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힘들어.
세상 사는 게 뭐 쉽겠어.
그래, 그래서 내게 말하는 거지.
난 그걸 언제나처럼 들어줬고
그렇다고 내가 감정 쓰레기통은 아니잖아.
들어준다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해.
내가 공감만 해줘야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야.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과정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그저 들어주는 것.
그해에는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언니의 직장과 나의 아르바이트 매장이 가까웠고, 퇴근 시간도 비슷했기 때문에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았다. 아버지와 둘만 있는 것이 어색하고 싫기도 해서 언니와 함께 퇴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언니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언니의 고민을 듣고 공감을 하면서도 '이러면 어때?'라는 날도 하고는 했는데 언니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했으면서 나의 말에는 '아니-'라며 모두 언니만의 생각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듣고 싶은 말을 정해놓은 '답정너'라는 태도였다. 그래서인지 언니의 고민을 들을 때 더는 진심으로 공감해주기 어려웠다. 내가 특별히 답해주지 않아도 언니는 언니의 고민을 잘 말했다.
나는 나의 걱정을 함께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의 고민을 함께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그 사람이 언니였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다. 가족의 일도 나의 걱정 중 하나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면 언니는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 '뭔지 알겠는데 해 줄 말이 없어.'라며 답을 피하는 것 같았다. 당시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할까 하면 언니는 꼭 피하는 듯 다른 주제로 옮기거나 언니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럴수록 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로 내게 필요한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은 쌍방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주어야 작아지는데 나는 내 이야기를 해도 풀리지 않았고, 상대의 감정만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과 더불어 언니의 감정 쓰레기통까지 된 것 같았다.