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점. 사내 뉴스레터를 발행하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인생은 크게 달라졌다. 나는 지금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은 역시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시점이었다는 이야기를. 여기에는 뻔하지 않은 질문도 함께 따라온다. 글을 쓰는 사람들 모두 저마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질문 : 우리는 언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변했는가? 나의 경우, 회사 내 서비스기획팀으로 강제 발령받게 된 것이 그 계기였다.
당시 일개 대리에 불과했던 나의 직급을 넘어선, 조직 차원의 큰 그림을 위해 계획된 인사 인동이 있었다. 나는 하루아침에 직무가 사업 제휴에서 서비스 기획으로 변동되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조직 발표날 나는 한 시간 가까이 울었다. 팀이 변경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직무 이동을 겪어야 한다는 설움과 억울함이 폭발했다. 나는 사업 제휴 업무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서비스 기획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직무인지는 관심도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나는 서비스기획팀에서 시작한 업무 덕분에 서른세 살에 소설 수업을 등록하게 되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으며, 꾸준히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 이전에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것이 고등학생 때였으니, 그 새 십 년도 넘게 지나 있었다.
나에게 뉴스레터 발행을 제안한 건 나의 사수였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우리 회사에서 기획 운영하는 여러 서비스들에 대한 월간 사용성 리포트를 발행하는 일이었다. 미리 예상 아웃풋을 대충 그려보자면 이렇다. 우리 회사에서 자료 보고 및 공유 시 사용하는 MS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 정가운데에 서비스 사용 지표에 관한 그래프를 하나 큼직하게 넣고, 그 위에 그래프를 한 문장으로 설명해서 Head Message를 달고, 그 사용성을 보일 만한 주요 이유와 Implication을 아래 설명으로 덧붙인 모습이 될 것이었다. A 서비스의 올해 사용자와 클릭수는 작년 동기간 대비 몇 프로 올랐으며, 그 이유는 무엇 무엇으로 추측된다 - 하는 내용을 나는 분석하게 될 터였다.
늘 해왔던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사수는 평범한 인재가 아니었다. 늘 업무 방식의 혁신과 개선을 고민하는, 회사 내에서도 인정받는 인재였다. 그녀는 내가 평소에도 사무실 자리에 늘 책을 꽂아두고 독서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것이 반드시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거기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사수는 나에게 물었다.
평범하게 장표 그리지 말고,
분석한 내용을 글로 풀어 써서
부서원들이 읽기 편하게 뉴스레터를 한 번 만들어보는 게 어때?
당시 나는 글을 쓰는 행위와는 담을 쌓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 제안에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던 건, 역시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을까.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적어놓은 텍스트 속에서 매일 파묻혀 살면서 나도 언젠가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언젠가라는 게 지금으로부터 이십 년 삼십 년 후, 내가 회사의 본업에서 은퇴하고 아이들도 독립시킨 후가 될 줄 알았지 - 회사 업무의 일환으로 이렇게 갑자기 글을 쓰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해봤던 거였고.
사내 뉴스레터를 쓰는 일은 소설을 쓰는 것과도,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과도 다르다. 내가 쓸 수 있는 주제의 대상은 회사의 서비스들로 한정되어 있고, 담을 수 있는 내용도 해당 서비스의 사용성이 전부다. 무척 제한적인 글쓰기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창의력의 최대치를 이 뉴스레터에 쏟아부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가 이 브런치 서비스를 기획한다고 치자 (*예를 들기 위한 가정일 뿐이다. 나는 카카오나 브런치에 다니고 있지 않다.) 매달 내가 고를 수 있는 주제의 범위는 너무도 넓다. 댓글 쓰기 기능을 다룰 것인가, 브런치 매거진이나 브런치 북 기능을 다룰 것인가, 글 읽는 서재를 다룰 것인가, 신규 브런치 작가 신청수와 합격률 추이를 다룰 것인가?
그중에서도 브런치 매거진으로만 주제를 한정한다고 하자. 나는 브런치 작가들이 보통 어떤 장르 / 키워드로 매거진을 등록하는가를 연도 별로 분석해서 관심 트렌드를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공동 참여 매거진' 하나만 잡고, 두 명 이상 작가가 참여하는 매거진은 어떻게 다른가 / 많은 작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매거진은 어떤 특징과 차별점이 있는가를 분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지표들을 파고들다 보면, 혼자 쓰는 매거진이 아닌 공동 참여 매거진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 특별한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또한 나는 매 회 뉴스레터의 인트로 지면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본론으로 직진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부서원들이 메일을 열었을 때, 맨 윗 문장부터 '브런치 매거진의 연간 사용성이 이러이러한데 그중에서 작년 3분기 대비 올해 3분기의 사용성은 어떻게 변화했습니다'라고 쓰여 있으면 바로 메일을 닫아버릴 것이다. 나는 뉴스레터 첫 장은 늘 '들어가기에 앞서'로 코너로 정해두고 퀴즈를 만들기도 했고, 내 개인의 서비스 사용 경험을 서술하기도, 업계 뉴스 트렌드를 가져 오기도 했다. 마침 읽던 책에서 어떻게든 연관성을 지어서 한 단락을 인용하기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느꼈다.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으로, 나는 내 일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뉴스레터 글을 작성하는 날, 나는 세 시간이고 네 시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워드에 글을 작성했다. 하루는 마감에 쫓겨 시간이 모자라 집으로 노트북을 들고 온 날도 있었다. 옆에서 남편이 TV를 보는 데 나는 개의치 않고 거실 식탁에 앉아서 또 세 시간 넘게 글을 썼다. 몰입의 짜릿함을 알게 되었다.
사내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일에서 가장 즐거웠던 건, 글을 쓰는 일도 창의력을 발휘하는 일도 몰입하는 일도 아니었다. 이 일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나는 레터를 읽은 일부 동료들의 답장을 받기 시작했다. "사용성을 뉴스레터로 받아보니까 읽기 쉽다", "신선하다", "재밌게 잘 읽었다" 하는 한 줄에서 두 줄 사이의 답장들이었다. 처음으로 나는 내 글의 피드백을 받은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가 학습지에 제출하기 위해 쓴 <흰 눈>이라는 동시를 보고 할아버지가 칭찬을 해준 이후 처음이었다. "우리 손녀 시를 참 잘 쓰네"라는 할아버지의 칭찬 하나로 나는 평생을 '언젠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회사 직원들의 피드백으로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누구나 작가다. 쓰지 않을 수 없어서, 쓰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재밌어서 쓰는 작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쓴 글을 읽어주는 독자의 존재가 느껴질 때, 글쓰기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즐거워진다. 나는 업무의 연장선의 뉴스레터를 발행한 덕분에 '자발적 / 그리고 비자발적' 독자들을 강제로 확보하는 편리함을 누릴 수 있었다.
내가 사업 제휴에서 서비스 기획으로 직무가 변경된 것을 계기로 마침내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나는 또 어느날 문득, 예고 없이 내 삶에 무엇이 찾아오게 될 지 무척 기대가 된다.
게다가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시작하게 된 서비스 기획 업무가 사업 제휴보다 나에게 더 잘 맞는 일이었다면? 그 이야기는 또 어느날 문득, 예고 없이 쓰는 걸로 기약하기로 하자. 오늘은 나는 그저, 삶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 순간이 어쩌면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