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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Mar 18. 2020

대학 전공이라는 인생의 굴레

인문학 전공생의 졸업 10년 후

중어중문학과 졸업생이다. 대학 시절에 관해 가장 후회되는 것은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일이다.

현재 직장에서 중국어를 쓸 일은 전혀 없다. 하물며 중국 문학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시점은 더더욱 없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시절에 관해 가장 후회되는 것은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일이다.




수능 성적을 따라 인문대에 입학했다. 당시 다들 중어중문학이 미래가 밝을 거라 해서 전공으로 선택했다. 중국 문학보다는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언젠가 도움이 될 거란 뜻이었을 거다. 4년 동안 전공 수업으로 중국 문학 수업 절반, 중국어 언어 수업 절반을 들었다. 공자와 맹자를 배우고 이백과 두보의 시를 외웠으며 루쉰의 현대 소설을 읽었다. 중국어를 배우러 상하이에 5개월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늘 교양 수업에만 진지했고, 정작 전공 수업은 등한시했다.


당시 나는 전공의 '쓸모'를 생각했다.

나는 회사원이 되고 싶었기에, 영어 이름으로 된 저자가 쓴 두꺼운 양장본 전공책을 들고 다니며 재무와 회계, 마케팅 이론을 배우고 팀플 하는 경영학과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내내 나는 내 전공을 탐탁지 않아했다. 나는 나중에 마케팅 그거 하고 싶은데... 이백 루쉰 이런 거 배워서 어디다 써먹지.


당시 들었던 수업 중에 내가 최악으로 꼽았던 수업이 있다. 고전 중국문학 수업이었는데, 나이가 지극한 교수는 늘 낮고 일정한 톤으로 [시경]이나 [관저]에서 나오는 중국 시를 읊었다. 그 수업을 특히 싫어했던 이유는 시험 때마다 한 학기 동안 배운 시들을 모두 달달 외우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한자로. 시험지에는 시 한 편에 빈칸이 몇 개 있어 학생이 그 안의 한자를 채워 넣어야 하는 문제도 있었고, 비교적 짧은 시는 제목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전문을 다 외워서 써야 하기도 했다. 나는 그러한 교수님의 시험 방식이 몹시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겨우겨우 졸업에 필요한 HSK 최저 등급만 획득하여 도망치듯이 졸업을 했다.




10년 전에 인사팀으로 입사했고, 지금은 서비스 기획 업무를 하고 있다. 대체로 한국어만 잘하면 업무를 수행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기업인지라 해외에 법인도 있고 파트너사도 있어 가끔 영어를 할 일은 생긴다. 그러나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업무에 크게 지장은 없다. 중국어는, 전혀 쓸 일이 없다.


요새 내가 하는 업무 중에는 내가 기획한 앱에 관한 고객의 문의 메일에 직접 응대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전 세계에 출시를 했기에, 전 세계의 언어로 메일이 온다. 러시아어, 스페인어, 독일어, 영어 등 매번 다양하다. 그럼 나는 그 메일을 Google Translate를 사용하여 해석하고, 그에 대한 답을 1차로 영어로 작성한 후, 다시 Google Translate에 해당 언어로 번역한다. 고객에게 나가는 메일에는 영어와 해당 언어로 작성한 내용을 모두 싣되, 그 언어로 작성된 본문 밑에는 'translated by Google'을 또 번역해서 덧붙인다.

중국어로 메일이 온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10년 중 단 한 번, 중국어 전공자로서 나서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중국 쪽 일을 하는 차장님이 출장을 다녀와서 텐센트 TV의 서비스 화면을 사진으로 찍어왔다. 그 사진 속 회원 로그인 페이지에 보였던 문구의 의미를 임원이 마침 물어봤다. 그때 누군가 내가 중문과 졸업생이라고 대신 밝혔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그 화면 앞으로 다가갔지만 결국 내가 모르는 단어 앞에서 아무 말 못 하고 조용히 물러나야 했다. 몹시 부끄러웠던 경험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지금 써먹을 일이 있든 없든, 미리 중국어 공부를 좀 해두자고. (그러나 물론 하지는 않았다.)




요새는 서비스 기획을 하며 타 플랫폼의 케이스 스터디를 종종 하게 된다. 물론 가장 자주 접하는 건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혹은 로쿠 TV나 아마존 Fire TV 같은 connected TV의 플랫폼이다. 그러나 간간히 중국의 바이두, 텐센트, 알리바바의 서비스가 언급이 되기도 한다. 그때 마다 나는 왠지 모를 중문과 졸업생의 의무 같은 감정으로, 중국의 서비스에 대해서는 내가 그래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박에 빠져든다.


꼭 전공을 업무에 그대로 적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니 한 때 그런 고민에 빠져본 적은 있다. 중국 지역 전문가가 되어 중국 업체를 상대하거나 중국 영업팀에 지원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잠시 있었다. 그러나 나는 특정 지역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시아 지역 제휴 업무와 유럽 지역 제휴 업무를 경험했다. 지금은 서비스 기획 업무 전반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렇지만 중문과 졸업생이라는 건 늘 내 마음 한 켠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나는 그래서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 데 졸업 이후에 논어를 네 번 찾아 읽었고, 맹자를 두 번, 손자병법과 중용을 한 번씩 읽었다. 중국의 고전들을 다루는 故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라는 책은 너무 좋아서 두 번 읽었다. 어쩌면 신영복 교수님을 알게 된 것이 내가 '중문과 뽕'에 가득 차서 중국 고전을 찾아 읽게 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주에는 한국 경제도 잘 모르는 내가 오랜만에 경제 공부를 하겠다며 <중국발 세계경제 위기가 시작됐다>라는 중국 경제 책을 찾아 읽었다.


나는 후회한다. 대학교 때 루쉰의 작품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배워 놓을 걸. 지금은 을유 세계문학전집에서 나온 루쉰 전집을 기웃기웃 거리고 있지만 그때는 중문과 최고 권위자인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그의 작품을 원어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루쉰의 소설을 읽으며 드는 여러 생각들을 들고 교수님을 찾아가서 바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가장 싫어했던 중국 시 수업에서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공부를 했더라면, 벼락치기로 급하게 외웠던 시를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로 까먹지는 않았을 텐데.




회사 생활 10년 해보니까 알겠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나처럼 보통의 회사의 직장인이 될 거였으면 대학교 때 어떤 전공을 선택했어도 크게 도움되지는 않았을 거란 사실을.

당시 내가 부러워했던 경영학과 졸업생도, 그리고 정치외교학과 졸업생도, 철학과 졸업생도, 미학과 졸업생도, 중문과 졸업생도, 화학과 전공생도 10 뒤에는 모두 같은 팀에서 비슷한 일을 매일 새로 배우면서 하게 된다는 사실을.

되려 대학교 때의 전공은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 분야 최고 권위자인 교수 밑에서 깊이 배울 수 있는 하나의 학문이자, 평생을 함께 할 나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그런 "쓸모 없는" 관심사 하나를 둔다는 일이, 가끔 나의 회사 일을 버티게 하기도, 퇴근 후의 일상에 활력을 주기도 한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중문과 졸업생으로서, 여태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되든 간에, '중국'이나 '중국어'가 붙는 일에는 귀가 반짝이며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게 될 것 같다.




내 남편은 사회학과를 전공했지만 지금은 은행에 다니고 있다. 같은 은행에 나의 대학 친구가 일하고 있다. 스페인어를 졸업하고 스페인에 어학연수를 1년 다녀온 친구다. 대학교 때 같은 동아리를 했던 러시아어과 친구는 스타트업 회사를 다니고 있다. 같은 동아리를 했던 또 다른 친구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영어도 중국어도 쓸 일 없는 우리 팀에는 한 때 프랑스 문학을 졸업한 과장님이 두 명이나 있다.


우리 모두가 스무 살 초반 한창때 자의로든 타의로든 매진했던 그 전공과목을, 몽땅 잊어버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몽땅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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