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방구석 여행자(Armchair traveler)가 되는 법
분홍빛 벚꽃이 휘날리며 기분이 살랑살랑 묘해지기 시작하는 봄날이 왔다. 벚꽃으로 유명한 석촌호수 주변에 영국 가정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걸 아시는지? 테이블이 서너 개 정도가 전부인 자그마한 식당엔 한껏 런던 느낌을 자아내는 빨간 공중전화 박스가 서 있어 눈길을 끈다. 반들반들한 짙은 체리색상의 나무 테이블과 의자는 어느 유럽의 식당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한 입 베어 문 파이는, 지금껏 들어왔던 "영국 요리"에 대한 다소 가혹한 평가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훌륭한 맛이었다.
단숨에 결정한 오늘의 메뉴는 셰퍼드 파이(Shepherd's Pie)와 코니쉬 파스티(Cornish Pasty). 모두 영국에서 자주 해 먹는 가정요리들이다. 으깬 감자를 소담스럽게 얹어, 다진 고기를 오븐에서 먹음직스럽게 구워낸 셰퍼드 파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치기(Shepherd)들이 해 먹던 음식이란다. 파이는 본래 파이를 감싸는 파이 시트를 만드는 데만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들어가는 꽤나 까다로운 음식이다. 고된 노동에 지쳐 파이지 따위는 만들 시간이 없던 양치기들이 단시간에 일용할 양식을 만들기 위해 으깬 감자를 얹어 휘리릭 만들어 낸 것이 시초가 되어, 지금껏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요리가 되었다.
코니쉬 파스티에 얽힌 사연도 꽤 흥미롭다. 원래 오리지널 코니쉬 파스티는 콘월 지방의 광부들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 반달의 만두 같은 모양새에 반죽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붙여 광부 일을 하던 손으로도 간편하게 먹기 쉽도록 고안된 일종의 도시락이라고 해야 맞겠다. 소고기와 감자, 양파 등을 주재료로 소금과 후추로 짭짤하게 간을 해 만든다. 이 식당의 코니쉬 파스티는 터프한 광부의 한 끼 식사 같은 본모습에서 살짝 벗어나, 한 입 베어 물면 버터향이 가득 배어나는 여러 겹의 파이에 감싸인 고상한 모습으로 변형되긴 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고소한 감자 냄새와 따뜻한 파이를 즐기며, 마치 영국의 가정집에서 식사를 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자비한 코로나의 여파로 해외여행이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아버린 요즘 같은 시대에, 방구석 여행(Armchair Travel)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집을 떠나지 않고 푹신한 암체어에 앉아 가상으로 세계 여행을 떠난다는 뜻인 암체어 트래블이 원조로, 해외여행이 자유롭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염원으로 탄생한 콘셉트이다.
방구석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4월의 봄날 잠실에 있는 영국 식당에서 본토 음식 체험에 도전했던 나처럼 서울 곳곳에 포진해있는 세계 음식 전문점들을 탐방하며 간접 세계여행을 하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편안한 안방에 앉아 세계 각국의 미술관을 인터넷 세상을 통해 공짜로 방문하는 방법도 있으니. 취향대로 골라 잡으시면 되겠다.
그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방구석 세계여행 방법 중 하나인 구글 어스 여행법을 소개해본다. 구글어스의 장점은 세계 곳곳의 명소의 위성 이미지를 3D 입체 이미지로 재구성하여, 흡사 실제 장소를 가보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서울의 어느 방에 앉아 런던 길거리를 거닐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먼저 구글 어스를 접속해보도록 하자.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지구본, 세계 각지의 도시를 구경해 보라는 여행자의 마음을 한껏 설레게 하는 문구로 사용자를 유혹한다. 어스 실행을 클릭하면 짙푸른 바다가 아름다운 우리의 행성, 지구의 둥그런 모양이 화면 가득 떠오른다.
구글 어스: https://earth.google.com/web/
구글 어스를 실행하고 나면 여행하는 방법은 민망할 정도로 쉬운 편이다. 먼저 좌측에 보이는 돋보기 아이콘을 클릭해,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나 관광 스폿을 입력해보도록 하자. 영국 음식을 맛본 뒤이니만큼, 나는 타워 오브 런던(Tower of London, 런던탑)을 타이핑해 보았다.
런던 템스 강 북부에 위치한 성채로 밤에는 앤 불린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름 끼치는 괴담으로도 유명한 영국의 유명 관광지이다. 구글 어스는 템스 강변으로 나를 인도하고, 우측 하단에 위치한 확대 아이콘과 사람 모양의 아이콘을 클릭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런던 타워의 게이트 앞에 서있다. 이집트의 뙤약볕 아래 피라미드와 인도의 타지 마할도 손쉽게 클릭 하나만으로도 방문할 수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은 코로나가 끝나면 가장 하고 싶은 일 1순위로 해외여행을 꼽았다고 한다. 여름날 흐드러진 후라노의 라벤더 밭에서 맡은 꽃향과, 아직은 쌀쌀한 5월의 센트럴 파크에서 끝없는 잔디의 지평선과 어우러진 뉴욕의 고층 빌딩 숲의 추억이 생생한 여행자에게 방구석 여행법은 어쩌면 꿩 대신 닭에 불과한 임시방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해외여행이 그 어떤 시대보다 꽁꽁 잠겨있는 지금 같은 때,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을 맛보며 가상현실에서 그때 그 장소를 거닐어 보는 방구석 여행은 목마른 여행자의 타는듯한 방랑벽을 잠재워 줄 수 있는 고마운 선물 같은 존재는 아닐지. 방구석 여행을 통해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계획을 짤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으니 일거양득 아닌가. 다시 떠날 수 있는 그날을 위해, 방구석 세계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나머지 내용은 브런치 북 미니멀한 여자 나 홀로 여행법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olo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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