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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Oct 08. 2023

여행자가 호캉스를 즐기는 법

호캉스 반대론자에서 예찬론자가 되기까지

호캉스. 영어로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이라고도 하는 신조어다. 말 그대로 호텔에서 바캉스를 보낸다는 뜻.


나는 호캉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이해를 하지 못했다. 햇빛 쨍쨍한 밖에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데, 하루종일 방 안에서 유유자적한다고? 서울에 사는데 집을 놔두고 호텔을?


그랬던 내가 우연찮은 기회에 호텔에 지내게 될 줄이야. 그렇게 지낸 호텔에서의 하루, 여행자의 호캉스를 기록해 본다.


19:00 늦은 저녁의 체크인

퇴근 시간이 좀 지나기 무섭게, 서둘러 을지로 5가에 있는 지인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한다. 막걸리와 빈대떡이 오고 가던 자리, 2차는 호텔 루프트탑 바다.


22:00 휘영청한 달밤의 루프트탑 바


내가 묵는 호텔의 꼭대기 층엔 서울 시내서 꽤 유명한 루프트탑 바가 자리해 있다. 남산 타워(N서울 타워로 바뀐 건 알고 있지만, 남산 타워가 입에 붙는 나는 역시 옛날 사람!)가 아름답게 보이는 와인 바. 술을 못하는 나이지만, 붉은 와인이 술술 들어갈 절경이다.


00:30 따뜻한 야외 풋 스파, 내일을 기약하다


호텔 방에 돌아오며 유난히 눈에 아른거리던 것이 있었으니, 야외 풋 스파였다. 푸른 조명이 빛나는 루프트탑 바 한편에 자리 잡은 낭만적인 곳. 밤이 너무 늦었기에 내일을 기약한다.


01:00 바스락한 호텔 침구의 매력


어둑어둑한 조명 아래 아이패드 미니로 잠시 독서를 즐기다 바스락거리는 침대 시트에 파고들어 잠을 청한다. 침대는 적당히 푹신하니 딱 좋은 정도.


04:00 서울의 조명에 잠 깨는 밤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커튼을 걷어놓고 자니 맞은편의 빌딩숲에서 반사되는 조명에 잠을 깼다. 희게 비치는 조명이 아름다운 서울의 밤.


06:30 호텔 헬스장에서 갓생러의 꿈을 실현하다


어제부터 점찍어뒀던 2층 호텔 헬스장으로 향한다. 어스름한 새벽에 혼자 고요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인공 대나무 숲이 보이는 헬스장에서 달리기를 하니 영화에서 보던 사람이 된 것 같아 뿌듯해진다. 괜스레 CNN 뉴스에 채널을 맞추다, 고양이가 나오는 만화에 빠져든다.


08:00 팬케이크를 마음껏 먹는 조식


갓 구워진 버터리하고 폭신한 팬케이크 냄새에 행복해지고, 수북이 쌓인 훈제 연어와 케이퍼, 홀스래디쉬 소스에 어쩐지 좋은 하루가 될 거란 예감이 든다.


09:30 유유자적, 독서와 TV와 아침 잠의 시간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따끈한 흰 침대 위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창 밖으론 명동 성당과 서울 빌딩 숲 풍경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TV에선 아시안 게임 양궁 경기가 한창이다. 어느새 깜박 잠이 든다.


11:10 늦은 아침잠에서 깨어나기


다행히 체크아웃 전에 잠에서 깼다.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한다. 짧은 일정이기에 짐은 단출하다.


11:50 체크아웃, 그리고 다시 여행의 시작


12시 무렵 느지막이 체크아웃을 한다. 호캉스족을 위한 호텔의 배려였을까. 한 무리의 외국인 관광객 틈에 섞여 같이 눈부신 서울의 햇빛 아래 서니, 여행의 시작처럼 설렌다. 충무로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일상에 찌든 직장인의 머리와 몸에 가벼운 휴식의 호흡을 불어넣어 주는 것. 가끔은, 호캉스도 좋은 여행이 될 수 있겠다.




저작권자 © Sunyoung Cho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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