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 에그, 안아줄게
어릴 때부터 나는 사람의 온기를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부모님의 쓰다듬는 손길, 누군가 날 안아주는 따뜻한 품, 내 손을 살포시 잡아주는 손의 온기 등 스킨십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연애를 하게 되었을 때 상대와 서슴없이 애정표현을 하는 것을 걱정하고는 했다. 걱정하는 말씀을 하실 때면 나는 자식들이 흔하게 내뱉는 ‘내가 알아서 해’를 뱉어내고는 했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들어가면서 가족 간의 다정한 스킨십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애교가 있던 막내인 나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부모님에게 안기고, 언니에게 안기는 것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끽해야 가끔 길을 같이 걸을 때 손을 잡는 정도이고, 포옹은 잊힐 때 가끔이다. 사실 어느 때는 내가 가족들의 온기가 필요한 날이 있는데 이제는 아무 말 없이 안기면 ‘갑자기?’, ‘무슨 일이야?’라고 묻는 행동이 되어버려서 자제하는 날도 있다. 내게 스킨십은 사실 최고의 위로방법 중 하나이다. 아니, 심신안정이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4-5개쯤 먹던 때였다. 무력감과 우울감이 심해져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약을 먹게 되었는데 하루는 오전에 일을 하고 점심시간에 매장 한쪽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이유 모를 불안감이 찾아왔다. 보통은 쉴 때 눈을 감고 잠깐 잠을 자고는 했는데 그날은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감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정말 어떤 계기도 없이 ‘불안하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장 밖으로 나가 잠깐 바깥공기를 쐬고 들어왔다. 그런데 나는 이미 처음 겪는 내 상태에 놀라 더욱 불안해졌다. 그 순간 든 생각이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다’였다. 그냥 누군가 나를 안아주고 괜찮다고 토닥거려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같이 일하던 친구한테 가서 ‘괜찮으면 나 좀 안아줘.’라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말해도 되나 여러 번 고민만 하다 못했을 텐데 그 상황에서 내가 괜찮아질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라 앞, 뒤 생각 안 하고 부탁했다. 그러니 별 것 아니라는 듯 양팔을 벌리더니 날 안고는 등을 토닥거려 줬다. 잠깐 그렇게 안겨있으니 불안했던 마음이 진정이 되었다. 사람의 온기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날 몸소 느꼈다.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에게 안기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날. 마음이 그동안 제대로 쉬지 못해서 힘든 것을 넘어서서 버겁다고 느껴지는 날. 나는 그런 날이 오면 특히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 평소에는 어느 정도 혼자 있어야 회복이 가능한데 그런 날은 혼자 있으면 오히려 더 나를 버겁게 만든 일에 빠져들어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고는 한다. 그럴 때는 아무 생각도 안 날 만큼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운동이 내게는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가 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딴생각을 하면 다칠 수가 있기 때문에 운동으로 더 신경을 집중시키고, 그렇게 운동하다 보면 힘들어서 머릿속에 둥둥 떠 있던 생각들이 어느 정도 가라앉는다. 그렇게 한 번 가라앉은 생각을 가족이나 친구한테 입으로 내뱉으면 이번에는 마음에 올라와있던 감정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상대가 해주는 반응과 말에 위로를 받는다. 그 또한 그들의 온기다. 그들이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을 나는 느낀다. 본인들의 방법대로 나를 위로해 준다. 누군가는 내가 하고 싶었던 욕을 대신해주고 누군가는 걱정이 담긴 이야기를 해준다. 사람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럴 때면 나는 항상 느낀다. 사람은 본인의 온기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서로의 온기를 주고받을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런 날이 있지
눈물이 막 날 것 같은 그런 날
걷는 것마저 힘겹다고 느껴질 때
네 곁에 그 누구도 몰라줄 때
It's alright It's alright 내가 널 안아줄게
내 품에 안겨 마음껏 울어 안아줄게
It's alright It's alright 내가 다 들어줄게
아무에게도 말 못 한 네 맘 내가 들어줄게
-스탠딩 에그, 안아줄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