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에미레이트 승무원의 고달픈 일과에 대한 단상

두바이를 떠나며

by Sunyoung Choi

두바이를 떠나며 이집트 카이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 쪽 구역의 담당으론 금발 머리에 순둥한 인상의 승무원이 배정된 듯하다. 상냥한 목소리에 순하기 그지없는 눈을 한 여성 승무원. 아무리 승객이 화가 나게 해도 화를 낼 수 없는 서비스직의 비애를 느끼기 해준 4.5시간짜리 비행 관찰기.


두바이 발 카이로행 비행기 안


- 메뉴는 한 번에 주문하기

우리는 가족 여행객이기에 메뉴를 시킬 때 미리 상의를 거친 끝에 여행 시 가이드 역할인 내가 메뉴를 취합해 주문하는 편이다. “치킨 두 개, 비프 하나, 사과 주스 두 잔에 얼음 넣은 세븐업 한잔이요!”

옆자리 중국인 그룹 여행객의 메뉴에 없는 무언가를 (뜬금없이 ”작은 와인병“을 달라고 벅벅 우기고 있다) 주문하기 신공에 시달리던 담당 승무원은 우리 쪽에서 주문을 받을 때마다 묘하게 표정이 밝아지곤 했다.


- 내 잘못이 아니야

커피/티를 서빙하러 온 그녀가 동양인 승무원 파트너와 푸념하는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게 되었다. 역시 옆자리 중국 아저씨 (이륙 전부터 이어폰 없이 중국어 틱톡을 소리 높여 듣는 등 높은 진상력을 선보였다)가 음식 서빙 시 헤드폰 때문에 말을 못 들은 걸, 억울하게 자신을 탓한다는 이야기. 애써 담담한 목소리지만 깊은 억울함이 느껴졌다.


- Out of service

어마어마한 인원이 탑승한 2층짜리 비행기라 그런지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 공기질부터 탁했다. 수많은 승객 탓인지 내 앞 화장실은 일찍부터 고장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리고 비행 끝무렵에 번 비행의 청결도를 묻는 질문이 꼭 끼어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그때서야 기다란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승무원들의 노고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승무원들.


- 밀지 말아요

승무원들이 음식 서빙을 하느라 카트를 밀고 다니는 그 순간에 꼭 누군가가 일어나 힘차게 복도를 행진하면, 그들이 카트와 함께 저쪽 복도까지 밀려나는 슬픈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 담요와 헤드폰 수거도 쉽지 않아

히잡을 쓴 어느 중동계 여성이 열심히 몸을 숙이고 담요와 헤드폰을 수거하고 있는 승무원의 몸을 쿡 찌른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보는 우리 승무원, 한 손에 담요를 들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더니 땡큐를 외마디 비명처럼 외친다. 의도는 좋지만 놀라게 하지는 말아 주세요.


- 제발 자리에 앉아 계세요

카이로 비행의 끝무렵, 공항에 착륙해 쭉 밀고 들어가는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 무엇이 그리도 급한지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 오버헤드 짐칸에 손을 대는 사람들. 남성 승무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캐빈 안을 쩡쩡 울린다. “승객 여러분, 자리에 앉아 계세요!”


한때 역마살을 채울 직업을 찾아 어느 대형 유럽 항공사 면접을 봤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평범한 외국계 기업 회사원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 사회생활을 해보니 그들의 숨은 고생이 보인다. 오늘도 고생 중인 모든 승무원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승객들은 편하고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었답니다.



영국에서의 소소한 일상과 여행을 담은 푸드 에세이,

"영국은 맛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E000007378571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young_choi_writer



본 콘텐츠는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등 모든 형태의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Not authorized for AI training or any other unauthorized use.

저작권자 © 2025 Sunyoung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