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발행 취소했던 글들
화가 조앤 미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지 않고는 아무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뭔가를 느낄 수 없어요.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려면 아주 강해져야 하죠."
『예술하는 습관』 메이슨 커리 - 걷는나무
나의 '작가의 서랍'에는 발행 취소한 글이 여섯 개 있다. 내가 발행한 여느 글과 다름없이 정성 들여 고민하고 쓴 글들이다. 그 글들은 보통 발행 후 하루 이틀 지나서 회수를 했고, 브런치 인기글로 소개되어 하루 종일 메인에 떴던 글도 있었다. 그런 글들을 왜 나는 굳이 발행 취소를 했던가. 이제는 나만 볼 수 있는 그 글들에 대해 그래도 간략하게나마 흔적을 남겨놓고 싶어 이 글을 적는다.
1.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고도 내가 대응하지 못했던 이유>
- 이 이야기는 내가 언젠가 꼭 공개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벼르고 있던 이야기다. 저녁에 발행했는데 다음 날 브런치 인기글에 올랐다. 하루 종일 인기글에 있도록 내버려 두면서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가해자는 이미 퇴사한 사람이지만 나는 그 직장에 아직 다니고 있다. 최대한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히 쓴 글이었지만 혹시라도 알아채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이 되어 발행 취소했다.
2. <그토록 바랐던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 내 글 중에서 조회수가 유일하게 5만 회가 넘어간 글, <재택근무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발행한 다음날 적었다. 그 글을 올리자마자 다음날 열이 37.8로 올라서 나 혼자 강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그 혼돈의 하루 동안 벌어 난 일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서 올렸다. 이 글 또한 다음Daum으로 공유되었는데, 혹시라도 부서 사람이 읽게 되면 나를 알아볼 것 같아서 발행 취소했다.
3. <몸, 내 삶의 오래된 화두에 관하여>
- 이 글에는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닌 몸에 관한 물음표들에 관해 적었다. 다이어트와 외모 지상주의, 몸무게와 키토제닉, 비건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 적었다. 원래 '나의 몸'을 다루는 매거진을 발행하고자 프롤로그 격으로 적은 글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나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발행 취소했다.
4. <페미니즘... > (제목이 나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어 굳이 여기에 언급하진 않았다)
- 이 글에는 페미니즘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했는데, 댓글이 하나 달렸다. "글 쓰시는 분이 이렇게밖에 생각을 못하신다니 아쉽네요 :)" 악플이라고 결론내릴 수도 없는 애매한 댓글이었지만, 이 댓글 하나가 하루종일 머리를 떠돌았다. 마음이 어지러워 친한 언니에게 하소연 했더니, 그 언니가 "양쪽에 대한 갈등 상황이 크고, 사회적으로 아직 개념이 제대로 정립이 안된 사안에 대해서는 전체 공개를 글을 쓰는 건 피해가는 것이 내가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최선일 수도 있다"라고 말해주었다.
5. <책장의 구성>
- 이 글은 나의 책장에 대해 무작위로 묘사한 글이다. 재미도 없었고 조회수도 며칠 째 20을 넘지 않았다. 좋아요도 댓글도 없이 묻혀진 글이다. 다만 이 글에서 다룬 주제 '나의 책장'에 대해서는 무한한 애정과 욕심이 있어, 언젠가 대폭 수정해서 다시 발행하고픈 마음에 일단 발행 취소를 눌렀다.
6. <미루는 게 제 주전공이라 체계적으로 미룹니다>
- 이 글은 그저께 올렸다가 취소했다. 몇 달째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만 먹고 미루는 동안 한 일들에 대해 적은 글이다. 나의 개인적 에피소드도 통찰도 고민도 없이 자의식과잉인 것 같아서 내렸다. 이 글을 내린 후 고민이 하나 생겼다.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일상적이고 가벼운 글이 그러나 지나치게 가볍지만은 않도록 밸런스를 조절하는 것이 나의 숙제다.
위의 4번 페미니즘 글을 쓰고 며칠 후에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퇴근 길의 달빛에 대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어
글에 굳이 나라는 부족한 사람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글을 쓰면 마음이 혹시나 편해질까 싶어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나의 찌질한 면모와 덜익은 생각들, 매일 매일 헤매는 일상의 사투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 그런 취약점을 드러내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여러 번 글을 발행하고 발행 취소를 하게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매일 매일 조금씩 없는 용기 쥐어 짜내며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