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으로 떠나는 야간 비행

코로나 시국의 장거리 여행에 대해 말하다

by Sunyoung Choi

“무슨 음료를 드릴까요?”

“토마토 주스 주세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승무원의 친숙한 멘트다. 조그마한 트레이 위에 놓인 후추가 듬뿍 들어간 짭짤한 토마토 주스를 홀짝인다. 어딘가 묽은 듯 하지만, 유럽으로 날아갈 때마다 마셨던 그 시금털털한 토마토 주스가 분명하다.


지금 타고 있는 루프트한자 719편은 바쿠를 지나 지금 트빌리시 상공을 날고 있다. 길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장거리 비행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3시간 30분 뒤 뮌헨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최종 도착지는 버밍엄 공항이다. 전쟁으로 러시아 영공을 날지 못하므로, 뮌헨까지 가는 비행 편이 13시간으로 훌쩍 늘어나버린 것이다.


코로나 시국의 비행은 어때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놀라울 정도로 답답하고, 이상할 정도로 텅 비어있어요,라고. 늘 인파로 미어터질 듯하던 인천공항은 줄지어 문 닫힌 면세점이 어딘가 쓸쓸하다. 13시간 마스크를 쓰고 쥐 죽은 듯 있어야 하는 비행시간은 숫제 생고문이다. 만석 비행으로 창문 좌석에 갇힌 신세가 되어 퉁퉁 부은 다리는 덤이다.


독일 뮌헨의 하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의 수하물 분실 파동으로 모든 짐을 확 줄여 기내로 들고 탄 터였다. 이틀 밤을 고민해 짐을 더 줄이고,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 8kg의 자그마한 슈트케이스에 짐을 욱여넣는 것에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가방 문을 잠글 때 뿌듯함과 함께 현타가 몰려왔다. 여행 전날 밤의 간질간질한 설렘은 짐 분실에 대한 불안감에 밀려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다.


무섭게 올라버린 물가와 함께 무서운 환율도 한몫을 했다. 여행 전 설레는 의식 같았던 소소한 면세 쇼핑도 지극히 심플하게. 립스틱 하나를 집어 들고는 끝이었다.


이례적으로 텅텅 비어 있는 30번 게이트 앞이 프랑스 학생들로 요란하다. 수학여행이라도 온 것인지 색색깔의 커다란 배낭을 메고 던킨 도너츠를 주문한다. 예전의 모습을 찾기 힘든 인천 공항에 그나마 생기를 불어넣는 풍경이다.


한 때 항공사에서 주는 로고가 달린 파우치나 치약, 슬리퍼 따위의 소박한 어메니티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다르다. 꼬마 종이컵을 제외하고는, 승객의 편의를 위한 일회용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환경을 위해서는 바람직하다. 코로나 시대 이전의 이상할 정도의 풍족함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었는지, 텅 빈 좌석 앞 주머니를 보며 깨닫는다.


루프트한자의 인천-뮌헨 노선의 저염식 기내식


25분 여 지연된 이륙의 순간. 파란 로고를 달고 있는 루프트한자 비행기의 날개가 펴지고, 눈부신 상공을 향해 날아간다. 잠에서 덜 깬 눈을 떴을 때 그림같이 펼쳐진 중국 우루무치 상공 어딘가의 거대한 산맥. 내가 마침내 대한민국 상공을 벗어났다는 시리고 벅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코로나 시국의 비행은 이상하다. 뭔가 빠진 듯하고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먼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걸 잊게 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이 설렘이, 10,000km가 훌쩍 넘는 여행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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