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방법

글쓰기는 나를 지구 반대편 사람들과도 이어지게 한다

by 선의


19세기 후반, 훗날 작가가 될 영국의 가난한 시골 소녀 한 명이 집시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거야

이것이 당신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 낯선 이와 맺는 특별한 계약이며, 작가와 글쓰기라는 행위를 이루는 고독에 대한 부분적인 보상이다. 당신은 멀리 있는 것에서 친밀함을 느끼고 눈앞에 가까이 있는 것으로부터는 거리를 둔다. 중국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면 지구 반대편으로 나오게 되는 것처럼, 읽기와 쓰기의 고독이 지닌 깊이가 나를 반대편에서,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과 이어지게 했다.

p101, 『멀고도 가까운』 레베카 솔닛 - 반비출판사





어제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다시 읽었다. 세 번째 읽는 거였다. 첫 번째는 대학생 때 읽었고, 두 번째는 2015년에 읽었다. 두 번 다 읽고 나서 내가 어떤 감상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따로 기록해두지 않았었다. 덕분에 나는 이방인을 태어나서 처음 읽는 기분이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읽으면서 별의별 생각의 가지들이 사방팔방으로 뻗었다. 지금 나는 아무나 붙잡고서 이야기하고 싶다.


저기요, 저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혹시 이방인의 부조리, 반항과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길거리의 낯선 사람들, 회사 동료들, 가족, 하물며 나와 가장 가까운 남편조차 지금 나의 질문을 귀 기울여 들어줄리가 없다. 먼저 말을 걸어 카뮈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어쩌면 그들과의 관계를 지금처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내가 느낀 카뮈의 이방인에 대해.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키보드를 두드리면 노트북 화면은 인내심 있게 나를 기다렸다가 지체 없이 텍스트를 받아 적는다. 나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읽히지 못할지언정 몇몇 사람들에게는 가닿을 것이다. 나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호주 멜버른에서,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조그마한 스마트폰으로 방금 브런치 앱을 켠 익명의 한국어 사용자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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