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브런치 작가 계정이 두 개 있습니다.

당신의 작가명은 익명인가요 실명인가요?

by 선의
개인정보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며,
가명정보는 개인정보의 일부를 삭제하거나 대체하는 등의 조치로 추가정보 없이는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익명정보는 가명정보에서 더 나아가 추가정보와 결합하더라도 식별이 불가능하도록 처리한 것이다.

(국내 데이터 3법 개정 내용 중)




이건 나의 두 번째 브런치 작가 계정이다.


첫 번째 브런치 작가 계정을 통해서는 글 38편과 브런치북 1개를 발행했다. 첫 글은 2018년 9월 15일에 올렸다. 구독자 수는 155명이다.

지금 이 브런치 작가 계정으로는 글 23편을 발행했고, 첫 글은 2020년 1월 1일에 올렸다. 구독자 수는 58명이다.

구독자 수도 글 발행수도 소소한 계정을 굳이 두 개나 만들게 되기까지, 작년에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나의 첫 번째 익명 브런치 작가 계정

이전 글에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나는 내 안에서 가장 무거운 이야기를 덜어내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했다. 사실 뭐 그렇게 "비밀 엄수!"까지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주제도 아니다. 나를 모르는 익명의 독자들을 대상으로는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SNS에 링크로 걸어서, "저 이런 글을 쓰고 있는데 와서 보실래요?"라고 홍보할 수는 없는 글이었다.


익명성이라는 방패는 무척 견고하고 튼튼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도 굳이 언급할 수 없는 디테일들을 종종 내 글에서 언급했다. 아주 사소한 TMI들도 숨김없이 설명했다. 그 글들은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나와 같은 주제로 힘들어하는 익명의 독자들에게 가닿았다. 나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호소했던 나의 첫 글은 브런치에서 Daum 메인글로 전달해주었고, 삼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브런치에서 구독자 분석을 따로 해주는 건 아니지만, 나의 첫 번째 계정의 구독자는 대부분 브런치 작가가 아니다. 다음이나 구글에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여 들어온 구독자, 혹은 내 글이 다음이나 카카오 페이지에 소개된 당일에 들어온 구독자가 절반 이상으로 예상된다. 나는 그들이 지금 나와 같은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일 거라고 추측한다. 우리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이어져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위로하고, 희망을 공유한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랜만에 대학교 선배를 만났다. 그는 구독자가 천 명도 넘는 브런치 작가다. 둘 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반가운 근황을 공유한 후, 나는 당황했다. 나의 브런치 계정을 그에게 공개할 수가 없는 거다. (내 계정만 숨길 수 있으면 모를까, 나는 부지런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선배를 앞에두고 '작가 이름이 뭐에요? 제가 구독할게요!' 라는 말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나의 계정은 아무래도 비밀에 부치고 싶었으니까.)


부지런히 글을 쓸수록,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점점 돋아났다. 나도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브런치 주소를 링크해두고 싶었다. 첫 브런치북을 발간하였을 때, 친구들에게 공유하고 싶었다. 사실은 그전부터 나는 늘 자랑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저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요, 부터 제 글이 다음 메인에 떴어요 까지.

아니 어쩌면, 저 글을 쓰고 있어요 -라고 외치고 싶었는지도.


어쩔 수 없이, 나의 두 번째 브런치 작가 계정

결국에는 두 번째 계정을 만들었다. 나의 실명으로 된 작가 계정을. 이곳에서는 내 이름으로 당당하게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2013년에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고, 2018년에 브런치에 첫 번째 계정을 만들었지만, 내 이름으로 글을 발행하는 건 처음이었다. 구독자 0명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심장이 콩닥콩닥 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을 쓰는 기분이었다.


나는 회사원이고, 앞으로도 내가 정년 퇴임하는 어느 날까지는 계속 회사원으로 살 예정이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작가이고 싶다. 이 두 번째 브런치 작가 계정은, 죽을 때까지 글을 쓰게 될 사람으로서 나의 정체성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첫 번째 브런치 작가 계정


고백하자면 두 번째 브런치 작가 계정을 개설한 후에, 요새는 이 계정에만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건 내 입장에서 어쩔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코로나 때문에 나의 첫 번째 계정에서 다루는 '일'을 잠시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 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쓰는 데 있어 나의 첫 번째 계정이 꼭 필요하다.


어떤 글들을 쓰는 데 있어서, 익명성은 나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업무 중에 만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 어이없는 상황들, 차별과 간접 폭력의 에피소드들,
가족 행사에서 겪게 되는 성차별 적인 일상들,

무엇보다, 내 안의 가장 찌질하고 미성숙한 생각들을 고백하는 데 있어 나는 익명의 계정을 빌려야 한다.

사실 그건 무척 귀찮은 일이다. 계정 두 개를 왔다 갔다 하는 일. 하나는 다행히 모바일 카카오로 자동 로그인이 되지만, 또 하나는 매번 ID와 PW를 수기로 입력해야 한다. 계정을 하나로 두고 글을 쓰는 것이 구독자 수도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두 번째 계정에서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도 무척 아쉬웠다.


그럼에도 나의 두 가지 계정은, 1) 익명의 힘을 빌려 솔직한 이야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2) 그리고 나의 이름으로 작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두 개가 다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남겨 놓은 반전 아닌 반전이 하나 있다.


이건 나의 두 번째 브런치 작가 계정이다. 그러나 실명 계정은 아니다.


기껏 내 이름을 글을 쓰겠다고 계정을 하나 더 개설해 놓고 무슨 얘기냐고? 이건 나의 가명 계정이다. 비록 내 이름이나 개인정보를 그대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추가 정보를 더해서 나를 식별할 수는 있다. 아직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언제든 나의 SNS 프로필에 링크를 걸어둘 수도 있다. 사실은 처음에 내 이름으로 개설을 한 건 맞는데, 새벽 2시에 감성에 젖어 작가명을 변경했더니 이제 앞으로 한 달 동안 수정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게 브런치의 정책인 것 같다.) 다시 작가명을 복구하기 위해 3월 31일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의 교훈 : 브런치 작가명을 생각 없이 변경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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