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욱,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It's okay)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계속 의문이 드는 시기가 있었다. 도서관 사서에서 벗어나면서부터 나는 계속 달리기만 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남들 눈에는 내가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스스로를 더 채근하면서 지냈다. 당시에는 더욱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너무도 중요했던 때였다.
부모님의 사이가 떨어져서 지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일 정도로 좋지 못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아버지 하고도, 어머니하고도 좋을 수 없었다. 어머니가 시골 외갓집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나는 서울에서 아버지와 언니와 함께 계속 지냈다. 당시 나는 도서관에서 일할 때와는 너무나 다른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글을 쓰며 커피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서관 계약이 끝나자마자 그 생각을 실행했고, 그 결과로 계속 써오던 글을 마무리 짓고 책을 냈지만 사실상 첫 도전은 보기 좋은 생활을 불러오기에는 너무도 부족했다. 바리스타 학원을 다니며 커피를 배웠고, 자격증을 얻었다. 그리고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증 업그레이드를 위해 공부를 하고 글 쓰는 것을 병행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카페 일은 쉽지 않았다. 겁이 많고, 자신감도 자존감도 부족했던 나는 쉽사리 긴 시간을 일하지 못했다. 비교적 한가하고 길지 않은 시간을 선택했다. 주 5일을 일하지만 하루 2시간 30분, 그마저도 마감타임이라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설거지나 청소였다. 그렇게라도 일 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다가도 간혹 냉장고를 닦으면서 문득 친구들이나 동기들은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 적응을 하고 있거나 적응기간도 끝나 제 역할을 해내고 있는데 나는 이제 막 아장아장 걷는 느낌이라서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껴지고, 내가 잘 선택한 것이 맞는지 의문을 갖는 날도 있었다.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가 아닌 계직 직원으로 3년을 일하고 나왔으니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거기서 끝나면 다행인데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나를 볼 때 괜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을 지,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면서 더 움츠러들었다.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을 더 몰아세웠다. 평일을 최대한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애를 썼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일정한 시간에 나와 카페에 자리를 잡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다가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소득은 적지만 남들처럼 8시간을 몸을 쓰고, 머리를 쓰는 그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 하루를 보내야 그나마 마음이 덜 불안했다.
내가 도서관을 나오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할 때 무서웠던 것이 있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가 다시는 일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면접을 보는 것도, 일을 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겁을 먹고 멈추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들을 했고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으면서도 일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 두려움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나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까 걱정했다. 일에 적응이 되고 조금씩 능숙함이 생기고 있던 때, 다시 한번 이직을 해야 했다. 이곳, 저곳 몇 군데 면접을 보러 다녔고 그러다 사내 카페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벌써 5년이 지냈는데 아직 사내 카페 면접을 보러 가던 날이 기억난다. 그렇게 나는 카페 파트타이머에서 카페 직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보낸 적응 기간은 꽤 혹독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미안한 날이 이어졌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이렇게 나도 힘들고, 폐만 끼칠 바에는 그만두는 것이 좋은 걸까 생각하면서도 이제야 멈추지 않고 움직이게 된 것 같아 아버지를 면목을 볼 자신이 생겼는데 오기로라도 버텨야 하나 계속 생각했다. 그렇게 버티면서 자신감도, 자존감도 계속해서 떨어졌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다. 하물며 나 자신에게조차도 말이다. 멈추지 말라고, 여기서 멈추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계속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사내카페에서 6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서서히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일이 재미있어졌다. 그때서야 내가 조금은 빨리 걷고 있는 것 같아서 안정이 되었다. 그렇게 안정을 찾고, 나는 한동안은 다시 불안해지는 날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내카페에서 1년 6개월 하고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시기에 퇴사가 결정되었고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휴식시간이라고 말하지만 나를 계속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베이킹 학원을 두 군데, 카페 관련 학원을 한 군데. 총 3군데를 6-7개월 동안 끊어지지 않게 다녔다. 아마 그 시기에 내가 자본적인 여유가 있었고, 겁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내 이름을 올린 카페를 하나 마련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은 현실과 다르다고 하는 말처럼 나는 다시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다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직영점이었다. 프랜차이즈 본사 소속 직원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도 텃세를 당했던 그 시기를 지나고, 일에 적응과 함께 누군가를 가르쳐야 했던 시기를 지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점점 바쁜 일상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감정의 높낮이가 뚜렷하지 못하고 무덤덤해지는 것 같다고도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그렇게 바쁘게 지내는 날이 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쉬는 날은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할 일을 만들어냈다. 휴가를 가서도 마음의 반은 직장에 있었다. 자취를 하게 되면서 주말까지 일을 하게 되었고 나는 더욱 쉴 틈 없이 지내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순간, 순간 내가 지금 이게 잘하고 있는 건가, 잘 지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계속 생각했다. 몸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자꾸 멈춰 있는 것 같고, 나아가야 할 것 같은데 겁이 많은 나는 그 어떤 것도 결정 내리지 못했다. 그렇게 마음이 아픈 것을 꽁꽁 안고 있다가 처음 결정을 내린 것이 주말에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금전적으로 좋지 못한 상황에 쫓길 것을 알고 있지만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달리지 못할 것 같으면 걷는 것만 하자고 생각했다. 속도를 늦추고 걷는 것을 선택했다. 어쩌면 당시 나는 걷는 것조차도 버거웠던 것 같다.
속도를 늦추고 걷게 되니 점점 주위가 보이고,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내가 뭘 해야 하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사람마다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속도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나는 지금까지 나의 속도가 아닌 주변의 속도에 맞춰 살아오고 있었던 것 같다. 주변의 속도를 따라가다가도 힘이 들면 속도를 늦추거나 때로는 멈출 수도 있는 것인데 나는 그 사실을 내가 완전히 지쳐버린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걷고, 뛰는 것을 반복하는 중이다. 그러다 걷는 것도 지치면 때로는 멈추려고도 한다. 너무 지쳐서 힘이 나지 않으면 멈춰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