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피라미드 뷰 호텔 숙박기
카이로 공항에서도 멀고, 시내에서도 꽤 거리가 있는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에 여행객들이 묵는 이유는 단 하나다. 피라미드를 코 앞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 가격도 어쩜 그렇게 저렴한지, 세 명이 잘 수 있는 트리플 룸을 7만 원 안짝에 구할 수 있다. 다만 방의 컨디션은 큰 기대를 걸면 안 된다. 한국의 여관방 정도기 때문이다.
카이로 공항에 착륙해 시내의 복잡한 거리에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차량들의 묘기 대행진을 목도하며 기자에 도착했다. 단언컨대, 카이로 도심의 도로에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이 가득 들어차다 못해 지붕 위에 짐짝을 가득 실은 미니버스라던가, 차선조차 제대로 그어지지 않은 도로를 요리조리 종횡무진하는, 달리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90년대의 유물들이 도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달리는 걸 본다던지.
우리가 이틀밤을 묵기로 한 기자의 숙소는, 이름만 호텔이지 사람 몇 명만 타도 숨조차 쉬는 게 조심스러워지는 수동형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는 입구는 여관보다 소박하다. 다만 리셉션에서 손님을 맞는 주인만큼은 매우 친근했는데, 후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집트에서 이 정도의 환대와 서비스를 받는 건 5성 호텔에서도 꽤나 보기 힘든 일이었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사장은 유창한 영어에, 우리에게 가벼운 농담도 건네며 능숙하게 체크인을 진행했다.
조그마한 발코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건 거대한 피라미드 세 개의 장엄한 풍경. 레이저의 붉은빛을 삼각 면 중 하나에만 받아 이 세상의 것이라기보단 외계의 그 무엇 같다. 창 밖으로 낙타 똥이 굴러다니는 지저분한 골목과 어지러운 세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찬란한 고대의 유적. 마치 화성에 외따로 떨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수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진짜 유적이 가진 힘은, 정말이지 압도적이다.
12월 중순 쌀쌀한 카이로의 밤. 난방조차 안되는 기자의 숙소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피라미드 풍경 하나만 봐도 행복했던 이집트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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