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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Mar 23. 2022

공항에서 하루, 살아볼까?

장거리 비행 후, 경유지 공항에서 살아남는 3가지 방법

여기 공항에 갇힌 한 남자가 있다.


동유럽의 한 작은 나라에서 갓 뉴욕 JFK공항에 내린 소박하고 수더분한 인상의 남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고국이 쿠데타로 내전에 휩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의 나라 여권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채 발을 딛기도 전에 그는 공항이라는 어정쩡한 림보(Limbo, 천국과 지옥도 아닌 곳에 있는 불확실한 상황) 안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유령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공항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노숙을 하게 된 남자. 간이 서점의 책들을 읽으며 영어를 독학하고, 온갖 공항에서 일하는 온갖 사람들과 친구를 맺는다. 그뿐이랴, 공항 화장실 세면대에서 눈물 없인 보지 못할 머리 감기 등 굴욕적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 꿋꿋이, 품위를 유지하며.


이상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터미널(2004) 도입부이다. 자체로도  만들어진 영화지만 나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 익숙한 공항 내부의 풍경들이 주인공 “나보스키”씨만의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바뀌어가는지를 포착한 장면들이었다.


가엾은 우리의 “나보스키” 씨는 공항 터미널의 의자를 억지로 붙여 잠을 청하는가 하면, 공용화장실에서 비누거품 투성이의 얼굴로 남들이 보던 말던 아랑곳하지 않고 면도를 감행하기도 한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공항을 통해 여행하는 해외 여행자라면, 언젠가 자의든 타의든 한 번쯤은 마주치게 될 악몽 같은 순간들이다. 한밤중의 항공기 연착으로 수트케이스에 발을 얹고 오지 않는 잠을 청해 본 여행자라면 우리의 “나보스키” 씨의 난감함을 이해하리라.


다행인 것은, 우리는 나보스키 씨가 겪었던 “9개월 공항 살아보기” 강제 체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여기,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며 지루한 기다림을 해야 하는 모든 나보스키 씨들에게 공항에서의 시간 보내기를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내 경험들을 공유한다.




“공짜 반나절 여행 투어”를 한다


2010년대 중반, 방글라데시를 가기 전 중간 기착지로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꽤나 긴 레이오버(최종 목적지를 가기 전, 경유하는 시간이 24시간 이내에 해당할 때)를 했던 적이 있었다. 수줍은 듯 아름다움을 뽐내는 동양란들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고 작은 폭포수와 정원이 있는 거대한 창이 공항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작은 관광지로서 즐길 만한 요소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싱가포르에서 적극 홍보하고 있던 레이오버 관광객용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는데, 2.5시간 동안 공항을 벗어나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싱가포르를 돌아보는 무료 싱가포르 가이디드 투어였다. 이 프로그램은 최소 5.5시간에서 24시간 정도의 시간이 있는 여행자용으로, 두 곳 정도의 포토 스탑과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는 꽤 유용한 투어 프로그램이었다.


굳이 공짜 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카고나 시드니, 홍콩 같은 도심과 공항이 가까운 도시를 중간 기착지로 삼는 것도 여행 중독자라면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시내로 관광을 나가,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효율로 “가보고 싶은 나라” 리스트에서 하나를 지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라운지는 일등석 승객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이용했던 라운지의 미니바

푹신한 리클라이너와 군침도는 뷔페 음식들이 나오는 공항 내부의 라운지가 일등석 승객들만의 점유물이던 시대는 끝났다. 세계 곳곳의 공항에서는 일정 금액만 내면 이용 가능한 “유료 라운지(pay-in lounges)”를 운영 중이다.


몇 년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내가 이용했던 라운지는 특정 카드를 이용하는 고객이면 무료로 이용이 가능한 곳이었다. 냉장고에는 브랜드별로 유명 독일 맥주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어 술을 즐기지 않는 나도 고민에 빠지게 만들 정도였고, 간단한 스낵 푸드와 탑승할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편히 누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편안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칸막이가 쳐진 비즈니스 라운지까지 마련되어 있어 급한 전화까지 만족스럽게 해결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라운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는 소위 “PP(Priority Pass) 카드”를 골라 꼼꼼하게 따져보고 발급받는 것이 좋다.


공항 내부 호텔 이용하기


장거리 비행은 확실히 고통스럽다. 좁은 좌석 간에 엉거주춤하게 구겨 넣은 다리는 퉁퉁 부어오르고, 몇 번 잠을 청하고 나면 부스스해진 내 머리에 따뜻한 샤워가 간절해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거기다 직항이 아닌 경유 비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 경유지에 도착하기 전부터 천근만근 무거운 몸과 함께 마음까지 무거워져 오는 기분을 느껴봤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벗어나는 기쁨도 잠시, 경유지 공항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다시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공항 터미널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따뜻한 샤워와 잠깐이라도 마음 편히 누울 공간이 간절한 당신에게 공항 안에 있는 작은 호텔들을 이용하는 것도 적극 추천한다. 세계 곳곳의 공항에는 이처럼 시간당 이용할 수 있는 호텔이 공항 내부에 있어 아주 비싸지 않은 가격에 눈을 붙이는 것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공항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등이 있으므로 나의 경유지 공항에 이러한 호텔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공항은 설렘이 가득한 장소인 동시에, 오랜 시간을 보내기엔 가장 곤혹스러운 두 얼굴을 가진 장소이기도 하다. 낯선 외국의 공항에서 하염없이 연착되고 있는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면세점에 가득한 초콜릿과 기념품을 구경하기에도 지쳐버린 당신에게 오늘의 글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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