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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Aug 07. 2024

21. 살아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착한 딸, 좋은 친구, 능력 좋은 팀원

 우리는 평균 80년을 넘게 살아간다. 개개인의 환경, 사정에 따라 누군가는 그 햇수를 채우지 못하고 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주위에서 놀랄 만큼 긴 햇수를 살아가기도 한다. 살아가는 것, 삶에 대해서 한 번씩은 고민해 본 적이 다들 있을 것이다.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지?

누구와 살아가야 하지?     


쉽게는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며 살아가야 하는지, 내 주위에 누구를 두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등등 스스로의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한다. 그 답은 때로는 쉽게 나올 때도 있고, 쉬운 것 같다가도 미궁 속으로 빠져 도통 답을 내릴 수 없기도 하며, 답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답이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어릴 적에는 부모님에게 걱정 끼쳐드리지 않으면서도 힘이 되고 자랑거리가 되는 딸이 되고 싶었고, 언니에게는 힘듦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친구들에게도 언제든 위로를 건네는 친구가 되려고 했고 그들이 필요할 때 주저 하지 않고 날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릴 적 내가 생각한 살아가는 이유였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이 모든 걸 줄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좋은 사람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 서른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작년 이맘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졌다. 내 속에서 해결되지 않던 모든 응어리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금전적으로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이 제일 큰 원인 중 하나였고, 직장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로 몇 달을 심리적으로 힘들어했고 거기에 사소한 일들이 겹쳐서 지칠 때로 지쳐버렸다.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폐만 주는 것 같은 나의 모든 날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었고, 감정적이기만 한 사람이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금씩 더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한 달 정도 먹었을 무렵이었다. ‘내가 왜 살지?’라는 질문을 그때도 어김없이 하고 있었고, 사실 심했을 때는 그 질문이 먼저 나오지 않았고 ‘살기 싫어, 재미없어, 지겨워.’가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에게 왜 살고 있는지 질문했고, 그 질문에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 힘든 사건을 안겨주기 싫다는 것이 답으로 나오기도 했고, 그것은 내가 끝까지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내 욕심이었다. 하지만 그 욕심을 인정하게 된 것도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였다. 내가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어야만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꼭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을 뒤로 미루면서 노력할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뒤에 든 생각이 나를 확실하게 바뀔 수 있게 해 줬다.      


나는 이미 그렇지만 앞으로도 완벽할 수 없고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일 수 없고그들은 아마 나를 버리면서 그들을 위하는 내 모습보다 적당히 낄 때 끼고빠질 때 빠지는 내가 좋은 거 아닐까그냥 뭘 해주지 않아도 그들은 그냥 내가 살아있으면 마음 아파하지 않지 않을까그럼 그냥 그들에게 쓰던 힘을 내게 쏟아도 되는 거 아닐까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면서 그렇게 살면 되는 거 아닐까?’      


 나는 정말 큰 욕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해주면서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큰 욕심. 그런데 정작 그걸 그들이 바랐는지도 모를 일이었고, 해줘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냥 내가 존재하면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시간을 셀 수 없이 보내고 나니 보인다. 그들은 그냥 내가 살아있기를 바랐을 것이라는 사실이.      


 착한 자식, 좋은 친구, 완벽한 직장인 등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의미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아니 조금 덜 거창해도 되지 않을까. 

삶의 의미, 살아가는 것에 이유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하루, 이틀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힘든 일도, 화나는 일도, 슬픈 일도 찾아오겠지만 그런 일이 지나고 나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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