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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Mar 09. 2020

나의 강단점 탐구기록

(내가 그렇게 막 강점 하나도 없는 사람은 아닐텐데)


우리 회사는 직원들에게  년에  번이나 강점과 약점을 리뷰하게 한다. 연초에 성과 시스템에 목표 입력을 할 때 강점과 약점을 입력하고, 상반기가 지나고 중간 평가를 할 때 / 연말 평가를 할 때 수정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직원들은 이 강점과 단점 란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직원의 평가나 보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까), 전년도에 적은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오기 일쑤다. 그런데 나는 나 자신에게 관심이 꽤 많은 타입이라, 일 년에 세 번씩 이 강점과 단점 란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3번씩 쳐다봤으니 이번이 서른네 번째인데 나는 아직도 내 강점과 단점을 잘 모르겠다.



조용히 지워버린 나의 첫 강점 "영어"...


갓 입사했을 때 나는 당당하게 나의 강점에 '영어'라고 쓰고 단점에 '업무 경험이 부족함'이라고 썼다. 영어의 경우, 초등학교 때 5년 동안 외국에서 거주했던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당시 내가 속해 있던 부서에서 해외파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점으로 말하자면..., 신입 사원의 단점으로 써먹기에 참 편리한 단점이었다.


그러다 사원 2년 차 말에, 나는 인사팀에서 해외사업을 하는 부서로 조직 이동을 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여기저기서 네이티브 스피커들이 전화를 붙들고 유창한 현지 발음으로 국제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었다. 특히 내 뒷자리에 앉은 여자 과장님은 하루 종일 콜만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영어 발음이 뭐랄까 퀸카로 살아남는 법 영화에 나올 법한 캘리포니아 고등학교의 치어리더 회장(?)의 발음처럼 들렸고 간간히 스페인어로 말을 하기도 했다.


새 부서에 합류한 지 일주일도 안되었을 때, 내 사무실 전화로 국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전화받을 때부터 발신 번호가 무척 길어 안 그래도 불안했는데, 역시나 상대편에서 "Hello, may I speak to Mike?"라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그 전 부서에서 매일같이 법인의 현지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던 나였는데, 여기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어릴  잠깐 비영어권 국가에서 살며 배워온 나의 '굴리다  발음' '중간중간 ummmm 자꾸 등장하는 영어 회화 실력' 진짜 네이티브 스피커들 사이에서 내보이기가 무척 부끄러웠던  같다. 나도 모르게, "Please wait"라는 두 단어를 겨우 내뱉고는, 옆 자리의 캐나다 국적 대리님께 전화를 돌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못하면 못하는 대로 마음껏 umm을 섞어 가며 영어를 할 줄 아는 10년 차가 되었다.)


그 해 연말, 나는 새로운 부서 팀장님께 나의 한 해 성과와 함께 강점을 써서 제출하기 전에, '영어'라고 쓰여 있던 걸 지워버리고 "긍정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한다" 따위를 급히 적었다.


(사실 나는 회사 내에서 나의 사수나 팀장님이 나의 '강점'과 '약점'을 먼저 찾아 알려주기를 기대했다. 누군가 나에게 멘토로서 "너는 이걸 잘하고 있으니 꾸준히 갈고닦고, 대신 이런 부분은 보완을 해야 해"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우리 회사만 그런 건지 어쩌다 내가 만난 팀장님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원 한 명 한 명의 강약점에 그렇게 관심을 두는 리더는 없었다. 나의 강약점을 찾는 건 어쨌든 나의 몫이었다.)



두 번째 강점 "긍정적인 태도"에 대한 팀장님의 팩폭


아마도 사원 4년 내내 내가 쓴 내 강점 중에는 '긍정적으로 일하려고 노력한다'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매년 나의 강점과 약점에 뭘 써야 할지 오래 고민했는데, 저 위 '긍정적...' 말고 뭘로 대체해야 할지 찾을 수가 없었다. 영어를 잘한다고 하기에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파워포인트 / 엑셀을 잘 다룬다고 하기에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천지 빛깔이고. 부서  막내 급에 해당하는 사원이 '이것만큼은 여기서 내가 제일 잘해' 하는  찾으려고 했으니 강점을 찾을 수가 있었겠는가. 물론 나의 약점도 초기의 '업무 경험이 부족함'에서 크게 나아가지 않았다. '계약 경험이 부족함', '프레젠테이션 경험이 부족함' 등으로 그 경험의 단위가 조금 구체화되었을 뿐이다.


대리 1년 차가 되고 나서였던가. 새로운 팀장님을 만났다. 처음 목표 설정 면담을 했을 때, 상반기 중간 평가를 했을 때는 강점과 약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 아직 팀장과 직원 둘 다 서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으니, 업무 목표를 설정하는 데만 면담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다 연말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연말 평가 면담에 임하며 나는 연초에 설정한 목표에 관하여 한 해 동안 어떤 성과를 냈는지, 면담 때 어떤 점을 어필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팀장님은 성과시스템에 입력된 나의 커리어 계획, 조직 이동 계획, 교육 계획 등을 찬찬히 보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네가 생각하는 네 강점이 긍정적으로 일한다야? 내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은데. 너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 아니야.


생각지도 못한 그 한 마디에 나는 잠시 벙쪘다. 그러고 보면, 사원 3년 차까지만 해도 나는 조직의 막내로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도 하고, 욕먹는 게 싫어서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 애쓰고, 일하다가 가끔 싫은 말을 하고 싶어도 (짬이 되지 않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점들을 혼자 '긍정적으로 일한다'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리 1년 차 (회사 생활 5년 차)가 되었을 때 나는 그마저도 애쓰지 않고 종종 불만도 품고 한숨도 쉬는 평범한 직원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더 이상 긍정적으로 일하는 직원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나는 매년 강점과 단점을 적어내야 했지만 마음에 쏙 와 닿는 강점 단점을 찾지 못했다. 나의 능력치는 모든 면에서 꽤 무난한 편이었고, 대학교 성적으로 치자면 전과목 B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무엇이든 강점으로 잡기에는 유난히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약점으로 잡기에도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나은데'라는 자존심이 발동했다. 무엇보다, 나의 강점 단점을 상대적으로 찾다 보니 소속 조직이 달라질 때마다 강단 점도 따라서 변한다는 문제도 있었다. 한 때 나의 강점이었던 '영어'를 새 부서에서는 한 마디 뻥긋 못하고 얼어버렸던 것처럼.


부서의 선배 직원에게 고민 상담을 한 적도 있었다. 선배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하고 너무 비교하지 말고 내 안에서 답을 찾으라고 했다. 사실 나는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상대적으로 보지 않고, 내가 '잘하는 것', '못 하는 것'을 어떻게 판단하지?




10년 간 고민했던 강점과 단점의 실마리를 나는  토드 로즈의 <다크호스>라는 책에서 찾았다. 10년 간 묵은 체증을 확 뚫어 주는 책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다크호스"들은, 자신이 매일 1) 충족감을 느끼고 2)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자신만의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동기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들이었다.


물리적인 공간을 정리하며 남을 도와주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손을 쓰면서 장치를 만지작거리고 혼자 일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조류 전문가라도 시각적으로 새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청각적으로 새소리의 특징을 감별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새를 좋아하지만 학구적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일반인들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에서 더 큰 충족감을 느끼고 탐조 관광 상품을 취급하며 사업을 성공시킨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다크호스>에 따르면, 내가 찾아야 할 강점은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몰입하는 지를 파악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단점은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 지루해하고, 금방 산만해지고, 업무를 완수하고 나서도 별로 가치를 못 느끼는지 찾는 데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하루하루를 세밀하게 쪼개 보니까, 정말 나의 강점과 단점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았다.


바로 정리 직무였다.
그녀는 딱 보면 구분하기 쉽게 모든 책에 색색의 라벨을 붙여 책장에 꽂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거나 너저분한 모습을 보면 다시 가지런히 정리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상관이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아도 그 요점을 민첩하게 정리하는 재주도 남달랐다. 그녀의 두뇌는 고속 원심분리기와 같아서 정보가 입력되면 중요한 내용과 쓸데없는 내용을 재빨리 분리할 줄 알았다.

정치적 직무에서 그녀가 특히 좋아했던 활동은 블룸버그의 시장 선거 캠페인 중에 대중집회를 준비하던 일이었다. 자율권이 주어져, 사람들을 배치하고 홍보를 구상하고 행사를 포괄적으로 기획하면서 정말 신이 났었다.

(다크포스 - 토드 로즈, 오기 오가스 / 21세기 북스)


사실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나의 강점과 약점이 정확히 뭔지는. 재작년부터 나는 부서에서 하는 일을 뉴스레터로 작성하여 회사 내 배포하는 업무를 했는데, 한 달에 한 번 글을 쓰는 일이 이 회사에서 10년 간 해왔던 그 어떤 일보다 재미가 있었다. 나는 강점으로 '글을 쓰는 일을 즐겁게 한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작년 가을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래로, 나는 나의 '글을 쓰고 싶은 욕구'를 브런치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고, 회사에서 업무로 써야 하는 글, 주제도 내용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글을 쓰는 일이 점점 귀찮아졌다. 올해 초에 목표 설정을 하면서, 나는 나의 강점에서 '글을 쓰는 일을 즐겁게 한다'를 과감하게 지워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게 된 건 있다. 나의 강점과 약점은 정말 내 안에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선배의 조언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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