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며칠 전, 회사에서 친한 친구가 메신저로 하소연을 해 왔다. 업무를 진행하면서 엮인 유관 부서 차장님 때문에 속 안의 분노가 들끓어 어찌할 줄 모르겠다고 했다. 일을 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이메일조차 소홀히 하고 (친구가 긴급한 요청 사항을 분명히 메일로 써서 보냈는데, 하루가 지나도 회신이 없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어떻게 메일을 하나하나 다 읽습니까. 그렇게 중요한 거였으면 메일을 보내자마자 전화를 했어야죠"라고 되려 역으로 친구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결국 전화로 다시 한번 요청 사항을 전달하려는데, 아무리 애써 설명을 해도 말이 안 통하고 자꾸 딴소리를 한다고 했다.
상대가 너무 이해를 못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다 보니까,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가 설명을 잘 못하나?
내가 말을 잘 못하는 편인가..."
나는 그 친구가 상대한 차장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 친구에 대해서는 말을 차분하고 조리 있게 하는 편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 날의 커뮤니케이션 실패도 친구의 탓은 아닐 거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내가 친구와 그 차장님이 통화한 그 자리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전의 메일을 주고받은 내역을 직접 본 것도 아니라 객관적으로 판단할 자격은 없다. 설명이 부족했던 것일까 이해가 부족했던 것일까? 친구는 결국 답을 확인하지 못했다.
며칠 전,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자잘한 이슈들이 매일 새롭게 튀어나와 몇 개월 동안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문제점을 봉합하고 해결책을 찾아다니던 프로젝트였다.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아 관련 부서 합의를 받아내면 또 다른 곳에서 이슈가 불거져 나왔다. 몇 달을 정신없이 보냈는데 최종적으로는 엉뚱한 곳에서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렸다. 상대 부서의 최종 의사 결정자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이다. 한 번 더 찾아가 기획 의도를 설명할 것인가, 그냥 접을 것인가의 기로에서 우리 팀은 후자를 선택했다.
문제는 프로젝트가 드롭되었는데, 누구도 그 실패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는 것이다. 내가 바랐던 건, 관련 부서 담당자들이 15분만이라도 모여서 어떤 점에서 우리가 실수를 했고, 향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걸 개선해야 하는지 wrap-up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왜 상대 부서는 처음부터 의사 결정자의 승인을 받지 않은 채 작은 이슈들만 제기해 왔던 건지, 우리 부서는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프로젝트를 살리기 위해 왜 마지막에 한 번 더 푸시하지 않고 금세 포기하기로 결정한 건지, 나는 일자 별로 따져가며 정확하게 실패 원인을 이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바람은 너무나도 이상적이었다. 다들 너무 바빴고, 우리는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잘잘못을 묻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최종적으로 Stop 하기로 결정한 날,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게 다 나 때문이었을까?
담당자인 내가 부족했던 건 아닐까, 내가 다르게 진행했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보다 더욱 능력 있는 사람이 맡아서 진행했다면 다른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공포에 밤새 심장이 쿵쾅거렸기 때문이다. 겨우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이는 동안에는 악몽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다음 날 출근했을 때도, 그다음 주까지도 누구도 나에게 그 프로젝트의 결과 대해 책망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업무를 진행하느라 바빴고, 나에게도 자연스럽게 다른 업무가 주어졌을 뿐이다.
대신 나는 나 혼자서, 커다란 방안 노트를 펼쳐 프로젝트를 실패로 이끌었을 법한 예상 원인들과 개선점들을 펜으로 써나갔다. 그런데 혼자 쓰다 보니 자꾸 내 입장에서의 방어 기제가 작동했다. 하나하나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도 내 탓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담당자 자신이 스스로에게 내 탓이 아니야 라고 혼잣말을 해봤자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내가 정확하게 분석을 한 건지, 아니면 계속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전지적 작가의 시점으로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여 "네 탓이 아니야"라고 판결을 내려주길 바랐다. 그런 일은 당연히 없었다.
직장 내에 일을 못한다는 사람 몇 명이 있다. 꼼꼼하긴 한데 지나치게 비효율적으로 디테일에만 치중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과장님이 있다. 실수는 없지만 일처리가 느리다. 그는 자신의 '완벽주의'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툭하면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지적하고 다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잘난 척 가르치기 좋아하는 차장님도 있다. 정작 자신은 일을 거의 하지 않고 미루기에만 급급하다. 이 글의 맨 앞에서 언급한 차장님의 사례처럼, 본인이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아 놓고선, "그렇게 중요한 거면 따로 전화를 했어야지요!"라고 되려 상대에게 따지는 경우도 있다.
신기한 건, 그들 모두 업무에 대한 자존감 하나는 누구보다 높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하진 않아 속사정까지는 잘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남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는 눈치채지 못한 채 그들 나름의 '강점'들에 만족하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모두 그들 뒤에서 한 소리씩 하지만, 그들 앞에서는 적당히 웃으면서 함께 일을 한다. 나도 그렇다. 좋든 싫든 담당자를 무시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내가 그쪽 팀장님한테 찾아가서 "이 차장님이 같이 일하기 피곤한 사람이니 담당자를 바꿔주세요"라고 요청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일을 해내려면 적당히 잘 지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일 할 수 없는 것,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좋은 척 협력해야 하는 것, 이게 내가 느끼는 사회생활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같이 일하기 피곤한 사람들과 엮이게 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무서운 건 혹시라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다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나의 단점은 무엇일까?
나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일까? 피하고 싶은 사람일까?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내가 부족했을까.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까.
일을 하다가 커뮤니케이션이 틀어졌다. 나의 탓일까 상대의 탓일까.
이 같은 두려움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를 찾아가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A부터 Z까지 (내 입장에서) 설명한 후,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줘요"라고 호소할 수는 없는 법이다. 친한 동료들이라면 무조건 내 편을 서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동료들이라면 내 일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의 결론을 "그럴 때는 이렇게 대처하세요! 1) 2) 3) "이라고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마무리하지 않을 거고, 아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나의 최선은, 그런 두려움이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없이 게으르고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내가 덕분에 이 기회를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의 시간으로 삼는다. 혹시 나만 눈치채지 못한 약점이 있지 않을까, 내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개선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기 위해 어떤 점을 더 애쓰면 좋을까 고민해본다. 나는 동료들(타인)을 바꿀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부끄럽게도 그렇다, 하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