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축구의 민낯을 보다

맨시티와 리버풀 축구 경기를 직관하다

by Sunyoung Choi

“맨시티 스카프 챙겼어?”

“새로 산 유니폼 색깔이 하늘색이니까, 청바지는 진한 색으로 입는 게 낫겠지?”

“오, 그 목걸이 예쁘다. 맨시티 블루(Man City Blue, 맨체스터 시티 FC의 로고 색깔인 하늘색을 말한다) 같아.”


맨시티 경기가 있는 어느 토요일 아침 집안 풍경이다. 라이벌인 리버풀 FC와의 친선 경기에 가깝지만 잉글랜드에서 1, 2위를 다투는 두 마리 공룡 같은 팀이기에 아침부터 열을 올려 경기에 대해 토론하고, 응원용품들을 챙긴다.


사실 한국에서도 유니폼을 입고 K리그 경기를 직관하곤 했기에 이 풍경이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다. 축알못에 가깝지만 경기장의 그 열띤 응원 분위기와 모두가 하나 되어 노래를 부르는 직관은 분명 매력적이다.


전날부터 부산스럽게 주차장을 예약하고(영국은 주차장을 미리 예약하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 흘러간 응원가를 흥얼거리는 축제 전야 같은 밤을 보낸 뒤 드디어 출전의 날이 밝았다. 아침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배틀필드에 산책을 나가고, 집에 돌아와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서둘러 레스터 킹 파워 경기장(Leicester King Power Stadium)으로 길을 나선다.


널따란 황야에서 소들이 풀을 뜯고 노는 한가로운 모터웨이(영국의 고속도로)를 달려 40분 여쯤 갔을까. “레스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초록색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국 사람들은 라이세 스터라고 발음하기도 해.”라고 농담을 건넨다. 지역명을 부르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맨시티와 리버풀의 경기


우중충한 하늘 아래 맨시티의 하늘색과 리버풀의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온 도심이 북적이고 있었다. 아빠 손을 잡은 금발머리 소년 둘이 “오, 케빈 드브루이너!” 라고 맨시티의 간판 미드필더 이름을 딴 응원가를 열창하며 길을 걷는다. 그 옆엔 팬인지 거리의 부랑자인지 모를, 가죽점퍼를 대충 걸친 한 중년의 남자가 차도의 빨간 안전콘들을 쓰러뜨리며 군중 사이에서 휘청거리듯 섞여 행진한다.


강렬한 맨체스터 사투리를 쓰며 걸어가는 키가 장대 같고 기골이 큰 영국 축구팬들. 어딘가 성이 난 것 같기도 하고, 경기에 대한 흥분에 가득 차 어쩔 줄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침내 도착한 레스터 킹 파워 스타디움에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기마경찰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위풍당당한 기세에 어울리지 않는, 거리에 가득한 말똥은 덤이다.


한국 축구 경기장의 컬러풀한 온갖 기념품을 파는 매장과는 대비되는, 무척이나 심플하기 짝이 없는 매대에서 팔고 있는 5파운드 프로그램을 사들고 티켓과 가방 체크를 마친 뒤 경기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맥주를 사랑하는 영국인들이지만 경기장 안에서 술을 마시는 건 금지되어 있으므로, 그 큰 손에 물을 들고 옹기종기 마시고 있는 풍경이 이채롭다.


경기 티켓과 프로그램


붉은색과 하늘색으로 정확히 반이 갈린 관중석 내. 맨시티 응원석에 앉아 있으려니 웬 꼬마 두 명이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노란색 안전복을 입은 안전요원이 바로 출동해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보호자와 대화하고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떠난다. 아빠가 맨시티 팬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 집안에서도 응원팀이 갈릴 수 있다니.


레스터 스타디움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비하면 귀여울 정도로 소박한 경기장으로, 어느 자리에 앉아도 선수들이 땀 흘리며 뛰어가는 게 어느 정도로 선명하게 보일 정도다.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실바, 그릴리쉬, 포든 등 티브이로만 봤던 쟁쟁한 선수들이 열심히 공을 뻥뻥 차대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를 눈앞에서 보는 심정이다.


경기는 리버풀 FC가 3:1로 승리하며 막을 내렸다. 리버풀이 세 번째 골을 터뜨리는 순간, 붉은 연막탄을 터뜨리며 선수들이 있는 잔디 쪽으로 던져대던 리버풀 팬들이 일을 내고야 말았다. 잔디에 불이 붙어버린 것이다! 익숙한 듯, 선수들이 무심하게 연막탄을 경기장 밖으로 차내는 모습에서 영국 축구의 과격함이 느껴졌다. 가까이 앉은 한 맨채스터 팬은 어찌나 화가 많은지 선수 움직임 하나하나에 F가 들어간 욕을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이웃에서 봐 왔던 정원을 예쁘게 가꿔놓는 예의 바른 영국인들과는 전혀 다른, 영국의 새로운 면모를 보았다. 축구를 사랑하다 못해 본인의 정체성으로 삼고, 어릴 때부터 부모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축구를 관람하는 게 익숙한 영국인들. 그런 열정들이 모여 축구 종주국이라는 오랜 자존심을 지켜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Copyrights © 2022 Sunyoung Choi All rights reserved.

해당 글과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영국으로 떠나는 야간 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