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계속 쓰기 시작하는 사람으로 늙을 것이다.
아이디어를 표현해 나가다가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버리면 거기에서 멈추어 붓을 놓는다. 그리고 30년 뒤에 커피 잔을 들고 자신도 젊어서 한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노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것이다. 포기는 중단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단은 늘 하는 것이지만 포기는 그것으로서 마지막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작하고 또 시작하는 것이 예술인 것을.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2017년에 처음으로 소설을 썼다. 소설은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도전했던 글의 형식이었다. 왜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었냐면, 솔직하고 싶었고 동시에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익명성 뒤에 숨어서 열 가지 거짓말 속에 한 가지 진실을 전하고 싶었다.
나는 나에게 절교를 선언한 12년지기 베스트 프렌드에 대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기에 나는 겁이 많았다. 친구에 대해 내가 가장 좋아했던 특징 하나와 절교의 원인이 되었던 핵심 사건만을 살리고 나머지 다른 요소들은 모두 거짓으로 꾸며내었다. 나의 첫 습작 작품이니만큼 당연히 출판이 되지도 않았고 그 친구가 어쩌다 우연히 보게 될 가능성도 없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 글을 정리하면서 꽁꽁 숨어 있던 내 안의 마음을 들여다볼 계기도 되었다. 그 후에도 소설을 몇 편 썼다. 내 안의 가장 부끄러운 면, 숨기고 싶은 사정, 알릴 수 없었던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글에는 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섞였다.
2017년에 블로그에 비공개로 올려둔 일기 하나.
익명성 뒤에 숨어 진솔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걸 누구든 들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한 조각조각의 순간들이 그냥 잊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일기로 남아 나 혼자만 아는 것도 싫다. 공유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다. 그러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는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용기를 내기는 싫고 어쩌라는 거냐 싶냐고? 나는 원하는 걸 모두 이룰 방법을 찾았다.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쓰는 일은 공이 많이 든다. 단순히 글을 쓰는 일이 아니라 퍼즐을 설계하는 일이고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어내는 일과 같다. 캐릭터, 구성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개연성을 갖추는 일도 어렵다. 나는 점점 덜 솔직해지는 편한 길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글은 계속 쓰고 있다. 글이라는 게, 한 번 쓰기 시작하니까 계속 쓰게 된다. 나는 글을 쓰지 않는 날들에도 소재를 찾고 일상을 기록해두며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소설은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30년 뒤에 커피 잔을 들고, 나도 젊어선 한 때 소설을 쓰고 싶었노라고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지 않다. 꼭 등단하거나 책을 출간하지 않았어도, 나는 계속 소설을 써 왔던 사람으로 늙어 있고 싶다. 사실 2019년 연말에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엽편 소설을 한 편 썼다. 나는 중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시작하고 또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