한 절리가 형성되어 정육면체 바위들이 층층이 쌓인 모양새였다. 신기하게도 좌우 폭포가 정육면체 바위까지 쌍둥이처럼 똑 닮았다. 어떻게 이런 모양이 자연 그대로 형성될 수 있는 것인지? 자연은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




저 육면체 바위 위에 앉아 시원하게 떨어지는 쌍폭의 낙숫물로 마사지를 받고 싶었다. 신선처럼 날아서 저기 앉아있고 싶다!









달이 환하게 뜬 밤이면

육면체 바위 위에 신선들이 걸터앉아

밤이 새도록 마사지를 받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이렇게 멋진 곳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유명한 '용추폭포'가 나온다. 보통은 절벽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이 폭포인데, 용추폭포는 신기하게도 계곡의 물 웅덩이에서 물이 떨어져 내린다. 폭포의 위도 물 웅덩이고 폭포의 아래도 물 웅덩이다.




나는 아래쪽 웅덩이보다 위쪽의 웅덩이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등산로에서는 위쪽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만약, 위쪽을 자세히 볼 수 있다면 이곳의 경치가 다른 곳보다 월등하겠지만, 그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풍경만으로는 쌍폭을 이기지 못했다.









폭포를 보고 나와, 이번에는 두타산성으로 향했다. 이곳 무릉계곡에선 백두대간으로 오르기 전에 둘러봐야 할 것이 많았다.




산성으로 오르는 곳은 경사가 제법 있는데, 경사로를 다 오르고 나면 굉장히 완만하고 둥근 바위 위를 걷게 된다. 그리고 바윗길의 곳곳에 역시 둥글고 아기자기한 예쁜 바위들이 있다.




너무나 귀엽고 예쁜 바위들의 향연에 나는 아이처럼 꺄아 꺄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바위를 좋아하는 산객들에게는 진정 이곳이 천국이구나!




귀엽고 아기자기한 둥근 바위와

육면체로 깍뚝썰기 되어 있는 절리와

끝없이 넓게 펼쳐진 반석이 있는 곳









대한민국에서 감상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바위들이




이곳 무릉계곡에 모두 모여 있었다.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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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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