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 To Me
어릴 적 배웠던 동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다.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제 별명은 서너 개
엄마가 부를 때는 꿀돼지
아빠가 부를 때는 두꺼비
누나가 부를 때는 왕자님
어떤 게 진짜인지 몰라 몰라 몰라
사람은 태어나면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이라는 이름으로 살기 시작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가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집에 가면 아직 누군가의 아들이며 딸인 마냥 어린아이일 뿐이다. 나이가 더 들면 점점 자신의 이름으로 지내게 되는 날들이 많아진다. 누군가의 딸, 아들로 불리기보다 본인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지만 그 사람에게 주어진 ‘딸’, ‘아들’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오늘 내가 ‘이름’이라고 부르는 것은 ‘역할’, ‘위치’라는 말과 같다.
어릴 적부터 나는 어머니와 보내는 시간을 좋아했다. 얼굴을 마주 보며 대화를 하고, 손을 잡고 은행이나 마트를 가고, 나들이를 나가서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등 그런 시간들을 좋아했다. 시간을 함께 하고, 대화도 많이 하다 보니 나는 커가면서도 어머니와 유대감이 깊어졌다. 그래서였을까,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어머니는 내게 속에 있는 말을 서슴없이 하셨다. 나는 또 그걸 듣고 어머니를 위로하고 싶어서 동조하며 화를 내고는 했다. 당시 나도 아버지의 말이나 행동에 상처를 입는 날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는 것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부모님의 관계에 문제가 더 커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면 두 분의 사이에 더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머니의 사랑, 선택을 더 받고 싶다는 무의식 속의 생각이 그런 행동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어머니와 유대감을 쌓아온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딸이었다. 그게 내가 10년 가까이해 온 ‘딸’이라는 이름의 모습이었다. 어느 한순간에 그 이름이 힘들고, 버겁다고 느낀 것은 아니다. 이랬던 날, 저랬던 날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더는 쌓을 수 없을 때 나는 지금까지 해 온 ‘딸’이라는 이름의 모습이 정말 내가 원하는 모습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무의식 속에서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선택받고 싶다고 생각해서 했던 행동이었지만 결론적으로 어머니가 가지 말라는 내 말을 뒤로하고 아버지와 별거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당시 나는 꽤 큰 상처를 입은 후였다. 그런 상처를 입은 후에도 나는 예전처럼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딸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마음에 있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어머니와 부딪히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아버지 흉을 볼 때면 나는 예전과 다르게 아버지 흉을 보지 말라며 확실하게 말하거나 어머니의 잘못된 표현 방법이나 생각에 대해 지적하고는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들어줄 사람이 작은 딸뿐인데 누구한테 말하느냐며 하소연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는 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짐과 동시에 내가 하고 싶다며 선택한 ‘바리스타’라는 직업의 대한 자리도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내게 주어진 이름들이 버겁다고 느껴졌다.
여러 이름들이 버거워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름의 역할로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보다 상대가 내게 원하는 모습이나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나를 맞춰가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와 그들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그 간극이 너무 벌어져서 내가 더는 행복하거나 만족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닿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소위 말하는 ‘현타’를 맞게 된다. ‘내가 잘 살고 있나?’라면서 말이다. 스물 중반이 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와 부딪히는 날이 많아지고, 가족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허심탄회하게 표현하지 못할 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언제부터, 뭘 잘못한 걸까?’였다. 내가 어머니의 속풀이를 아무렇지 않게 들었던 것? 아니면 그에 맞장구치며 함께 이야기한 것? 아니면 내가 부모님 싸움에 가담한 것? 지난날에 있었던 모든 사건들을 끄집어내서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따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따지면서 나는 왜 그들에게 사랑받고 선택받고 싶어서 아등바등 살아왔는지 생각했다. 그렇게 사랑받고 싶어서 한 행동들로 내게 남은 것은 상처밖에 없었다. 그 쯤 되니 나는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표현했다고 해도 상대가 ‘너 안 그랬잖아’라고 반응하거나 내가 상대의 눈치를 보며 상대에게 다시 맞춰가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 다운 모습을 찾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다. 지금 나는 그 후로도 한 번 더 심하게 꺾였다가 다시 일어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심하게 꺾였을 때 생각한 것이 있다. ‘나답다’, ‘나다움’이라는 것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본인의 의지로나 현재 상황으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외형이 쉽게 바뀌고, 변하기 어려운 내면도 결국에는 변한다. 생각이 바뀌는 것이 나는 내면의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다움’이라고 어느 하나의 모습과 성격 또는 생각을 정해 놓는다면 그런 내가 스스로에게 ‘나는 이래야만 해!’라는 틀을 만들어 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틀을 정해 놓는다면 아마 변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현재 내 모습과 생각에 행복도 만족도 느끼지 못한 채로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 방황을 내가 해보니 그리 즐겁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내 만족과 행복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어떤 행동과 말을 하기 전에 그 행동과 말을 하고 난 직후 나는 어떨 것인가 생각하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내면의 평화가 나는 아무쪼록 오래갔으면 한다.
끝없이 그렇게 그 어디로 가려했는지
어디서부터 나 잘못됐나
그것조차 알 수가 없어
고개 숙인 채 혼자인 나
내가 만든 내 모습인걸
-임재범, To Me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