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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young Choi Apr 06. 2022

나 홀로 여행의 이유

룩셈부르크 당일치기에서 깨달은 나 혼자 여행의 즐거움

나 혼자 온 세계를 헤집고 다닌 지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 왜 혼자 여행에 그토록 매력을 느끼는 것인가, 물으신다면 이유는 너무나 많다.


혼자 탄 기차에서 창문 바깥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밴드 트래비스의 “마지막 기차(Last train)” 음악이 에어팟에 흐르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비행기의 옆자리에서 우연한 말벗을 만나 12시간의 비행을 한순간처럼 느끼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들도 멋지다. 홀로 먹는 식당에서 “고독한 미식가” 흉내를 내며 고소한 수프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음미하는 것도 좋다. 발길 닿는 대로 나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 저마다 좋을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정말이지, 인생길은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온갖 상념들이 거대한 커피 필터를 거쳐가듯이 정화되고,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다음 여행을 갈 때쯤이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어느 날 훌쩍, 홀로 간 룩셈부르크에서의 하루도 그랬다.


11:00 독일 트리어에서 홀로 기차를 타다


룩셈부르크로 향하는 기차


아침 일찌감치 일어나 짙은 코발트색으로 동이 트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며, 홀로 새벽 기차를 타고 트리어에 도착했다. 멋없는 무채색의 윈터 재킷을 걸친 채 멍한 눈빛으로 출근 기차를 타는 독일인들의 겨울 아침도 우리네와 크게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싸늘한 아침 공기에 온 몸이 시렸다. 기차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을씨년스러운 독일 겨울 풍경이 이채롭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동이 터 오고 있었다.


트리어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온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어린 학생들이 견학이라도 나왔는지 무리를 지어 선생님을 쫓아다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우리나라 경주 같은 포지션이다. 트리어에는 역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트리어 대성당(Trier Dom)이 있다. 트리어에 방문하신다면, 꼭 오르간 음악을 듣고 오시기를. 대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웅장한 오르간 음악소리는 몽환적으로 아름다워,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 마력이 있다.


왜 하필 룩셈부르크였을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를 꼽으라면 꼭 들어가는 나라 중 하나. 그렇지만 작다고 무시할 수 없는 부자 나라.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이 지루한 무채색의 독일 속 일상 속에서 어딘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나 홀로 여행이 좋은 이유 하나 : 홀로 떠나는 여행은 다분히 충동적이다. 그저 TV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던지, 여행 블로그에서 영감을 받았던지 간에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일행과 하나부터 열까지 일정을 맞춰야 하는 귀찮음은 없다. 그저, 가방을 둘러메고 당장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12:35 뤽상부르의 다리와 작은 강아지


산뜻한 파란색 시트가 인상적인 기차는 순식간에 룩셈부르크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차창 밖 잔뜩 흐린 하늘 밑으로 룩셈부르크 뤽상부르의 다리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얼굴을 한 뤽상부르였다. 무작정 들어간 성당에서 하얀 몰티즈 강아지가 나에게 반갑게 뛰어들었다. 혀를 날름 귀엽게 뺀 강아지는 웃는 낯이었다. 금발머리의 주인은 강아지를 능숙하게 저지하면서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모든 게 깨끗하게 정비된 도시와 웃는 낯의 강아지.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드는 도시다.


13:05 룩셈부르크 특산 녹색 콩 수프를 맛보다


룩셈부르크의 그린빈 수프


딱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배가 출출해져 오기 시작한다. 낯설기 짝이 없는 이 작은 유럽 공국에서는 무엇을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룩셈부르크에서 꼭 먹어야 할 음식을 열심히 찾아봤던 차였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식당이 눈에 띈다. 각종 수프와 스낵을 파는 작은 식당이다. 메뉴를 살펴보니 룩셈부르크의 특산 요리인 그린빈 수프(Bouneschlupp)가 있다.


여기다, 라는 생각에 무조건 문을 열고 다른 사람들과 줄을 선다. 평일인 만큼 나 같은 여행자보다는 어쩐지 직장인처럼 보이는 현지인이 대다수인 것 같았다. 플라스틱 쟁반에 녹색의 수프를 받아 든다. 줄기 콩과 감자, 소시지가 조화롭게 섞여 있는 소박한 서민적인 수프다. 한 덩어리의 빵을 곁들여 수프를 먹기 시작한다. 바깥으로 향하는 창문으로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여유로운 소박한 점심을 즐기자니 어쩐지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나 홀로 여행이 좋은 이유 둘: 홀로 떠나는 여행은 음식 메뉴 선정이 자유롭다. 그저 길거리에 보이는 식당에 무작정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고르기만 하면 그만이다. 일행이 즐기지 않는 날것의 블랙 소시지 요리던 생선 머리든 자유롭게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대화가 없는 식탁은 쓸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음식 고유의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4:00 오래된 요새에서 어쩌다 마주친 그대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독일에서 여행 왔어요.”

“아, 독일에서 왔다고요?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


그를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다. 중세 요새 도시로 유명한 뤽상부르는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요새로 둘러싸여 있다. 그 절벽 위의 요새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 녹색 눈의 룩셈부르크인이 말을 걸어왔다. 그날 당일치기로 독일 국경을 넘어왔다, 라는 걸 독일에서 잠시 여행 온 아시아계 독일인, 혹은 유학생으로 착각했던지 그는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했다. 룩셈부르크 사람들은 3개 국어를 기본으로 한다고 하더니 과장이 아니었다. 그렇게 잠깐 이방인과의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작별을 고했다, 고 생각했는데 같은 이를 떠나는 기차역 주변에서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룩셈부르크가 얼마나 작은 도시인지 실감할 수 있는 계기였달까.


나 홀로 여행이 좋은 이유 셋: 현지인들은 나 홀로 여행객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경향이 있다. 물론 홀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조심해야 할 필요성은 있다. 우연히 만난 길 위의 인연들에게 틈을 남겨두는 것은 어떨까. 예상치 못한 뜻밖의 친구가 될 수도, 좋은 팁을 알려주는 가이드가 되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17:00 룩셈부르크의 노을에 작별을 고하다


여유롭게 이곳저곳을 산책을 즐기고, 커다란 샹들리에가 달린 디저트 집에서 좋아하는 마카롱도 집어 먹으며 느긋한 하루를 보낸 후 다시 돌아가는 기차에 올랐다. 룩셈부르크와 독일의 경계를 흐르고 있는 모젤 강 너머로 쓸쓸하게 해가 지고 있었다. 룩셈부르크에서의 오늘 하루를 기억하기 위해 서둘러 타이핑을 시작한다.


나 홀로 여행이 좋은 이유 넷: 홀로 하는 여행은 당신을 시인으로 만들어준다. 일행과 수다를 떨면서 지루하지 않게 가는 여행도 나름의 묘미가 있다. 그렇지만 고요한 기차 안에서 하루를 되돌아보며 쓰는 감상에 젖은 글은 두고두고 여행을 추억할 수 있는 보물 같은 존재다.


도착할 무렵 이미 깜깜해진 독일 소도시의 길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달라진 것은 없을 것이다. 비슷한 무채색의 하늘, 서늘하게 뼈를 파고드는 겨울 공기는 그대로일테지. 그렇지만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 후 어제와의 나와는 다른 한 뼘 자란 모습이기를 기대하면서. 그렇게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다시 떠날 시간을 기다린다.




나머지 내용은 “미니멀한 여자 나홀로 여행법”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olo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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