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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Mar 27. 2022

북유럽 크루즈선에서 완벽한 밤을 보내는 방법

크루즈쉽 여행은 처음인 당신에게

유유히 바다를 가르는 거대한 배 한 척과 그 발코니에서 우아하게 티타임을 갖는 승객들, 고고하게 흐르는 코발트색 바다를 내려다보며 부풀어 오르는 다음 기착지에 대한 기대감.


영화 타이타닉이나 어디선가 읽은 나일강 크루즈 여행에서 상상한 크루즈 선박여행에는 언제나 어딘가 가슴 떨린 낭만이 있다. 늘 크루즈쉽 여행에 대한 로망은 있었지만 어딘가 먼 세상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 해 여름,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그리고 어느 겨울밤 다시 스웨덴과 에스토니아로 떠나는 거대한 크루즈선에 몸을 싣기 전까지는 말이다.


지금 여기, 한 북유럽 크루즈선에서 내가 보냈던 하룻밤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빅토리아 호의 선실 복도




16:00 항구 슈퍼마켓에서 수르스트뢰밍을 찾아 헤매다

스톡홀름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 밤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떠나는 탈링크 실야 라인 크루즈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항구로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어둑해져 가는 하늘에 익숙해진 스톡홀름 다운타운의 불빛, 꽁꽁 싸매고 느긋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빨간 볼의 스웨덴인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자니 이제 안녕이구나 싶어 약간은 울적해졌다.


항구에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크루즈선에서 먹을 만한 간식을 사담기 위해 근처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슈퍼마켓에 즐비한 알록달록한 초콜릿을 보다가 문득, 수르스트뢰밍(발트해의 청어를  달간 발효시켜 만든 스웨덴 전통 음식)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상 좋은 할머니가 알려줘 겨우 찾아낸 유리병에 담긴 수르스트뢰밍은 아쉽게도  배낭이 감당할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그렇게, 아쉽게스웨덴과 발트해의 청어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나는 빅토리아 호에 몸을 실었다.


작은 팁: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이, 미리 준비하면 모든 것이 저렴해진다. 북유럽 크루즈쉽을 탈 계획이라면 미리미리 탈링크 www.tallink.com 나 www.vikingline.com 등의 선박사 예약 홈페이지에서 티켓을 예매하도록 하자.


18:00 갑판 위에 올라가 “세상의 왕”을 외치다


타이타닉의 명대사는 뭐니 뭐니 해도 잭 도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배의 갑판 위에 올라가 돌고래를 보며 외치는 “나는 세상의 왕이다!(I am the King of the World!)”가 아니던가? 발트해가 넘실거리는 작은 창문이 나 있는 선실에 짐을 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배 안을 쏘다니다가, 갑판으로 향하는 문을 발견했다.


스웨덴의 겨울 해는 오후 2시 반이 되어서부터는 힘 빠진 빨간 풍선처럼 저물기 시작한다. 때는 이미 오후 6시, 해가 다 져버린 새까만 발트해는 매서웠다. 타이타닉의 로맨틱한 노을이 지는 대서양과 때맞춰 나타난 멋진 돌고래 떼는 없었어도, “나는 세상의 왕이다!” 대사를 읊으며 갑판에서 바라보는 검은 발틱해는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19:00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
빅토리아 호의 카페테리아

항구 슈퍼마켓 주변에는 딱히 저녁을 해결할만한 곳이 없었기에 크루즈선에 있는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아담한 식당 안에는 러시아,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무슨 수프인지 알 턱은 없었지만 토마토를 베이스로 여러 가지 야채와 콩이 들어가 걸쭉하게 끓여낸 수프는 4.80유로라는 저렴한 가격에 비하면 상당히 훌륭한 저녁식사였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시큼하고 정겨운 흑빵 두 쪽에 버터를 알뜰하게 발라 곁들여 먹으니 속이 든든해졌다.


작은 팁: 크루즈쉽이라고 모든 음식이 비싸지는 않다. 식사 시간을 놓쳤다면 크루즈선에 딸려 있는 카페테리아를 노려보도록 하자.


20:00 선박 면세점 구경은 또 다른 신세계
나의 무민 트롤

핀란드의 작고 귀여운 괴물, 무민 트롤(Moomintroll)을 아시는지? 통통한 흰 배에 하마를 닮은 외양이 매력적인 이 녀석은 스웨덴계 핀란드인 작가인 토베 얀손이 창작한 소설의 주인공이다. 무민 골짜기의 파란 집에서 겨울이 오기 전엔 잼을 만들고 봄이면 꽃이 가득한 골짜기에서 모험을 즐기는 이 여유로운 캐릭터를 나는 무척이나 사랑한다. 실야 라인의 선박 면세점에는 이 북유럽 출신 귀여운 녀석의 캐릭터 상품이 가득했다. 에스토니아 탈린의 명물 술인 “바나 탈린(Vana Tallinn)” 외 북유럽 국가에서 만들어진 특산품 술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21:00 미러볼 가득한 크루즈 공연장에서 “스타라이트 카바레” 관람하기
빅토리아 호의 스타라이트 캬바레

온통 번쩍거리는 황금색으로 뒤덮인 무도회장에선 저녁 9시를 기점으로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9시쯤 자리를 잡으니 선상 밴드가 철 지난 미국 팝송과 친숙한 스웨덴 출신 그룹 아바(ABBA)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최상급의 연주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삼삼오오 물결에 휩쓸리듯 무대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하는 승객들에게는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22:00 멀미에 잠 못 이루는 밤

하루 종일 스톡홀름 관광지들을 섭렵하고 온 저녁 이어진 크루즈선 탐험으로 온통 피곤해진 나는 나의 작은 캐빈으로 돌아와 잠을 청해 보기로 했다. 작디작은 선실 바깥 창문으로 발틱해의 검은 물결이 공포스럽게 넘실거렸다. 그리고 침대가 선실 안에서 바다의 물결에 리듬을 맞춰 끼익,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뱃멀미로구나. 마치 영화 인셉션을 보는 듯, 체감상 복도가 약 30도 가까이 기울어진 크루즈선 복도를 가까스로 기어가듯 걸어가 의무실에서 멀미약을 타 왔다. 그렇게 발틱해의 첫날밤이 흘러갔다.


작은 팁: 크루즈쉽 여행을 준비한다면 멀미약은 필수다. 멀미약을 못 챙겨 왔다면 미리 의무실에서 받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07:30 북해를 바라보며 아침 뷔페를
평화로운 아침 뷔페

눈을 떠보니 간밤의 공포스러운 검은 물은 온데간데없이 아침해가 붉게 떠오르고 있었다. 평온한 마음으로 미리 예약해둔 아침 뷔페식당으로 가 식사를 마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히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코티지치즈와 연어는 별미였다.




북유럽 크루즈선은 확실히 럭셔리한 크루즈 여행과는 거리가 있지만, 평소 선상 여행의 로망이 있던 여행자의 부푼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충분하다. 이국적인 북유럽의 선상에서 어릴 적 보았던 타이타닉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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