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t Baker - I Fall In Love Too Easily
아부심벨로 떠나는 어스름한 새벽의 여정.
새벽 3시에 일어나 부산스럽게 짐을 챙기고, 채비가 끝나기가 무섭게 크루즈 4층 카페테리아로 올라가 통통하고 자그마한 도자기 잔에 커피 한 잔을 원샷하듯 들이켠다. 어둑어둑한 조명 아래 미국인 아저씨와 아르헨티나 청년이 열심히 워싱턴 DC의 정치적 현황에 대해 토론하는 걸 슬쩍 엿듣는다. 어쩐지 이 어둑한 조명이며, 새벽의 공기가 묻은 강렬한 커피 향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잠깐 한다. 음, 타이타닉이면 안 되는데.
로비로 나오니 지나치게 환한 조명에 눈에 아프다. 모두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거나, 멍하니 앉아있다.
4시가 좀 지나자 여지없이 인디애나 존스 모자를 쓴 칼리드가 나와 아부심벨 티켓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이때 잠깐 방심한 것이 아부심벨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게 된 원인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아까 마신 커피 향에 취해 평온한 마음으로 꿈꾸듯, 앞으로 다가올 여정을 그리고만 있었다.
커다란 유럽형 코치 버스에 줄을 서서 탑승한다. 아부심벨 가는 인원은 어제 필레 신전을 가는 인원보다 더 많아, 빈자리라곤 없었다. 크루즈에서 나눠준 커다란 브랙퍼스트 겸 런치 박스가 순식간에 거추장스러운 짐이 되었고, 자리는 어찌나 좁은지. 앞에 앉은 말레이시아 아저씨가 의자를 뒤로 젖히니 내 다리를 둘 공간도 없다.
"미안합니다. 의자에 다리가 닿아서요."
다행히도 그는 뒷자리 불쌍한 승객의 고통을 모른척하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버스가 출발한다. 가로등 하나 없는 온통 새까만 도로를 버스 한 대가 가로지른다. 길고 지루한 아스완 시내를 통과하자, 여느 미국 로드 트립 무비에서 봤음직한 장면들이 펼쳐졌다.
새벽의 사막은 검고 푸르다. 그리고 그 추위는 뼈에 사무친다. 푸르스름한 새벽 사막의 한기가 두꺼운 코치 버스의 벽을 뚫고 온몸에 퍼졌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 5시 무렵. 오들오들 떨며 이어폰을 꽂았다. 그리고 내 라이브러리에 저장된 Chet Baker 플레이 리스트를 듣기 시작했다.
I fall in love too easily
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곤 하죠
I fall in love too fast
너무 빠르게 말이에요
... For love to ever last
마치 영원히 사랑할 것처럼...
쳇 베이커의 연약하고 흐트러진 보컬과 어딘가 비어 있는 쓸쓸한 사운드가- 검푸른 사막과, 빛 하나에 의지해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고독한 코치 버스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나는 어쩌면, 이 사막을 향해 가는 고독한 버스 여행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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